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평 레일바이크와 자라섬, '우리'의 가을 풍경

by 책방삼촌


가평 레일파크 레일바이크, 자라섬 꽃동산


나이만 먹어가는 나를 반겨주는 모임이었다.


2024년, 이 모임에서 가을 야유회 겸 워크샵을 함께 떠났다. 행선지는 멤버 중 의견 개진에 적극적인 고마운 친구의 추천을 받아들여 가평이 되었다.


북한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글램핑장이다. 희게 보이는 벽이 튼튼한 '천'으로 되어 있기에 펜션이 아니라 글램핑장이 된다.



"세계는 개념의 정립으로 이루어진다. 나의 세계는 나의 개념에 의해 형성된다."

- 책방삼촌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엎드려뻗쳐' 대신 미리 와서 숙성시켰다는 연어를 먹으라며 내놓았다. 유난히 두툼한 연어의 두께도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요리에 일가견 있는 남자를 매력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이 친구들도 이렇게 된 건지, 요리라는 게 사실 하기에 따라서 재미도 있고 보람 있는 일이라서인지 모두 주방에서 적극적이다.


이럴 때 나는 굳이 나서겠다고 경쟁적으로 팔을 걷어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뻣뻣하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깊은 칭찬과 감사를 전하는 일에 마음을 쏟을 뿐이다.


참석한 멤버들에게 책 선물을 하나씩 했다. 각각의 책을 소개하면서 원하는 사람에게 나눴는데 대체로 많이, 편하게 읽히는 도서들을 위주로 골랐다. 한강의 소설은 미리 부탁해 두었다 받았는데 발행일이 미래의 날짜인 이유를 설명했더니 출판사 운영하기로 했냐며 다들 즐거워했다. 다행이다.


소년이 온다 저자: 한강 출판: 창비

쇼코의 미소(특별 한정 에디션) 저자: 최은영 출판: 문학동네

밝은 밤(특별 한정 에디션) 저자: 최은영 출판: 문학동네

여행의 이유 저자: 김영하 출판: 복복서가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저자: 조경란, 신용목, 조해진, 반수연, 안보윤 출판: 문학동네

공정하다는 착각 저자: 마이클 샌델 출판: 와이즈베리

밥 먹다가, 울컥 저자: 박찬일 출판: 웅진지식하우스

문장과 순간 저자: 박웅현 출판: 인티N

심플하게 산다 저자: 도미니크 로로 출판: 바다출판사


이야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와 인공지능 시대 효율적 업무를 위한 이야기 시간까지 고주망태 없이 이야기로 가득한 알찬 밤을 보냈다.





가평레일파크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장터길 14


첫날 미리 포장해 두었던 양평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예약시간에 맞춰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 가평레일파크로 이동했다.



예약해 두었다는 티켓 발권을 위해 줄을 섰는데 바로 앞 외국인 여성이 뭔가 곤란한 상황인 모양이다. 매표소 직원이 꽤 유창한 영어로 응대하고 있었다. 아, 국제적인 레일바이크로군.


김유정역 레일바이크를 예매하고 가평으로 온 것이다. 지금은 이미 김유정역으로 택시 타고 가도 늦었으니 이곳에서라도 탑승하길 원하면 남은 표 구매하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그녀는 상황을 이해하고 여기에서 레일바이크에 올랐다. 엇비슷한 지역에 여러 군데여서 어려울 만도 하다. 더 섬세한 안내가 필요하겠다. 그나저나... 오, 내가 이 대화를 알아듣다니!!



레일바이크를 타고 물안개 낀 강을 건너 경강역으로 향하는 아침, 문득 이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지금 가장 소중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곧 소멸할 안개처럼 우리도, 우리 사이도 흩어지겠지만 그렇기에 지금 우린 가장 소중한 사이인 것이다. 우린 이날, 이 철길 위에 함께 발 구르고 있었다.


가을 아침 기지개 켜는 풍경 사이를 비집고 햇살이 만들어 내는 그림을 철길 따라 밟으며 가다 보면 어느새 코스모스 가득한 경강역이다.



레일바이크 페달은 조금만 열심히 저으면 동력이 생겨 자동으로 달려가니 예전처럼 힘들지도 않다.




경강역 폐역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남산면 서천리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 해당하는 환경에서 의도 없는 생명으로 수정되었기 때문인지 철길과 간이역은 때로 가슴이 무너지기도, 벅차오르기도 하는 데 통제할 수 없는 호르몬 작용 같은 역할을 한다.


걸작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고 이선균 배우가 매일같이 건너던 철길이 내게 그랬다. 더 이야길 이으면 또 다른 이유로 서럽게 울컥할 것 같다.


"어떤 종류의 울분은 세월조차 약이 되지 않는다."

- 책방삼촌


점심은 먹고 헤어져야 하니 그 사이엔 자라섬 산책을 하자고 한다. 그래, 이번엔 주도자가 아닌 내가 할 일은 그저 따라 주는 것이다. 잔소리 없이.



자라섬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자라섬로 60

남도꽃정원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산5-5


마침 꽃 축제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남이섬에 비해 한산하고, 꽃은 여전히 한창이었다. 정원과 섬과 공원의 모습을 모두 갖춘 자라섬.



저렇게 한껏 꽃잎을 피워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나. 확실한 건 우주와 지구의 역사 중 이토록 미적으로 아름다운 짧은 시기를 누리고 있는 행운아란 사실이다.


이런 절묘한 기후와 푸른빛으로 품어주는 하늘, 온갖 생명들이 살기 위해 하는 활동과 인간 문명이 장식한 풍경의 예술. 그 위를 내가 걷고 서있다는 사실의 감격.



나서지 않고 맡겨 두어도 과분한 선물을 안겨주는 이 젊은 멤버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사소한 실수와 결점에 눈 감을 수 있는 여유가 내게 생기고 있는 것이면 더 감사하겠다.


축제 기간 중엔 있었는지 모를 입장료가 없는 상태였다. 꽃이 남은 자라섬이라면 언제든 들러볼 일이다. 남이섬 가는 거대한 행렬 피하는 경로를 찾아두면 더 좋겠다.



지역이 지역인 만큼 이 여행의 마무리는 닭갈비다. 내장까지 조금 곁들이니 색다른 맛이다.


나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리를 지켜주는 선배들과 나보다 부지런한 손발로 마음을 받아주는 후배들 모두에게 감사한 날들이다. 남은 날들 따스하고 다소 느슨한 관계로 오래 함께 하길 빌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