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겐 군살이 없었다
작은 몸에 야무진 주먹을 가졌었다
술잔 비우는 날이 적었다면 좋겠지만
그의 쓴 인생에 비하면 술은 싱거웠을지도 모른다
기껏 마신 알코올을 내보내려
새벽마다 그는 뒷산 공원에 들어섰다
그래야 술 들어갈 자리가 다시 났을 것이다
철봉 턱걸이로 단련된 그는
어느 날 평행봉에 서툴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선 자세로 오르락내리락 힘겹던 게 몇 날,
앞뒤로 몸을 흔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공원 제일 고수가 되었다
얇은 팔로 힘쓰는 게 싫던 나는
그의 평행봉 권유를 거절했다
평행봉 대신 철봉에 매달려 몸을 흔들며
변칙의 방식으로 턱걸이를 스무 개씩 했다
반칙 같지만 그것도 괜찮네, 하며 그는 웃었다
그는 늘 내 앞에서 멋쩍게 웃었다
평행봉은 그와 나란히 서서 땀을 받았고
그와 나는 끝내 나란히 서지 못했다
나는 이미, 마지막 아버지보다 늙었다
우리의 시간도, 평행을 놓쳤다
두 개의 나란한 쇠막대 사이에서 아버지는 매일 온몸을 훅훅 흔들었다. 그것이 어젯밤 적립한 술독을 뽑아내는 일이었는지, 가장으로서 짊어진 삶의 무게를 버티는 훈련이었는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평행봉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 두 선이다. 그는 나와 나란히 마주 서고 싶어 했으나 말하지 못했고, 나는 철봉에 매달려 '배치기'라는 변칙 턱걸이를 했다. 그건 일종의 보여주기식 반항이었다.
그의 마지막 나이를 이미 뛰어넘은 지금, 문득 나의 팔뚝을 본다. 그의 야무진 주먹은 지나간 영화의 필터 낀 잔상처럼 흐릿하고, 그가 고독을 견뎌낸 악력 역시 짐작하기 어렵다.
우리는 끝내 닿지 못했지만, 이제야 나는 이해의 단계로 넘어서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가 짓던 그 멋쩍은 웃음은 아마도 내가 거부하는 평행봉 대신 선택한 다른 방식의 나란히 서기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