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_공부보다 딴 짓 할 때 집중력이 미친다.
"모의고사를 쳤으니 바로 강의실 자리배치를 하겠습니다."
이동 강의실이 있지만 각 반의 정규 수업은 그 반의 강의실에서 진행한다.
그렇지만 수능 때까지 한 자리에 앉아서 계속 공부하는 것은 불공평하니 우리 반은 담임 선생님이 정기 외출을 기준으로 자리 배치를 하기로 했다.
자리 배치 방법은 제비 뽑기인데, 혜택이 있는 건 반장이다.
반장은 담임 선생님이 휴무일 때 학원 콘텐츠를 배부하거나, 학과 선생님의 과제를 전달하는 등 반을 위해 수고로움을 담당하고 있어 제비 뽑기를 하지 않아도 강의실 자리를 먼저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먼저 담임 선생님이 이름 순대로 호명하면 앞으로 나오면 숫자가 적힌 나무 막대기를 뽑는데, 나중에 숫자 순서대로 다시 나와서 원하는 자리에 이름을 기입하면 그 자리가 한 달 동안 내 자리가 되는 것이다.
"너는 몇 번이야?"
"망했어. 42명 중에 35번이야."
"젠장. 난 40번이다!"
"아싸, 15번!"
나무 막대기를 뽑은 학생들은 숫자에 따라 얼굴에 희비가 엇갈렸다.
다행히도 나는 12번을 뽑았고, 내 차례가 되어 빈자리들을 확인하자 굉장히 좋은 자리들은 앞서 다른 학생들이 차지했다. 그렇지만 수업 참여하기에 나쁘지 않은 자리들이 있어 그 자리를 선택했다.
'운이 좋을 걸. 이 기세를 몰아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3월 정기 외출을 갔다 와서 나쁘지 않은 운이 찾아오자 다음 정기 외출 때까지 열심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5일도 가지 않았다.
자습실 의자에 앉아 공부하고 있지만 자꾸 고개가 꾸벅거리며 졸음이 쏟아진다.
주변에 나 말고도 졸고 있는 학생들이 보인다.
'진짜 마음이 안 잡히네.'
자꾸 며칠 전까지 PC방에서 미친 듯이 했던 게임이 눈에 아른거린다.
당장이라도 게임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정작 몸은 학원에 있어 게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밖에 나가고 싶다.'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창 밖을 보니 학원 화단에 꽃이 피어있고, 나무들도 다시 잎사귀가 피고 있었다.
게다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굉장히 따뜻하다.
몸이 점점 노곤한 것이 이대로 푹 잠을 자거나, 바닷가 구경이나 가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담임 선생님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 3월 정기 외출을 다녀오면 날씨가 따뜻해지고 놀러 다니기 좋은 계절입니다. 학원의 화단만 보더라도 봄이 온 것을 알 수 있고, 밖에서는 벚꽃 축제를 비롯해서 친구들이 어디 어디 놀러 갔다 왔다고 편지 쓰거나 SNS에 사진 올린 것을 보며 나도 더 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게다가 학원 적응이 끝났기에 여기서 풀어지면 앞으로도 계속 풀어질 테니 수업을 들으며 부족한 개념을 빨리 잡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공감이 됐다.
그렇지만 정작 이를 실천하려고 하니 너무너무 어렵다.
안다. 나도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이상하게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정작 하려고 하니 할 것이 너무 많다.
일부 학원 수업은 따라가기 벅차서 이해할 수가 없다.
학원에선 수학 정규 수업을 따라가기 학생들을 기본 수업이 있지만 다른 과목들은 인강으로 기본을 채울 수밖에 없다.
물론 내가 현역 때 공부를 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지만, 이렇다 보니 혼자 공부보다는 인강 위주의 자습이 진행된다.
'태블릿으로 기분 전환 하면 어떨까?'
쉬는 시간에 주변 학생들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들어보면 자습하다가 도저히 머리가 안 돌아갈 때, 웹툰을 보거나 게임 방송을 보면 잘 된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밖에서 봤던 웹툰의 다음 내용을 보고 싶고, 게임 방송도 보고 싶다.
물론, 우리 반은 토요일에 핸드폰을 사용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엔 정신적으로 힘들다. 지금 당장 해결해서 속이 개운 할 것 같은데, 당장 하지 못하니 답답해서 미칠 것 만 같았다.
'한 번 시도해 볼까?'
결국 나는 나쁜 마음을 먹었다.
"정말 필요한 거냐? 내가 볼 땐 아닌데?"
"요즘 탐구가 부족해서 인강을 한 바퀴 돌리려는데, 애들이 많이 여길 추천 하더라고요."
"으음."
"그래서 한 번 보려고요. 여긴 탐구 쪽 강사들이 잘하잖아요."
"그 말도 맞는데.... 기존에 다른 인강 패스 끊어놓은 게 있어서 그쪽을 보면 될 텐데 말이야."
담임 선생님은 나를 지긋히 바라보며 솔직하게 말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내는 듯했다.
허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여기서 담임 선생님의 말에 넘어가 그랬다고 했다간 딴짓을 하겠다고 우회적으로 대답하는 것이다.
쇄기를 박기 위해 나는 아니라고 말하며, 강의들을 보고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다시 태블릿을 가져와서 어플을 삭제해 줄 것을 이야기했다.
"그래. 알았다. 다시 그 인강 어플을 깔아줄 테니 쉬는 시간에 찾아가자."
"지금 바로는 안 되나요?"
"어. 지금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말과 함께 지금도 담임 선생님의 컴퓨터 메일함에 계속 메일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차마 태블릿에 어플을 먼저 깔아달라고 할 수 없어 알겠다고 하고 자습실로 돌아왔다.
'아, 뭐부터 해야 하지?'
어차피 공부가 손에 잡히는 거 그냥 공부하기를 포기하고 태블릿을 받으면 무엇부터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도 안 가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쉬는 시간이 돌아왔다.
종이 치자마자 나는 바로 담임실로 가서 태블릿을 확인하니 삭제했던 인강 어플이 깔려 있었다.
설렘을 감추며 다시 자습실로 돌아오자마자 민진이가 말했던 루트를 떠올리며 뚫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자습실의 내 자리는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학생들의 통행이 적고, 선생님들이 직접 들어오지 않으면 태블릿으로 무엇을 하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이게 아닌가? 왜 자꾸 헛돌지?'
그런데 민진이가 알려준 루트가 막히며 태블릿이 뚫리지 않는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것 중 하나가 이미 민진이가 알려준 방법은 학원 와이파이를 통해 들어가지 못하게 이미 막혔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은 다른 루트를 뚫었는데, 나는 태블릿을 안 뚫겠다고 해서 민진이가 알려주지 않은 것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지!'
반드시 태블릿을 뚫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지금 공부가 중요하지 않고, 눈앞의 태블릿으로 어떻게든 딴짓을 하겠다는 것이 1순위였다.
여러 번 화면의 경로들을 탐색하며 만지다 보니 총 40여분의 시간을 투자해 태블릿을 뚫을 수 있는 루트를 찾아냈다.
'우와와와와!!'
자습실에서 이 기쁨을 속으로 소리치며 웹툰 사이트에 들어가 로그인하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웹툰 리스트들이 보였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학생들은 모두 눈앞의 책이나 태블릿을 보며 공부하고 있었고, 자습실을 순찰하는 선생님도 거리가 멀어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없는 위치였다.
그렇지만 주변 학생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태블릿을 몸 가까이 두고, 태블릿 뒤편에 책을 세워 보는 척 모션을 취했다.
'오? 이 작가.... 신작이 나왔네?'
'다음 편이 진짜 궁금하다!!'
이렇게 밀린 웹툰들을 보다 보니 신작 페이지도 구경했다.
그리고 굉장히 재밌어 보이는 웹툰들도 발견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웹툰에 빠졌다.
'아니다! 정신 차리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간신히 정신줄을 잡고 진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손목시계로 시간을 살피니 자습 시간이 딱 15분 남았다.
'어차피 자습 시간 끝나면 퇴실이잖아. 그러면?'
생각과 함께 입가에 미소 지으며 시선이 태블릿으로 향한다.
어차피 지금 공부해도 머리에 안 들어온다는 판단에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이왕 보던 웹툰을 계속 보고, 딱 오늘 퇴실 시간 전까지 놀다가 내일부터 열심히 공부하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