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여행
아는 만큼 보이는 산책로
변변한 호텔이 없는 영주 풍기에 국립산림치유원이 있어 이곳을 숙소로 정했다. 치유원의 걷기 좋은 산책로와 간단한 식사 제공도 선택에 한몫했다. 며칠 전에 예약했음에도 객실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숲 속의 집이 보이는 풍경은 더 좋겠지만, 침대가 있는 숙박치유동에 있는 방을 골랐다. 이 방은 말하자면 장애인 일행이 묵을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다. 천혜의 부지에 훌륭한 시설을 지었음에도, 침구는 왜 아직 수준 이하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예약이 너무 몰릴까 봐 일부러 조절하는 것일까.
넓은 방에 놓인 좁은 침대는 매트리스가 너무 물러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잠자리가 불편할 수 있다. 이불장에는 추가 침구가 충분하지만, 수건 등 개인 세면도구는 직접 챙겨가야 한다.
저녁과 다음 날 아침 식사는 치유동 옆 식당에서 해결했다. 숙박과 함께 한 끼에 8천 원으로 미리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산림치유 음식으로 차려준다는 밥상을 기대했지만, 흔히 보는 인스턴트형 급식이 제공되고 있다.
이유는 예상 가능하다. 위탁 운영 방식이라면 식수가 충분치 않을 때 이윤 문제가 생길 테고, 이를 보충해 줄 예산은 없었을 것이다. 산림치유음식 안내 배너는 이제 치워도 될 것 같다.
식사 후 너무 어두워 산책이 불가능한 치유원의 밤은 잠깐의 독서로 보냈다. 숙박 예약 시 필수로 결제했던 수채화 키트를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아침 식사 후 치유원 안을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았지만 경사가 심하다. '하' 난이도 길이 여러 군데라고 안내되어 있지만, 아픈 사람에게 만만한 정도의 산책로는 아니다.
두려울 만큼 캄캄하던 곳에 빛이 내리니 이렇게 아름답다. 가시광선은 우리에게 얼마나 절대적인가. 최소한 태양신을 모시던 인류 역사의 일부를 이해 못 할 이유가 있을까. 산속에서 기지개를 켜며 느린 걸음을 옮기며 아직 남은 가을을 마신다.
체크아웃 후 차를 몰아 치유원을 나서면서 예천 방향으로 바로 우회전했다. 조금 올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작은 주차장과 건물 하나를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주말에만 카페로 사용하는 곳인 모양이다. 여기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걸어 오르면 2.5km의 무장애 데크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알음알음 찾아야만 하는 이 불친절함은 빛이 부족한 곳의 깜깜함처럼 우리를 반기며 안내해 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이 정도는 찾을 수 있지 않나? 이 정도는 걸을 수 있지 않나?' 같은 태도를 없애고 디테일을 강화할수록 포용적인 사회가 된다고 믿는다.
물 몇 모금과 귤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나섰고, 헤매면서 어렵사리 데크길을 찾았다. 그 사이, 막 내리기 시작하는 눈송이처럼 살랑살랑 날리는 단풍잎과 풍경을 보면서 경로 탐색의 갑갑함도 함께 잊었다.
길고 편안한 데크길은 아주 훌륭하다. 걷는 중 각각 속도를 달리하며 겹겹이 지나는 원근의 다양한 풍경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이런 좋은 길을 만들었으면 더 많은 국민이 누려야 하지 않겠나. 첫 방문자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관점을 바꾸고 이 경로의 처음부터 다시 보길 바란다. 아름다운 광경을 사진에 담아내기 힘들 정도로 걷기 좋은 길이다.
과호흡 하고픈 소백산 자락의 공기와 가을이 남겨주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경북 영주 국립산림치유원에서 한 산책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렇게 짧은 영주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떠나기 위해 지도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