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무렵의 나는 전혀 새로운 동네로 이사하게 되었다. 안전성에서 위태로운 연탄보일러가 장착된 10평대 4층짜리 아파트.
온수는 어림도 없고, 나무로 된 마루는 난방이 되지 않는 아파트와 일반주택의 중간형 정도였다.
요즘 말로 나 홀로 아파트, 주변엔 논밭과 초가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겨울이면 논밭을 가르는 개천을 중심으로 철새들의 엄청난 군무를 볼 수 있었는데, 매일같이 보는 광경이라 오히려 특별한 줄을 몰랐다.
다들 함께 가난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 의도치 않게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극소수 동네 사람들의 얘기가 시간을 따라 전설처럼 드문드문 전해졌다. 그 전설의 시작과 함께 아름다웠던 개천은 급격한 오염을 거쳐 콘크리트로 무심히 덮여버렸다. 개발의 열기에 취해 아무도 이런 일은 안타까워하지 않던 시대였다.
아버지는 그 벼락같은 기회를 놓친 애석함을 애써 감추고 "그래도 아빠가 건강하고, 너도 오줌싸개 졸업하고 튼튼하게만 자라면 된다. 별 거 없고 그게 행복이더라."라며 새끼손가락으로 자조를 휘저어 섞은 막걸리 사발을 앞에 두고 푸석하게 웃었다.
평생 시내버스로 통근을 하던 아버지였다.
그러다 느지막한 나이에 몇 번의 낙방 끝에 겨우 딴 운전면허증과, 도대체 믿기 힘들지만 운전 연수에서 매번 듣는다는 극찬을 안주 삼아 막걸리 잔을 비웠다. 곧 우리도 '자가용' 타고 다니자며 공수표를 잔뜩 날리고 생긴 내면의 공허를 아버지는 들이켜는 막걸리로 보충하곤 했다.
이후로도 오랜 시간 계속된 막걸리와 공수표, 누룩 냄새를 따라 설파하는 낮은 행복관 등 어느 것에도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냥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막걸리는 물과 허무로 빚어 스치는 실바람에도 뚫릴 방패에 불과해 보였다.
산악회장으로 갈고닦은 신체적 건강이 모든 것이고, 그걸 무기 삼아 끝내 버텨주겠다던 아버지는 정작 그와는 무관한 어이없는 사고로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남긴 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돈' 되지 않는 것들만 정성스레 모아둔 우표첩, 짧은 배움에도 꽤 솜씨 있는 글이 누런 종이에 번져있는 낡은 일기장 몇 권, 검은색 수동 펜탁스 필름 카메라, 그리고 '지키지 못한 약속'이었다.
날 선 채 커가는 나와 막걸리 잔을 숙인 면전에 두고, 어색한 침묵과 웃음 속 기운 잃은 아버지의 모든 담화는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될 것을 우리 둘은 이미 예감했다.
지나고 보면 '운'에 불과한, 결과도 아닌 과정 어디 즈음을 성적표로 받아 들고 아버지는 당신 자신의 선택을 탓했을 것이다. 밑술처럼 침잠하는 삶을 다시 끌어올리려는 듯 막걸리를 휘저었을까.
불운을 그저 운이 없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건 우연에 의해 책임을 떠맡은 자의 숙명이다.
우연을 운명으로 수용하는 것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의미한 삶을 설명하는 한 줌 의미이자 족쇄가 된다.
아버지가 내미는 손길을 통해서는 완강히 거부하던 막걸리를 아버지 없이 한때 많이도 마셨다.
"배고파서 대포 한잔하고 왔다." 하던 오래전 아버지처럼 뒷골목 대폿집에서 오백 원, 칠백 원 하던 놋그릇 막걸리 한 잔에 공짜 김치와 멸치를 안주로 끼니를 대신해 마셨다. 아버지의 기일에 툭툭 자른 부침개 몇 장을 앞에 놓고 벌컥벌컥 삼켰다. 힘에 부치는 일상이 괴로우면 아무 벤치나 풀밭에 주저앉아 마셨다.
막걸리에 취해 세상이 흔들리면 그래도 나 혼자가 아니고, 휘청이는 하늘땅이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흔들리는 건 나 혼자뿐이었다는 걸 아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이젠 거의 마시지 않는다.
아버지의 막걸리도 당신을 더 흔드는 데에만 성실하게 이용되었을까.
마지막 막걸리 잔을 앞에 둔 그때의 아버지와 때로 쓴맛 나는 일상 앞에서 무너지는 나는 어느덧 비슷한 연배가 되었음에도 아직 건배를 나누며 한 상에 놓이지 못했다.
아직도 다 성장하지 못한 내 입으로 이제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쉽게 말을 건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끝내 서로에게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고 사라질 수가 없는 운명 같은 우연으로 엮여있다.
언젠가 내게 낱알로 남은 미련마저 털어내고 편안해지면 그땐 가능할까.
당신의 맑아진 막걸리와 나의 평화로운 위로를 휘휘 저어 만든 술잔을 앞에 두고 조용히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