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는 신라 시대 화엄종 사찰로,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가파른 중턱에서 소백산과 영주시를 바라보고 있다. 그 유명한 목조 건축물 무량수전을 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름다운 산사이다.
2024년 가을 영주여행의 풍경으로 소개한다.
영주에 접어들 때만 해도 남쪽에 먹구름이 위협적이었으나 점심을 먹는 동안 가을 하늘이 넓고 맑게 열렸다. '우릴 반기는 건가' 하는 자기중심적 해석은 이제 하지 않는다. '운이 좋구나' 정도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학사와 거리가 좀 있는 소재로 유명해진 동양대를 씁쓸하게 지나고 소수서원을 스친 후 부석사에 도착했다. 일요일 오후였고, 주차할 곳 찾기가 난감했으나 또 운 좋게도 입구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오르막이 심해지는 초입에서 혼자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로와 계단이 아직 어려운 동반자를 혼자 두고 가니 잘 쓰지 않던 큰 보폭과 빛의 속도(!)를 꺼내다 보니 풍경을 온전히 즐길 시간은 허용하기 어렵다. 인파가 많아 사진 남기기도 어려웠다는 걸 돌아와 파일 정리하다 보니 새삼 알게 되었다.
가파른 계단길이 시작되며 웃옷을 하나 벗었다. 벗어도 버리지 못하니 가벼워지지도 않는구나, 허리춤에 질끈 묶었다. 여기저기 해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경상도 사투리 억양은 사용자마다 정도가 다르지만 이날은 그 격앙된 톤처럼 훈계의 지점도 높게 느껴졌다. 아마 몰입하지 않고 어깨너머로 들어 더 그럴 것이다. 거리감의 문제는 언제나 크게 작용한다.
일출 명소라는 국보 무량수전이 가까워온다. 신라 시대 역사에는 전설이 양념처럼 끼워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부석사에는 의상 대사와 선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속속 몰려드는 사 람들의 관람을 방해할까 봐 무량수전은 사진보단 눈으로 담아 두었다. 무량수전 옆 수줍게 머리를 내밀고 있는 선묘각은 산의 품에 폭 안겨 있다. 선묘는 전설 속에서 의상 대사를 사랑한 중국 여인으로, 신라로 떠난 의상을 따라오다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으나 그 영혼이 의상을 보호하고 부석사 창건을 도왔다고 한다.
의상 대사의 숨결이 녹아 있을지도 모르는 물을 몇 모금 마셨다. 수질을 따지는 건 배부른 이야기일 때가 있다. 목을 축이는 게 더 중요했고, 그 한 모금은 생명수 같다. 올라온 길과 다른 경로로 빠르게 내려가며 풍경을 담는다. 떠나며 뒤돌아 보는 사물에는 벌써 그리움이 오후 햇살처럼 묻어 있다.
내 걸음을 기다려준 출발점을 재회하면 그 시간보다 긴 세월을 담뿍 느낀다. 초입의 많은 사과 판매상은 풍기에서 산 사과 때문에 외면하고, 직접 볶고 있는 땅콩을 은근 바라보며 서있다가 한 봉지 사서 담아 넣었다. 이렇게 맛있는 땅콩을 먹은 적이 있던가. 부석사의 사과보다 부석사와 땅콩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