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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산책 |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따라 걷다

by 책방삼촌

서울 산책 |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따라 걷다

수성동계곡, 초소책방, 그리고 '새로운 길'

글과 사진 | ⓒ 책방삼촌



1. 경복궁역에서 시작된 질서 없는 서울의 골목


2025년 1월, 아는 형님과 일 얘기를 나누기 위해 경복궁역에서 만났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세종마을 음식문화 거리'라는 골목길을 잠시 들어가 보았다. 현상된 필름의 조밀한 칸처럼 나눠진 각 시대의 흔적이 여러 겹 포개진 채 기상천외한 질서가 흐르고 있는 서울의 골목 풍경은 오늘도 신기하고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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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견과류 삼계탕과 시인의 하숙집 터


앞장선 형님의 걸음을 따라 외국인들의 관광 필수 코스 중 하나라는 토속촌삼계탕에서 늦은 점심을 했다. 삼계탕에 파전을 놓고 앉은 외국인들이 정말로 많이 있다. 2만원 하는 삼계탕은 견과류를 많이 섞은 듯 고소함이 그득해서 삼계탕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국물 맛을 가졌다. 외국인이 많이 찾게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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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근처 구경을 좀 해야겠다는 내 말을 듣더니 사실 산책 코스를 염두에 두고 오셨다는 형님. 인왕산을 바라보면서 겨울의 골목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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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윤동주 시인이 머물던 하숙집 터. 이곳에 머물면서 대표작들을 남겼다고 한다. 하숙집에서 인왕산 오가는 길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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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겸재 정선의 그림이 된 수성동 계곡


인왕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오르막을 걷다 보면 겸재 정선의 그림에 등장하는 수성동계곡에 닿는다. 계곡을 건너 놓인 기린교라는 조그만 돌다리가 정선의 그림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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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교를 지나 눈이 남아 있는 둘레길을 조금 더 오른다. 다리를 건너고 청운공원 방향으로 계단길을 오르면 인왕산 허리춤을 감아도는 인왕산로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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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고르면서 평탄해진 길을 따라 초소책방 방향으로 걸어가니 무무대라는 전망대가 나온다. 남산을 지나 멀리 청계산 능선까지 보이는 전망이 귀를 간지럽히는 겨울바람처럼 시원하고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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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책은 없고 빵만 남은 초소책방


전망대에서 좀 더 걸으면 여전히 뻥 뚫린 시야를 앞에 두고 자리한 베이커리 북카페 '초소책방'에 도착한다. 줄로 묶인 책은 구매용이고, 견본으로 풀려있는 책은 카페 내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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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를 찾기 힘든 카페 안에 정작 책 읽는 사람은 없다. 책 읽을 사람은 보통 혼자일 텐데 이렇게 만석이면 눈치가 보일 만하다. 눈길을 끄는 책도 꽤 있고, 온 마음을 사로잡는 빵도 여럿 있다. 아, 역시 오늘은 책보단 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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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차를 주문하고 야외 데크로 나갔다. 바람을 막아주는 투명 돔을 설치해 두어서 춥지 않게 대화할 수 있다. 우리의 비즈니스도 이런 풍경을 두고 협의하니 더 희망적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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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새로운 길', 윤동주의 육필 원고


초소책방을 나와 청운동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멈추었다. 큰 바위에 '서시'가 새겨져 있다. 이 언덕에 앉아 별을 헤며 시를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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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가면 바로 윤동주문학관 앞이다. 문학관 내부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안내를 처음 읽게 된다.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가, 아니면 화장실 찾는 문의가 너무 많았던가. 어쨌든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문학관 내부에서는 시인의 시를 낭독하는 오디오 클립을 들을 수 있다. 문익환 목사와 윤동주 시인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도 오랜만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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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친필 원고를 전시해 두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표지와 서시를 가만히 읽는다. 손글씨로 보니 더 진한 톤의 목소리가 읽어주는 듯 시어들이 밀려온다.


특히 '새로운 길' 육필 원고가 기억에 남는다.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이 낭독한 작품이다. 영화 '동주'에서 강하늘이 낭송한 시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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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촌놈의 반나절 서울 여행 종점은 여기다. 버스를 타고 이 길을 따라 다시 경복궁을 지나 서울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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