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_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시작한다.
"아, 진짜 습관이 무섭네."
오늘도 잠을 자던 중 눈을 떠져 시간을 확인하니, 종 치기 1분 전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깊게 잠들지 못한 탓에 피곤해 더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바로 종이 쳐서 잠에서 깰 거고, 늦게 나가면 학원에서 벌점을 받기 때문에 그냥 일어나는 게 낫다.
빠라빠라빰!! 빠빠빰!!
몸을 일으키자마자 천장의 스피커에서 아침 기상 송이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룸메이트 찬혁이가 기계처럼 일어나 침대 이불을 갠 뒤, 빠르게 단체복을 입자마자 양치와 세수를 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인사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데 일어나서 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찬혁은 3월 정기 외출날 복귀와 함께 GV반에 들어온 학생이다.
"정말 저렇게 생활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를 보는 나는 항상 신기함에 탄성만 나왔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저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찬혁이는 학원 생활의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시간표를 세워 움직이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법이 없다. 게다가 항상 아침 기상을 알리는 종이 치면 가볍게 씻고 처음으로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공부하러 자습실로 간다.
그리고 모든 수업에 참여하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이나 이동하지 않고 공부뿐이다. 식사 시간에는 학원 헬스장에서 운동을 빡세게 하고 식당 운영 시간이 끝날 무렵에 그제야 밥을 먹는다. 그리고 저녁에도 기계적으로 공부하는 녀석이었다.
이렇다 보니 나와 찬혁이가 친해지는 공통점이 없어 서로 존댓말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찬혁이에 대한 이야기는 학원 마당발이자 다른 룸메이트인 진성이로부터 들었는데, 대체 무슨 재미로 학원 생활을 버티는 건지 모르겠다.
"참, 이러다가 내가 늦겠다."
오늘은 수업이 빡빡한데, 수업 전에 해야 할 과제도 있고 미리 예습해야 할 개념들이 많았다.
서둘러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진성이를 깨운 뒤 함께 운동장으로 나갔다.
"으, 졸려 죽겠다. 자고 싶다."
"근데 안 하면 아파 죽는다."
"맞아. 아프니까 진짜 짜증 나더라."
운동장에서 함께 파워 워킹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공부하다 보니 목, 손목, 어깨, 허리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손목이나 목은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파스로 해결할 수 있으나, 허리는 파스를 붙여도 낫질 않는다.
해결 방법은 허리 근육을 키우는 것이기에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 것 밖에 없었다.
아침 식사는 식당에서 콘후레이크와 조각과일이 나와 가볍게 먹고 자습실로 가서 오늘 수업 전에 해야 할 과제들을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으어, 사람 죽는다."
4교시가 끝나자마자 책상에 그냥 쓰러졌다.
1, 2교시는 국어 수업으로 수업 전에 과제로 나온 문제들을 풀어놓어야 수월하게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학과 선생님은 학생들이 문학 지문들을 숙지했다는 가정 하여 수업하기 때문에, 과제를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사전에 숙지하지 못하면 지문 속에 숨어있는 단어의 의미와 뜻을 비롯하여 핵심을 수업 때 따라가기 급급했다.
그런데 과제를 풀며 어느 정도 문학 지문들이 숙지가 되었지만 워낙 학과 선생님이 알려주는 내용들이 많아 한 번에 머리에 담는 건 불가능했다. 일단 교재에 관련 내용들을 필기해 놓고 나중에 보는 걸로 미뤄두었다.
3교시는 공강이지만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4교시에 수2 수업이 잡혀 있어 미리 한 번 훑어보지 않으면 수업 내용을 따라갈 수 없었다. 아니 이렇게 하는데도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분명 한글로 말을 하는데, 마치 외계어를 듣는 기분이다.
이렇게 미친 듯이 오전 수업이 끝나니 피곤해 자고 싶은 심정이다.
"진수야. 정신 차려."
"밥 먹으러 가자."
"어, 어."
같은 반 친구인 재원이와 건우의 말에 상체를 일으켰는데, 5분 정도 짧게 잠을 자자 복잡하던 머릿속이 좀 개운해졌다.
"이제 4월 모의고사 보는데 점점 공부 분량이 늘어날 거야. 지금 모르는 거 있으면 빨리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형, 그럼 수학 먼저 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탐구?"
"담임 쌤은 탐구 먼저 하라고 하지 않았어? 근데 수학이 어려우니까 수학 먼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쵸. 탐구는 금방 끝낼 수 있는데 수학은 끝이 안 보이니까요."
식당 가는 길에 태영이 형이 미리 정보들을 알아 놓은 게 많아 우리들에게 내용을 공유해 주었다.
"이번에 우리 엄마가 과일 보내줬거든. 같이 먹자."
"그리고 매점에 신상 과자 들어왔더라."
"딱 밥 먹고 먹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무리 지어 함께 다니니 마음이 든든하고, 대화하며 서로 가진 것을 베푸니 굉장히 재미있다.
그리고 밥을 먹고 난 뒤 디저트를 먹으며 바깥 이야기도 나누었다.
"으음. 너무 많이 먹었나?"
오후 수업이 없어 오전 수업 내용을 복습함과 부족한 수학 개념을 공부해야 하는데, 자꾸 고개가 책상을 향해 떨어진다.
해가 머리 위를 지나가자 햇볕이 따뜻하고 자습실은 살짝 선선하다. 게다가 배까지 부르니 졸음이 미친 듯이 쏟아진다.
잠을 깰 꼄 나와 스타일이 맞는 인강 수업을 태블릿을 켠다.
확실히 혼자 자습하는 것보다 영상을 보면서 하니 공부가 잘 된다.
"헉!"
그런데 이 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인강 선생님의 수업이 자장가로 들리며 정신 차리고 보니 엎드려 자고 있었고, 종소리에 놀라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딱 1시간만 하자."
잠을 깰 방법으로 게임 영상을 보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게임 시합이 있어서 결과가 궁금하기도 했고, 지금은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출근 전이라 자습실 감독하는 선생님 눈만 피하면 얼마든지 딴짓해도 괜찮았다.
순식간에 태블릿으로 유튜브에 들어가서 게임 영상을 보는데 옆에 알고리즘으로 새로운 게임 영상들이 뜬다.
굉장히 재밌어 보여서 눌러 영상들을 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영상을 시청한다.
"으그그그, 이제 공부해 볼까? 헉!!"
게임 영상을 1시간 정도 봤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확인했는데 벌써 3시간이나 있어 지나 깜짝 놀랐다.
그리고 어제 태블릿으로 신청해 놓은 수학 질의응답 명단이 뜰 시간이 지나 얼른 확인했다.
"와. 딱 10분 전이네."
학원에선 전날에 태블릿으로 학과 선생님에게 질의응답을 신청할 수 있는데, 명단은 다음 날 16시쯤에 게시한다.
내 이름은 5시 10분에 들어가 있었고, 이 시간을 지나가면 아까운 내 질의응답 신청 횟수만 깎기기 때문에 서둘러 문제지를 챙겨 교무실로 향했다.
질의응답은 수월했다.
수1을 우리 반에서 가르치는 학과 선생님은 내가 모르는 문제들을 기가 막히게 풀어주어, 마치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내 뒤에 질의응답을 신청하는 학생이 늦게 와서 그 학생의 시간까지 합쳐 20분 동안 모르는 문제들을 푸는 방법을 들을 수 있었다.
"잠깐 간식이나 먹고 갈까?"
학원 간식은 점심에 식당에서 받을 수 있는데, 점심을 워낙 잘 먹고 친구들과 과일과 과자를 먹은 터라 잠깐 강의실에 놓아두었다.
게다가 저녁 식사 전까지 1시간이 남아 배가 굉장히 고팠다.
"어, 여기서 뭐 해?"
"배고파서. 너도?"
"응."
"이 것도 같이 먹을래?"
그런데 강의실에는 먼저 건우와 윤성이가 이야기를 하며 간식 먹고 있었다.
"어차피 저녁 식사 시간까지 20분 밖에 안 남았으니까 여기 있다가 밥 먹으러 가자."
"오케이!"
윤성이의 제안에 나는 단번에 수락하며 오늘 간식으로 나온 빵을 뜯어 빈 속을 달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 자습실에서 공부하던 애들과 합류한 뒤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이제 저녁 자습에는 달려보자!! 나는 진짜 열심히 하고 있다!!"
저녁 자습을 하기 전, 나는 각오를 다지며 공부에 대한 열의를 불태운다.
오늘 담임 시간에 이상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여서 스스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제가 볼 때는 아닙니다. 제대로 하지 않는 애들이 여러 명 보이고, 곳곳에서 떠들고 있고, 자습 시간에 잦은 이동도 보이고, 학원 규칙을 벗어난 행동들이 보입니다.
더불어 여기에 친목질 하러 온 거 아니고, 공부하러 왔습니다. 최소한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주지 말고 똑바로 공부합니다.
한편으로는 이해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확실히 내 눈에도 담임 선생님의 말처럼 행동하는 애들이 보이는데, 자신은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을 직접 애들에게 가서 하면 되는데 왜 반 모두에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떻게 사람이 계속 공부만 하는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질의응답이나 간식 먹으러 혹은 화장실 이동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아무튼 저녁 자습 시간은 약 4시간 정도 되기에, 3시간은 인강을 보고 1시간은 인강 내용을 복습하기로 생각하고 인강을 보기 시작한다.
"응?"
그런데 조용해야 하는 자습실이 소란스러워졌고, 주변 학생들도 소란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