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_시간이 원래 이렇게 빠른가?
부아아아앙!!
학생들을 태운 고속버스는 길이 막히지 않아 신이 난 것처럼 고속도로를 달린다.
귀에 착용된 무선 이어폰에선 신나는 최신 노래가 들리지만, 우울하게 가라앉은 기분은 들뜨지 않는다.
아니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신이 나지 않을 것이다.
'진짜 미치도록 가기 싫다!! 그냥 차가 고장 나서 멈췄으면.'
마음 같아서는 학원으로 향하는 이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부모님은 기숙학원이 아니면 재수를 시킬 생각이 없었으니까.
더불어 빠르게 지나가는 차 밖 풍경을 보니 짜증이 났다.
내게 주어진 3박 4일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지만, 마치 군대에 복귀하는 느낌으로 정기외출 기간인 3박 4일은 눈 깜 박할 새 지나갔다.
잠깐 눈을 감으며 3박 4일간의 정기 외출을 떠올렸다.
"다녀왔습니다."
"어머! 우리 아들 왔구나?!"
"고생했다."
대전에 학원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내버스를 타고 부모님의 국밥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나를 보자 꽉 껴안아주고, 아빠는 무뚝뚝하지만 고생했다고 한다.
"학원에서 제대로 못 먹었니?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아니에요. 잘 먹으면서 지냈어요."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엄마, 아빠가 만들어 주는 국밥이요!"
간단히 안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먹고 싶었던 집밥을 말했다.
개인 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나는 학원 밥이 맛없는 건 아니다.
학원에서 배탈과 식중독을 유발할 수 있는 회와 익히지 않은 음식들은 나오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대량 조리의 특성상 음식을 만들고 온장고나 냉장고에 보관 후 먹기 때문에 밖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사 먹는 김치가 아닌 집에서 엄마가 만든 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다.
"금방 가져올 테니 잠깐 앉아 있어라."
말과 함께 아빠가 주방으로 들어가 국밥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가게에서 내놓는 반찬을 비롯하여 따로 만들어놓은 반찬을 꺼내놓았다.
"잘 먹겠습니다."
이렇게 금방 한 상이 차려지고, 엄마 아빠와 기숙학원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즐거운 식사를 했다.
그날 저녁에는 통학재수학원을 다니고 있는 종현이를 만나 술 한잔 하며 학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PC방에 가서 게임을 시작했다.
"야, 졸지 마!! 이러다 다 죽어!!"
"어? 어?!"
"왜 이렇게 정신 못 차려?!"
그런데 문제는 매일 0시 30분이 되면 잠을 자던 패턴이 몸에 남아 있어, 자정이 되자 슬슬 졸음이 쏟아졌다.
같이 게임하는 종현이는 내 졸음으로 자꾸 게임에서 위기에 빠지자 다급히 소리치며 게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 씨. 미치겠다.'
마음은 놀고 싶은데, 몸은 기숙학원 생활의 패턴에 익숙해져 있다.
게다가 오랜만에 술도 마신 터라 술기운에 졸음이 빨리 쏟아지는 것이었다.
빨리 정신 차리기 위해 에너지 부스터 음료와 커피를 사서 마시자, 술기운이 좀 더 올라오지만 잠이 달아남을 느꼈다.
"좋아. 가즈아!!"
이렇게 미친 듯이 키보드 자판과 마우스 클릭 버튼을 마구 누르며 게임을 즐긴다.
더불어 성인이 돼서 좋은 점이 자정이 넘은 시간에 PC방에 있어도 상관없으니 너무도 즐거워 이렇게 자유를 만끽한다.
다음 날, 내가 일어난 건 점심 식사 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술기운으로 몽롱한 채 밤새 게임을 하고 집에 들어오니 해가 떠오르는 새벽이었고, 씻지도 않고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거실로 나가니 엄마아빠는 가게 일로 내가 먹을 밥을 차려놓고 나간 뒤였다.
"빨리 정신 차리고 놀자!!"
조금이라도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단 생각에 간단히 씻고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나는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가 아침 해가 떠오를 때쯤 집에 들어왔다.
"여보. 정말, 진수가 기숙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맞을까? 저렇게 노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요?"
".... 정말 외출 때만 저러는 거면 상관없지만 학원에서도 저러면 재수를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휴가 마지막 날, 내가 늦은 아침까지 자는 모습을 본 부모님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아빠의 말에 긴가민가한 기색이지만, 정말 이런 모습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단 오늘이 학원 가는 날이니까 보내고, 나중에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 한 번 해 볼게요."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고, 엄마는 내 방으로 들어와 나를 깨운다.
"진수야. 일어나렴. 밥 먹고 학원 가는 버스 타야지."
"으음. 네. 알았어요."
더 잠을 자고 싶지만, 다시 기숙학원에 돌아가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리고 대충 씻고 나와 엄마의 손에 이끌려 국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학원 버스 탑승장소에서 버스에 탔다.
이렇게 내 첫 정기외출은 끝이 났다.
"결국 돌아왔네."
간절한 마음과 달리 학원 버스는 안전하게 도착했다.
버스에서 학원 건물을 보자 발걸음이 무거워지며, 암담한 기분만이 든다.
"학생들은 식당에서 짐 검사를 받습니다."
"미리 핸드폰 전원은 끕니다."
입소식 날과 동시에 정기 외출 복귀 날에도 학원에서는 식당에서 짐 검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더불어 학생들이 몰래 기숙사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외부에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모두 잠금 처리 해 두고 오직 식당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게 해 두었다.
"담배는 폐기처분합니다."
"라면도 동일합니다."
그리고 학원 선생님들이 캐리어를 확인하는데 곳곳에서 몰래 가지고 들어가려고 했던 담배, 라면, 핸드폰 등이 적발되었다.
옷가지 사이에 숨기기도 하고, 텀블러 안에 넣어두기도 하고, 필통 안에 숨기기도 했지만 다 소용없었다.
학생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학원 선생님들은 귀신 같이 숨겨놓은 금지 물품들을 다 찾아냈다.
나는 금지물품 가지고 온 것이 없기에 마음 편하게 짐 검사를 받은 뒤, 핸드폰을 제출하고 기숙사로 향했다.
"어? 누가 들어왔다."
초창기 룸메이트였던 민진이가 다른 방으로 옮겨간 뒤, 이 방은 나와 진성이만 쓰고 있어 침대와 옷장 하나를 비워두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침대에서 낯선 이불이 올려져 있고 짐도 올려져 있어 새 룸메이트가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 일과 끝나면 누군지 볼 수 있을 테니 우선 내 짐을 풀어놓고 다시 식당으로 갔다.
"잘 먹겠습니다."
짐 검사는 식당 한쪽에서 진행하고 있어, 학원에 들어온 학생들은 식사할 수 있었다.
자차로 오는 학생들은 밖에서 먹고 올 수 있지만, 학원 버스로 오는 학생은 식사를 할 수 없으니 학원 식당에서는 일정 시간까지 식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밥까지 먹자 바로 강의실로 간다.
"휴가 때 뭐 했냐?"
"맨날 게임하며 살았지. 넌?"
"학원에서 못 먹었던 회, 마라탕, 삼겹살 먹고 왔지."
"그건 나도 배탈 나기 직전까지 먹었음."
강의실에는 학생들이 한 두 명씩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원에서 정한 복귀 시간은 저녁 7시 50분으로, 이 시간에 맞춰 담임 선생님이 강의실로 와서 인원 체크와 공지사항을 이야기하기로 되어 있다.
'오늘은 진짜 공부하기 싫다.'
학원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피곤이 쌓인 것도 있고, 이상하게 학원에 도착하자 괜히 졸음이 쏟아졌다.
그리고 휴가 복귀 날에는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공부하는 학생들은 없고 대화하느라고 바빠 보였고,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한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잠깐 잠을 청했다.
"엎드려 있는 학생들은 일어나고, 떠드는 학생들은 조용히 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어느 새 강의실에 들어온 담임 선생님의 말에 주변이 조용해지며 잠을 자고 있던 나도 천천히 정신 차리기 시작했다.
"이제 3박 4일의 정기 외출이 끝났습니다. 저도 3일간 휴무여서 쉬고 왔지만, 늘 정기 외출 복귀날은 일하기 싫은 만큼 적응되지 않네요."
"맞아요."
"오늘은 공부 안 하고 노나요?"
"축구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학원에선 여러분들이 각성할 수 있도록 정기 외출 복귀 날에 국어, 수학, 영어 미니 모의고사를 봅니다."
"어어어~!!!"
"지금부터 배부할 테니 준비합니다."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지만, 담임 선생님은 시험지와 OMR 카드를 배부했다.
"바깥 생활은 잊고, 재수생으로 돌아옵니다.
여러분들이 기숙학원에 온 이유를 떠올립니다. 계속 밖의 생활을 그리워했다간 마음이 들떠 학원 생활이 엉망이 되니 다시 빡 집중해서 모의고사를 보고 정신 차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징징거릴 시간이 있으면 한 문제라도 더 봅니다."
단호한 담임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모의고사 문제지를 펼쳤다.
'그래. 문제라도 풀어보자.'
나도 졸린 눈을 비비며 모의고사를 살피는데, 글자가 머릿속에 잘 박히지 않는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의 말대로 공부를 해야 하는 재수생이니 공부를 안 할 수 없으니 정신 차리고 문제를 뚫어져라 보며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