시계탑에서 만나요

by 책방삼촌



그 시절엔 그랬다. 20대 중후반까지도 나의 약속은 최소 며칠 전, 길게는 몇 달 전에도 성사되었다.

날짜가 임박해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굳이 재확인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약속은 어느 시점에 이뤄졌든 기억하고 이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약속 상대가 생각만으로 두근대는 사람이라거나, 친구들과 벼르고 별러 만든 이벤트 약속이라면 잊을 수나 있었을까. 단 하루면 원하는 것이 배달되어 도착하는 시대에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인터넷 정보가 없던 시절, 우리는 일단 만나고 나서 함께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는 일이 잦았다. 어디서 만나지? 고민하며 떨다가 고작 꺼내는 말.


"그럼, 그날 다섯 시 시계탑 앞에서 만날까요?"




당시 살던 도시 번화가 중심에 있는 시계탑은 대부분이 아는 곳, 그래서 그 주변은 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밀도 높게 붐볐다. 시계탑 옆으로는 마침 다닥다닥 팔짱을 끼고 나란히 선 열 대 정도의 공중전화 연합이 호위무사처럼 나열했었다. 각 부스 앞으로는 순서를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이 권력 앞에 조아리듯 동전과 전화카드를 들고 초조한 마음만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어느 부스 앞을 선택해야 빠를 것인가 눈치싸움이 치열했다. 매번 내 옆줄 상황이 더 나아 보이는 건 희한한 법칙이다. 수화기만 들면 잡설이 긴 사람과 애타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 간에 말다툼이 자주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모든 전화기에는 '용건만 간단히!'라는 사회적 명령이 따라야 할 과제로 붙어 있었다. 그래서 간단한 용건을 넘어서는 잡담 통화는 죄악시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금기의 기준은 저마다 달랐다.


누군가 어서 나타나 주길 기다리는 설렘, 바람맞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 오늘만큼은 알차게 소비하고픈 작은 욕망이 복잡하게 엉켜있던 시계탑 앞의 풍경. 시계탑은 공공에게 하나의 시간을 명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앞을 오가는 이들의 시간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보유하기 시작했다.


시계를 아무나 가질 수 없었던 초기 산업화 시기, 노동에 대한 일률적 통제를 위해 시계탑을 세운 건 권력과 자본가. 근면한 일과를 각인하는 '상징'으로 시계탑은 광장에 우뚝 서있었고, 그걸 바라보는 노동자들은 개별적 삶보다는 주어진 의무와 역할을 주입당했을 것이다.


1990년을 전후로 '올려다보는 통제적 시간'의 기능은 빠르게 약화되었다. 다만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지켜줘야 했고, 시계탑을 두고 한 약속에서 이행의 정확성을 은근히 압박하는 기능적 역할 정도는 남겨두고 있었다.


시계탑 앞이든 아니든,

그때고 지금이고

늦는 녀석은 매번 꼭 늦다.


권력이 엄혹하게 소유하던 시간은 우리의 손목에 하나씩 자리한 시계처럼 그렇게 개인들이 나눠 갖기 시작했다. 안간힘을 쓰며 소멸하던 구시대 권력의 끝을 싹트는 시민의 자유 의식이 조금씩 지워가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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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과연 약속이 지켜질까 불확실성을 안고 조마조마 기다리던 동안의 내 가슴은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르겠다.


바람만 뺨을 스쳐가도,

꽃잎이 눈앞에서 추락해도,

그 사람이 도착한 건가

화들짝 하며 두리번거리기 일쑤였다.


두 시간을 망연자실 기다렸다는 무용담(?)은 흔했고, 결국 바람맞고 허탈하게 돌아선 이야기들의 숫자 역시 그에 필적했다. 사실 두 시간 늦는 건 바람맞는 것에 다름 아닌데, 내가 바람맞았다는 걸 최대한 늦게 인정하고픈 애잔함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지금도 내게 의미 있는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대충 이런 것들이다.


- 10분 전,

- 3분 전,

- 이제 겨우 10분 지났음,

- 20분 정도야 뭐,

- 30분이 지났는데 뭔 일 생겼나


그렇게 가슴 졸이던 시간.


그때 머리 위를 흩날리며 떨어지던 꽃잎과

흑백의 피사체로 지나치는 사람들.

그 사이로 비죽 나타날 것 같은

그 사람의 환영을 보던 20대의 내 모습.


좀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만한 곳,

주머니 사정에 부담이 덜한 곳을 찾아

시계탑에서부터 여기저기 골목을 나란히 헤매던 우리의 걸음과 복잡한 거리의 풍경.




그 시절의 약속은 집에서 나선 후 만나기 전까지 중간에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요즘에야 어디쯤 오는지,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내내 확인하며 만날 수 있어 편하지만 약속의 감흥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모든 게 확실한 상태에서는 불안감도 적지만 설렘도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약속의 확정과 이행의 불확실성 사이,

우리의 시계탑과 들뜬 마음이

꽃잎과 바람처럼

서로를 훌훌 건드리며 흩날렸다.


그 시계탑은 이제 어디로 옮겨갔을까. 아무런 계산 없고, 기약 없는 기다림조차 기꺼이 감당할 무언가를 우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아득하게 그립고 따스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다시 만나기 힘든 그 '떨림'이 함께하던 날들, 그 순간이 짧은 청춘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다.


나의 화양연화.


생각으로 설레고 내면이 궁금한 누군가에게 다시 조심스레 말 건네보고 싶다.

"우리, 시계탑에서 만날까요?"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