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의 화려함과 자연의 민낯 사이
글과 사진 | ⓒ 책방삼촌
여수는 빛의 도시다. 항구에 가만히 몸을 담근 어선들은 찰랑이는 검은 물결 위에 내내 붓질을 해댄다. 도시는 밤의 바다조차 내버려 둘 수 없었는지, 해안선을 따라 손에 손을 이은 점선으로 기어이 빛을 밝힌다. 그 사이를 교차하는 휘황한 조명들은 도시의 불면을 증명한다.
그래서 여수는 쉬지 않는다. 아니, 쉴 수 없다. 설레는 걸음들이 닿고 또 닿아 거대한 동력이 되었다. 잠깐의 머무름으로 여수라는 도시의 속살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스쳐가는 나그네의 조급한 감각에 걸려든, 몇 가지 강렬한 풍경의 파편들을 주워 담아 기록해 본다.
돌산대교 아래, '미남크루즈'라는 거대한 배가 정박해 있다. 주말 밤이면 여수에서 가장 화려한 불꽃쇼를 보여준다고 자찬하는 배다. '미남'이 아니어도 승선에 문제는 없다는 걸 몸소 확인하며 배에 올랐다.
배는 돌산대교와 낭만포차촌을 지나 엑스포공원 인근까지 어둠을 가른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불꽃쇼다. 승선하기 전에는 '고작 배 위에서 하는 불꽃놀이가 놀이공원 흉내나 내겠지' 하는 냉소적인 마음을 품었다.
그러나 여수의 인공적인 빛이 약해지는 바다 한가운데서 첫 번째 불꽃이 터질 때, 그 얄팍한 냉소는 무너진다. 캄캄한 밤바다를 캔버스 삼아 터지는 화약의 파편들은, 젖은 가슴에 무자비한 방망이질을 해댄다. 나이가 들어 무뎌졌다고 믿었던 감각들이 다시 깨어난 것인지 불꽃은 여전히, 그리고 압도적으로 황홀하다. 더군다나 여긴 흔들리는 바다 위가 아닌가. 나는 어울리지 않게 호사스러운 밤을 보낸다.
여수해상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자산 정류장으로 향했다. 해가 떨어지는 시간을 계산한 선택이었다. 몸서리치게 추운 날이었으나 하늘은 거짓말처럼 평화롭다. 고작 얇은 철선 하나에 의지해 휘영휘영 바다를 건넌다.
산의 고비를 꼴깍 넘고 나면 시야가 뚫린다. 노을 지는 하늘과 탁 트인 대교 주변 풍경이 아찔하게 다가온다. 발아래를 내려다본다. 여수에는 온갖 종류의 빛들이 피아노 건반처럼 끝없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여수의 빛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 빛을 좀 더 조용한 호흡으로 즐기고 싶다면 남산공원이 제격이다. 돌산대교 건너편, 아직 관광객의 소란함이 덜한 곳이다. 폭넓은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화려함 뒤에 숨은 도시의 침묵을 보기에 알맞은 장소다.
가족이 잠든 새벽, 홀로 향일암으로 향했다. 평소 일출에 무덤덤한 편인데, 이왕 여수까지 왔으니 해를 봐야겠다는 강박이 핸들을 잡게 했다.
시간은 정확히 맞췄다. 하지만 여행 내내 이어진 초강풍이 마음의 길을 막았다. 향일암까지 오르는 가파른 계단은 포기하기로 타협했다. 대신 주차장 위 해맞이 광장에서 해를 만났다. 낮게 낀 검은 구름 탓에 극적인 일출 사진은 얻지 못했다. 결국 향일암 아래를 서성이다 왔다는 사실 외에 남길 것은 없으나, 그 지독한 바람에 떨었던 시간만큼은 뼈에 깊게 새겨졌다. 때로는 보는 것보다 견디는 것이 더 오래 남는다.
여기저기 흔한 것이 레일바이크지만, 바다 옆을 달린다기에 여수해양레일바이크를 찾았다.
시작은 상쾌했다. 바다를 옆에 끼고 페달을 밟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조악한 조명을 설치해 둔 터널로 진입한다. 터널 구간이 지나치게 길다. 바다를 누려야 할 철길이 어설픈 조명 쇼에 갇혀버린 꼴이다.
전체 코스는 짧고, 춘천처럼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동으로 가는 구간도 없다. 오가는 내내 힘껏 저어야 하는데 정작 바다를 보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에 기대어 '철길'이라는 빈약한 콘텐츠를 억지로 욱여넣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바다 옆 철길을 굳이 경험하겠다면 말리기 어렵지만, 누군가 묻다면 추천하고 싶은 기억은 아니다. 자연은 훌륭했으나 기획은 게을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