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이 수능이었다.
여전히 많은 생각으로 복잡한 나의 하루는 수능과 무관하게 고요한 가을 날이었다.
같은 시간대의 가을을 지나가지만 각자 지닌 풍경과 온도가 다르다.
기대, 갈망, 환호, 허탈, 분노, 체념의 정서가 뒤섞여 수험생 가족들의 하루하루를 할퀴고 관통하는 잔인한 시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최소한 이 난장에서는 단 하루 수능 결과에 의해 인생의 성패도, 승패도 모두 결정되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난다. 수능일 오후 5시 무렵부터는 주변의 어떤 위로나 가르침도 침묵보다 나을 것이 없는 개별적 혼돈 지경에 들어설 것이다.
아이가 수험생이었던 겨우 3년 전, 그해 가을과 겨울을 우린 어떻게 지나왔던가.
내가 미처 몰랐던 3년 전의 이야기를 아내에게 전해 들었다. 일단의 홀가분함으로 저녁을 즐겁게 먹고 난 고3 수능일 저녁 가채점 후 아이는 물 한 바가지를 부어놓은 것처럼 이불이 흠뻑 젖을 정도로 소리 없이 혼자 울었다고 한다.
첫 시간 시험을 치르던 중 이미 마음이 붕괴되었고 그래서 점심도 먹지 못했다. 긴장하고 움츠러드는 성격이 하필 그때 더 심하게 작동했을까. 답안지를 잘못 작성한 수준으로 사정 없이 폭락한 성적을 받게 된 아이. 불수능이 현이에게만 찾아온 건 아니건만 유독 타격을 너무 크게 받았다는 억울함이 컸나 보다.
꽤 긴 시간 무거운 집안 분위기에 나도 곤란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의 성적과 진로 등에 대해서 만큼은 숟가락을 얹지 않던 나는 일반적 시각으로 무관심 아빠였다. 이 상황에 대한 발언은 자제하는 편이 나았다.
그러던 연말, 현이는 위풍당당 재수를 선언했다. 마음 정리를 다했구나, 위안도 들지만 당당한 태도에 특히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 뭘 잘못했다고 주눅이 들어? 뭐든 어깨 펴고 해도 돼.' 생각으로 응원했다.
1월 초가 되었다. 아침부터 그 사이 좋던 모녀간이 다소 냉랭한 듯하더니 아내는 외출했다.
아이와 식탁에 마주 앉아 뭘 좀 먹이려고 이것저것 말을 걸어 보는데 삐딱한 태도가 영 탐탁지 않다. 훈계를 해야 하나,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침묵을 견뎠다.
그리고 건넨 한 마디.
"현아, 너 혹시... 힘드니?"
찰나의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본 적 없는 굵은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온몸의 수분을 다 뽑아낼 듯 흐느낌도 없는 오열에 덜컥 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아뿔싸, 상처를 딛고 당당한 게 아니었구나. 내가 아이의 감정 상태를 놓치고 있었구나.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고 괴로운 건 이 녀석일 텐데...'
일어나 등을 토닥인다. 실컷 울도록 두었다.
혼내는 대신 결정적 질문을 하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구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울음이 잦아들고 몇 가지 묻다가 더 울게 만들 것 같아 멈추었다. 아빠가 성적에 왜 무관심한지 이야기를 해주는 게 나은 상황이었다. 몇 등을 했는지, 몇 점을 받았는지 나는 물은 적이 없었다.
"그동안 고생한 시간이 다 부정 당하는 것 같아 억울하지? 당연히 그럴 거야. 작은 생명으로 태어나고, 어리고 무지한 부모의 시행착오 속에 이 정도까지 자라면 말이야. 우린 그 자체로 기적의 확률을 통과하고 있는 특별한 존재야. 거기에 더해 매번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운동하길 바라는 건 욕심 아닐까."
"현이가 보낸 시간이 충실했다면 언젠가 증명이 될 텐데 다만 그게 꼭 이번 일 거라는 보장이 없어. 세상은 적당히 복잡해. 그날 컨디션도, 날씨도, 앉은 자리와 주변 공기도 모두 운이야. 단 한 번 시험으로 지나온 모든 시간을 감히 누구도 평가할 수 없지만 다른 뾰족한 방법을 어른들이 아직 못 찾은 거야. 그래서 아빠는 너희 세대에게 미안해."
"네가 보낸 시간이 당당하면 스스로 알아주면 된다. 그럼 다음 기회에, 또 다음 기회에 더 나은 결과를 받을 거야. 아빠는 그걸 믿어. 현이가 재수하지 않고 그냥 집 가까운 학교를 간다고 해도 아빠에게는 여전히 예쁘고 자랑스러운 딸이고, 대학 가지 않겠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어떤 길을 선택하든 다음 기회, 다른 기회가 있다고 말해주고 실제로 그렇게 돕는 사회가 옳은 공동체라고 믿어. 아직 미성숙한 사회가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 그게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이야. 이제 겨우 한번 넘어진 거 아무 문제 없어. 괜찮아."
"살아온 하루하루가 모두 귀한 우리 삶인데, 시험 하나로 쌓아온 삶을 무너뜨릴 필요가 없잖아. 현아, 재수하는 1년, 견뎌낼 수 있겠어?"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현이. 안쓰럽다.
"그럼 해보자. 그 일 년 큰 손해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냐. 밥 잘 먹고 잘 자고 즐겁게 살아보는 거야."
나는 아이의 성적에 무관심한 아빠다.
그리고 나는 아이의 정서 상태와 아이를 웃겨주는 일에만 관심 많은 아빠다.
자기주도학습형 재수 학원을 다니며 신경성 위장병과 약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이때부터 지금 다니는 대학교의 험난한 시험 기간까지도 아이는 7~8시간을 꼭 잔다) 잘 버틴 끝에 최선은 아니고 차선 정도 되는 학교에 무난히 합격했다.
기쁨도, 아쉬움도 모두 품은 현이에게 어린아이 때처럼 신나게 축하해 주며 신영복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이런 이야길 한 걸로 기억한다.
내 현재 능력의 70~80% 자리에 가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그걸 '득위'라고 한다.
70 능력으로 100의 자리에 가는 것을 '실위'라고 하는데, 실위는 결국 자기를 파괴하고 주변조차 힘들게 한다.
득위에서 남은 30% 여유가 창의성과 예술성을 낳는다.
본격적인 전공 수업으로 학기를 치열하게 보내고 있는 아이가 어느 평일 저녁 먹으러 기숙사를 찾아가 만났을 때 내게 말했다.
"아빠, 이젠 티끌만 한 미련까지 다 접었고 지금 공부에 만족해. 그리고 아빠, 클래식 공연 보고 싶은데 같이 갈 친구는 없고 나랑 같이 가요. 너무 비싸서 나 혼자는 못 가겠어."
"좋지. 근데 혹시...... 친구들이랑 못 어울리는 건 아니야?"
"음악이나 예술 취향은 친구들 따라가기가 힘들더라고. 다른 놀이는 같이 하니까 걱정 마요. 아빠가 어릴 때부터 데려가 줘서 그런지 가끔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그리워."
벌써 자기중심을 잡고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내겐 아직 어린 딸이지만 자신만의 삶을 이미 그려가고 있고, 때로 아프고 실패하고 때로 기뻐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번 수능을 앞둔 주말, 몇 주만에 집에 온 현이에게 이제서야 물어보았다. 이제는 편히 말할 수 있을까.
"현아, 고3 때 말이야. 수능을 어쩌다 망친 거였어?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던 거야?"
오늘의 현이는 빙긋 웃는다. 그러고는 다정한 엄마와 무관심 아빠의 눈을 맞추며 조잘조잘 말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