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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여행 ③ 소수서원 "읽거나 잠들거나"

by 책방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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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여행

시간의 결을 따라 걷다

소수서원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내려다 본 풍경 어느 지점에 소수서원이 있다. 소수서원은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부석사에서 풍기 방향으로 천천히 운전하니 15분 정도 걸려 도착했다. 반대 방향 풍기역에서 올라오면 소수서원까지 10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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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군수에 의해 백운동서원이란 이름으로 세워진 후 퇴계 이황의 노력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소수서원'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2019년 '한국의 서원' 9개 서원에 소수서원도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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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 원의 입장료가 있는데 '주'가 뒤에 들어가는 도시의 시민들에게는 50% 감면이 있어 재미있다. 경기도 광주, 양주, 파주 등과 청주, 충주, 공주, 나주 등이 해당된다.


소수서원 입구로 들어가면 적송으로 이뤄진 숲을 만난다. 부석사에서 단풍을 실컷 보고 온 터라 오히려 신선하게 들어오는 초록의 숲을 여유롭게 즐기게 된다. 문득 겨울에 와도 좋겠구나, 미리 그립다. 부석사만큼 사람이 많지 않으니 걸음을 늦추고 긴 숨을 들이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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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잠시 걸으면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두 그루를 만난다. 500년의 시간을 두고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퇴계 이황의 발자취와 깊은 고민을 따라 서원 마당을 이리저리 걸어본다.


은행나무 아래 학생과 학부형 무리를 앞에 두고 해설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반말과 면박이 태반인 해설사의 아슬한 줄타기와 당당함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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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건너 취한대 경렴정

경렴정은 시를 짓고 토론하던 곳이라고 한다. 서로 포용하고 관용했을까, 비판적이고 치열했을까. 정치사회적 토론이냐 서정적 시어의 교환이냐에 따라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대정신과 현실 사이의 갈등은 깊고 깊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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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책을 보관하던 장서각이 아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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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방재와 일신재

선생들의 숙소인 직방재와 일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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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재 지락재

유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던 학구재와 지락재의 고요한 생동감. 지락재 옆을 지나던 젊은 대학생들의 대화가 들린다. "와, 여기 공부 저절로 될 것 같지 않냐?" "잠 잘 올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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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을 놓고 누구는 공부를 떠올리고 누구는 잠을 떠올린다. 능력주의의 자기계발적 방법론으로는 이 두 가지 태도가 모든 차이를 낳게 된다며 강박적으로 성공을 가르치는 사례로 사용할 것이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공부를 위해선 잠도 잘 자야지. 공부도 잠도 모두 깊어질 만한 곳에 서원을 둔 이유를 이해할 순 없는가.


공부가 무엇인가. 공부를 왜 하는가. 우주와 인간의 미지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끝없는 탐구 같은 원천은 증발하고 문제 풀이로 서열만 나누는 사회의 운동 에너지는 소모적이다. 공부는 깊고 치열하게, 잠은 깊고 편안하게. 지적 놀이를 함께하는 동무들. 이 모든 것을 목표로 한 것이 서원이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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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해지는 기분은 공통적이고, 이를 두고 하는 상념은 제각각이다. 마당의 단풍과 하늘이 아름답다. 소수서원 방문은 가을이 제격이다.


500년 시간의 결을 따라 걷는다. 시간과 세대를 넘는 가르침과 지혜를 만나면 좋겠지만 나의 한계가 가로막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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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여행의 모든 곳이 좋았다. 소수서원의 특별한 시간 경험은 특히 그랬다. 공간이 전해주는 상상 밖 울림을 고요히 새겨 두었다.


숙소 겸 산책지인 국립산림치유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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