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존중하는 것, 나 역시 존중받을 영역이 있어야 가능한 것
자녀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우리 엄마들의 마음과 달리 아이와 말다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요즘은 또 사춘기도 빨리 찾아와서 10살부터 대립각이 생겨요. 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엄마도 사람인지라 매번 멘탈 컨트롤을 하는 게 쉽진 않습니다. 드라마에서도, 현실에서도 자주 들리는 엄마와 자식 간의 너무나 익숙한 말다툼 레파토리가 있듯이요.
- 엄마들: "내가 나 좋으라고 이러니?" "누구 때문에 엄마가 지금 이러는 건데!"
- 아이들: "누가 그렇게 해달래?" "엄마 맘대로 해놓고 뭘 나 위해서 그런다고 그래!"
이런 말을 막상 들으면 엄마들은 속이 터집니다. 진심으로 자식 잘 되라고 하는 말이었고 마음이었는데, 아이들이 몰라 주는 것 같고 나중에 크면 엄마 맘을 다 알게 될 거라며 자기 위안을 하기도 합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엄마친구아들>에서 딸을 혼자 키우는 돌싱아빠와 그를 좋아하는 여자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동갑인 그들이지만 남자는 부모로서, 여자는 자녀로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우리 아이는 저한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예요.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진짜 다 포기할 수 있어요. 그게 뭐든."
"포기하지는 말죠. 저도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전 엄마가 저 때문에 뭔가를 희생한다? 그게 제일 싫었어요. 그냥 그렇다고요."
자녀들을 위해 많은 걸 희생했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챙기지 못한 어머님들이, 자녀들이 커가며 당신들의 울타리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고 또 그동안 당신들이 해왔던 것들을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기분이 확 드는 순간부터 자녀와 사이가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부모님들도 보상을 바라고 한 건 아니겠지만, 사람이기에 느끼는 서운한 감정을 어쩔 수 없을테니까요.
문제는 그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을 자식을 통해 채우려는 것이 자녀들에게 알게 모르게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누가 그렇게 해달래?"라는 말이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것 같고요.
솔직히 저 역시도 어릴 때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좋지마는 않았습니다. '나도 내 의지가 있는데!' 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생각과 달리 실제로는 별반 다르지 않은 K-장녀로서 부모가 원하는 모습에 맞춰서 행동하고 성장했습니다. 엄마가 저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는 게 크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엄마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건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덕분에 일탈하지 않고 잘 큰(?) 성인이 되었고 지금은 제 의지에 따라 제가 원하는 삶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엄마의 기준에 벗어났다고 느껴지는 큰 의사결정들에 대해서는 괜히 말 꺼내는 게 조심스럽고 죄책감도 들고 큰 잘못도 아닌데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서로에게 부담과 책임, 의무를 주는 관계가 아니라 의지하고 위안을 얻고 기댈 수 있는 건강한 관계가 형성되려면 각자의 삶을 지켜갈 수 있도록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아이들은 '난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도 엄마가 알아서 해!'라는 생각이 부모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들에게 자식은 삶에서 너무나 큰 부분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어렵지요. 특히나 엄마들은 엄마로서의 역할이 생기면서 '나'로서의 삶의 영역을 영위하는 게 쉽지 않고 심한 경우에는 '나'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엄마로서의 '나' 말고 '나 자체'로는 존중받을 영역이 크게 없다는 현실 자체가 엄마들로 하여금 '상호 존중'이라는 것을 실천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저는 제가 여전히 친정 엄마로부터 느끼는 기대의 범주(테두리)가 느껴져서인지, 제가 아이에게 요구하고 부탁하는 것이 정말 아이가 원하는 것인지, 내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은 아닌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며 살 순 없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줘야 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아이들이 탐색하는 시간 동안 저도 '나'로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각자 생각해보고 그 생각을 공유하는 게 또 재미있기도 합니다.
나의 취향, 나의 선호를 차츰 찾아가며 나로서 존중받을 영역이 형성되면 기꺼이 자녀의 영역도 존중해주고픈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핑계 대지 않고 나로서의 인생 스토리를 거침없이 그려나갈 수 있으니까요. 건강한 엄마와 자녀의 관계는, 결국 엄마가 엄마로서가 아닌 나로서의 영역을 얼마나 잘 지켜가고 있는지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서로 보여주고 공유하며 건강한 매일을 보내는 것도 아이들의 어린시절에만 줄 수 있는 하나의 선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