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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궐 Nov 23. 2023

아, 몰라!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

20_본인이 깨닫지 못하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담임실에 오는 건 적응되지 않는다.


담임 선생님은 저녁 식사 시간에 복도에서 정숙 지도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가는 나를 붙잡고는 저녁 자습이 시작하면 담임실에서 상담할테니 오라고 한다.


그런데 부르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니 괜히 불안해서 1시간 동안 학원 생활하면서 무언가 잘못한 게 있는지 생각해보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왔니? 여기 앉아라."


담임 선생님은 지난 번에 다르게 바쁘지 않은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학생들의 첫 모의고사 상담도 끝이 나 살짝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기인 것 같다.


"진수야, 요즘 학원 생활은 어떠냐?"

"그냥 나쁘지 않아요."

"그래? 내가 볼 땐 아닌데?"

"네?"

"너 학원 생활이 개판이라 부른거라고."


갑자기 듣게 된 말에 어이 없어 넋이 나갔다.

나름 학원 생활을 잘 하고 있는데 왜 개판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돌리지 않고 솔직히 말할게. 내가 너희들에게 강조했던 게 무리 짓지 말라는 거였다. 근데 문과에서 우리 반 애들이 가장 큰 무리를 만들었네?

대부분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에 5, 6명의 남학생들이 떠들면서 돌아다니는데 안 보이는 게 이상한 거 아냐? 그리고 그 무리에는 항상 네가 껴 있고."

"...그치만 애들하고 다닐 수 있잖아요."

"이해하지. 근데 소수로 다니라고 했고, 복도에서 떠들면서 다니라고 한 적은 없어. "

"작게 이야기 하는 게 안 되는 건가요? 어떻게 이야기를 밖에서만 해요?"

"내가 보거나 다른 선생님들이 볼 때 너희들이 곳곳에서 많이 떠든다는 내용이 들리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실제로 담임 선생님은 진수와 함께 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왔다.

당연히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가장 좋은 것은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유명한지 주변 선생님들도 너희들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알고 있더라.

기본적으로 다른 반 선생님들이 우리 반 애들 얼굴을 모르는 게 정상이야. 만약 얼굴을 안다면 강의실이나 자습실에서 공부하지 않고 자주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니까."

"......"

"당연히 학원 적응이 끝났기 때문에 애들과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너희들은 선을 많이 넘고 있어."

"......"


담임 선생님의 말에 혼란스럽다.

아니 왜 열심히 하는데 이런 말을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세세하게 따져서 꼬투리를 잡으면 어떻게 학원 생활을 하는 건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짜증이 많이 날 거다. 내가 이런 말을 듣는 것부터 시작해서 무슨 잘못을 한 건 지 이해가 안 될 수 있어."

"......"


갑자기 자신의 속 마음을 꿰뚫어보는 말에 놀랬지만 내색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거 재밌지. 근데 여긴 단체 생활을 하는 곳으로 반드시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근데 이걸 좋게 보는 애들이 몇이나 될까? 

내가 말하지 않아도 반드시 주변 애들이 너희들에게 뭐라 할 거고, 나중엔 이걸 가지고 너희들끼리 무조건 싸운다. 그리고 이미 몇몇 애들로부터 너희들이 무리지어 다니면서 떠든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네..."

"사람이기 때문에 기숙학원에 들어올 때의 각오나 초심이 달라질 수 있다. 근데 이렇게 공부보다 주변과 어울리는 것에 재미들리면 답이 없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기에 혼자 다니면서 그 시간을 공부에 쏟아라."

"알겠습니다."


여기서 반박해봤자 싸우자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기에 나는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에 조용히 수긍했다.

그리고 알아서 잘 할 거니까 앞으로 이렇게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하며 일어나려는데 담임 선생님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태블릿 적당히 해라. 건우 일 알고 있지?"


그 말에 등골이 오싹하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치 말투가 나는 다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


건우 일은 바로 어제 저녁 자습 시간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불규칙적으로 우리 반 학생들이 자습실을 순찰하거나 자습실의 감독 책상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자습 시간에 건우가 태블릿으로 축구 영상을 보다가 그 모습을 담임 선생님에게 걸렸다. 덕분에 실랑이를 벌이느라 자습실이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태블릿은 담임 선생님의 손에 쥐어졌고, 건우는 바로 담임실에 가서 경위서를 작성했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경위서를 살핀 담임 선생님은 학원 규칙대로 봐주는 것 없이 태블릿을 2주간 압수하고, 5일 동안 근신 서는 것으로 확정했다.


근신을 서게 되면 수업은 강의실에서 참여할 수 있지만, 그 외 시간에는 교무실 앞 복도에서 서서 자습을 해야 했다. 건우는 몇몇 다른 반 담임 선생님들은 애들이 딴 짓해도 봐준다고 선처를 바랬지만,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얄짤 없었다. 


-성인이면 징징거리지 말고 네 행동에 책임을 져. 싫다면 집에 가!


그 말에 건우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여기서 화를 내면 자신이 아직도 애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여긴 학교가 아닌 학원이다. 내가 고른 학원이기에 내가 싫다면 나가면 되는 것이지만, 문제는 부모님이다. 부모님이 학원비를 지원하고 있기에 학원 잘못이 아니라 자신이 잘못해서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게 굉장히 난감하다는 것이다.


결국 건우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근신 서기로 결정했다.


"명심해라.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고 있다."


담임 선생님의 말이 귀가 아닌 가슴에 박혔다.


메이저 급 기숙학원에 있는 학생들의 수는 기본 800명이 넘는 만큼 마당발처럼 돌아다니는 학생, 아무도 모를 정도로 자습실에서 나오지 않는 학생, 공부하기 싫어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하려는 학생 등 다양한 성향들을 가지고 있다.


기숙학원은 소문이 빠른 만큼 학생들의 이야기가 담임 선생님들에게도 빨리 들어오고, 담임 선생님들끼리는 정보가 빨리 돌기도 한다.


"정말 문제인데? 저렇게 하다간 나중에 무조건 후회할 게 보인단 말야."


담임 선생님은 내가 사라지자 한숨 쉬며 안타까운 기색이 가득했다.

매년 반 학생들을 포함해서 약 100명의 학생을 보는데, 첫 정기 외출 전에는 주변 애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학원 분위기를 파악하느라고 본인을 감춘다.

그리고 정기 외출을 갔다오면 학생의 원래 성격과 생활을 드러낸다.


"제발 터지지 않고 본인이 잘 정리하면 좋겠는데.... 쉽지 않겠네."


기숙학원에 공부하러 왔으면 조용히 혼자 공부하면 담임 선생님 입장에선 바랄 것이 없지만, 학생들이 그러지 못하니 가끔 애들이 한심해보이기도 한다.


부모님이 직접 연락해서 걱정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직접 바뀌어야 하는 건 본인이 마음 먹고 해야 하는 만큼, 수능 끝나고 후회하지 않고 빨리 정신 차렸으면 마음이다.




"휴우"


저녁 자습 시간에 공부가 잡히지 않는다.

분명 오늘 오후까지 열심히 공부했는데, 담임 선생님에게 이상한 말을 들으니 한숨만 나온다.


'내가 큰 잘못을 하고 있나? 어떻게 친해진 애들하고 어떻게 헤어져?'


머릿속이 복잡하다.

학원 입장에선 강의실이나 복도에서 조용히 다니고 공부를 권유하는 게 맞다. 그런데 사람이 지내다보면 말을 할 수 있는데, 이를 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당연히 공부 하러 기숙학원에 온 건 맞는데, 최소한 사람이 말을 하고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지 당연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어울리는 애들에게 담임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같이 다니지 말라는 것도 웃기다.


'아, 몰라!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내린 나는 태블릿으로 인강을 시청하며 공부하기 위해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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