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되면 어쩔 수 없어'라는 인식을 깨고 싶었던 그 때
27살, 첫째 출산.
입사한 지 약 1년 반 정도 되던 때였지요. 팀에서 제일 막내였던 저는, 입사하자마자 결혼하더니 금방 또 육아휴직을 가게 된 겁니다. 임신을 확인하고는 펑펑 울었어요. '나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신혼도 못 즐겼는데.. 회사도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는데.. 아기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육아라는 용어도 떠올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기를 낳았을 때 제가 포기해야 할 것들만 떠올랐죠. 지금은 그 때 찾아온 생명이 귀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 땐 그게 축복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이고 어쩌겠나, 최선을 다해야지.' 싶어 뱃속 아기에게 열심히 애정을 쏟았습니다. 다행인 건 상대적으로 젊을 때 임신을 해서 체력이 받쳐주긴 한 것 같습니다. '임신했더라도 일을 열심히 못 하는 건 아니니까'라는 마음으로 이전과 다를 바없이 정말 열심히 일했거든요.
28살, 복직.
워킹맘으로서의 접하는 새로운 인생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복직을 했더니, 동기들은 이미 일도 더 잘 하고 있는 것 같고 저녁번개 모임이나 사내 동아리 활동, 운동도 '거침없이' 하는 모습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했습니다. 저의 퇴근 이후 일정은, 어린이집에서 제일 늦게까지 남아 저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하원시키기 위해 부랴부랴 뛰어가는 것이었거든요. 1시간 30분 걸리는 퇴근시간을 최대한 줄여보겠다고 매일 저녁마다 달렸어요. 제게 퇴근 이후에 하원 외 일정은 친구들이나 동기들처럼 '거침없이'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등원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이가 심하게 '엄마껌딱지'라서 떼어 놓는 것도 오래 걸리는데, 너무 곤히 잘 자고 있는 아기를 저 때문에 깨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매일 아침 깨우는 것마저 큰 맘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자고 있는 아이를 이불채 싸서 어린이집에 안고 간 적도 있어요. 제 아이의 어린이집 복장은 매일 내복이었고요. (어린이집이 집 바로 앞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7시 30분에 1등으로 어린이집에 등원해서 저녁 7시 30분에 꼴등으로 하원하는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더더욱 아침에 깨우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단 회사에 출근하면 아이는 싹 잊으려고 노력했어요. 더 솔직히는 '엄마'가 아닌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회사에 육아하시는 분들의 책상에 가족사진, 아이사진도 많았는데, 저는 일부러라도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회사 분들과 육아, 아이에 대한 얘기도 일절 하지 않았고 혹 아이 이야기를 꺼내시면 최소한의 대답만 했지, 공감이나 더 적극적인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더라구요.
왜 그렇게까지 '엄마로서의 나'를 보이기 싫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애 키우니까 일보다 애가 먼저겠지.' '애 키우는 엄마들은 아웃풋이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라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 얘기를 저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31살, 미운 4살.
회사를 그만 둬야 하나 고민했던 때였습니다. 3년을 해도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등원. 하원도 제일 늦게 했다며 더 울고 불고 떼를 쓰는 하원. 아이의 예민한 기질 때문에도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한 번 울면 2시간은 기본이라.. 목이 디폴트로 쉬어있는 아이였습니다.
아침에 깨우는 건 여전히 힘들었어요. 아니, 더 힘들어졌습니다. 왜 깨웠냐며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아이가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준비하는 것도 여간 쉽지 않았지요. 하루는 어르고 달래며 준비를 겨우 다 해놨는데 신발까지 신고는 현관 앞에서 '쉬아'를 해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젖은 신발을 벗기고 옷도 벗기고 다시 집에 들어와 씻기는데 정말 펑펑 울었어요. 아이 보는 앞에서 울어도 되나 싶은 생각도 잠시.. 그동안 힘들었던 설움이 폭발해버렸던 것 같아요. 회사에 지각하기는 일쑤였지요. '애 키우면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을 듣는 게 정말 겁나고 싫었는데, 현실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단 회사에 도착하면 힘들지 않은 척, 엄마가 아닌 척. 업무 빵꾸(?)내지 않으려고 아니 더 해내고 싶어서 퇴근 후 아이가 자면 밤에 또 일을 하며 제 몫을 채우려고 했었어요. 아무리 지각하고 육아 때문에 정신없는 출근을 하고 있어도.. 엄마라서 일을 못 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그 누구도 제게 직접 뭐라 하지 않았는데 육아로 제 발목을 잡게 될 까봐 제가 지레 겁을 냈던 것 같아요. 심지어 조금 늦어도 괜찮다며 저를 다독여주시는 본부장님도 계셨는데, 그런 기대에 제가 부응하고 싶던 욕심이 컸던 것 같기도 합니다. 워킹맘임을 티내지 않고 싶었던 마음'이 오기였든 욕심이었든 간에 육아를 하면서 일을 놓지 않고 꾸역꾸역 해낸 힘이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조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육아도, 일도 균형있게 해내는 나를 칭찬해주고 소소한 행복의 순간을 챙기며 보내보고 싶어요. 정말 다행인 건, 미운 4살이 지나고는 곧 저도 살짝 마음에 여유가 생겨 엄마라는 역할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여유가 생겨야 받아들이는 부족한 엄마였나봐요ㅎㅎ)
다음 글에서는, 워킹맘인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게 된 이후의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