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저는 입 밖으로 '딸'이라는 단어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뭔가 오글거리기도 하고, '딸'이라는 의미가 뭔가 제게 착 안 붙는 느낌이 계속 있었어요. 대신 저는 아이들을 지칭할 때는 '우리 아이들'이라고 하거나 집에서 부를 때는 '친구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의식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더라구요. 큰 애가 현재 11살인데, 11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 딸'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도 않고 떠오르지도 않는 걸 보니, 제가 '딸'이라는 단어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파보고 싶어졌습니다.
딸 (명사) 성(性)이 여자인 자식. 자기 딸의 지칭은 `딸', `딸아이' 등이고, 남의 딸의 지칭은 `딸', `따님', 등 임. - <출처> Oxford Language 사전
저의 친정 엄마 핸드폰에 20년이 넘게 저는 '착한 딸'이라고 저장되어 있습니다. 사실 딱히 엄마가 이래라, 저래라 하신 건 아니었지만 '착한 딸'이라고 저장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착해야만 한다.'는 명령으로 인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상 저는 그렇게 착하지 않습니다. 거짓말도 많이 했던 것 같거든요. 엄마가 속상해할 것 같은 사실이나 문제를 엄마가 모르게 혹은 속상해하지 않을 정도로 바꾸어 말하는 거짓말이요.
K-맏딸로서 어릴 때부터 엄마가 힘들 때 의지하는 존재여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엄마 속을 썩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굳이 속을 썩이지 않아도 엄마 주변에 엄마 맘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많아 보였거든요. 그래서 무의식 중에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고, 그래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난 그렇게 착하지 않은데.. 엄마에게 보이는 모습 중 대부분이 진짜 나답지 않을 때가 많아서였을까요? 저는 저의 아이들이 '딸'이기 이전에 각자의 존재 그 자체로의 '자아'가 더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다운 모습'을 숨기지 말고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요.
사실 '딸'은 그냥 부르는 호칭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딸'이라는 말 자체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딸'이라고 부르는 순간, 혹은 '딸'이라는 개념이 아이들에게 자신들 자체보다 더 크게 남게 된다면 자기다운 결정보다는 '딸'로서의 결정을 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엄마아빠의 눈치를 보며 본인의 생각과 바람을 마음껏 표현하고 드러내지 못할까 염려되기도 했고요.
나는 언제까지나 너희들의 엄마로 옆에 있겠지만, 너희들은 나의 딸이기 이전에 '너희 그 자체'였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