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_기숙학원만큼 소문이 빠른 동네는 없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한 이후 내 생활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수업은 빠지지 않고 잘 참여하고, 자습 시간에는 태블릿 위주의 인강으로 공부하고, 식사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다.
쉬는 시간에는 혼자 다니려고 생각하지만, 이동 수업이 있다 보니 같이 다니는 편이다.
"야, 그 소식 들었어?"
"뭔데?"
"지금 공고장 떴대!"
"이번엔 또 누구냐??"
"진짜 미쳤다. 요즘 계속 올라오잖아!"
여기선 재미있는 게 없지만, 그래도 찾는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와 주변 소식을 듣는 것이다.
그중 가장 핫한 소식은 근신 공고다.
지금 4월 모의고사를 보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남녀 대화, 태블릿으로 딴짓, 무단이탈, 금지물품 반입 등 일어나고 있다.
학원에서는 제보를 받거나 선생님들이 적발해서 처벌을 하는데, 근신을 서게 되면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 근신을 하게 되는 사유와 기간이 공고되어 다른 학생들도 볼 수 있다.
-기숙학원은 굉장히 폐쇄적인 공간이라 어떤 이야기가 있으면 쉽게 말이 퍼진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면 보지 말고, 무슨 말을 듣더라도 한쪽 귀로 흘리고, 말을 하지 마라.
나중에 이야기가 돌면 너희들이 한 마디의 말과 행동이 예상치 못할 정도로 커져서 돌아온다.
담임 선생님은 꾸준히 우리들에게 이야기하지만, 이 유일한 재미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단체 생활을 하는 기숙학원에서 혼자 다니라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2, 3월에 혼자 다녀보다가 이렇게 함께 다니면 좋은 것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공고문은 식당 앞 게시판에 붙어 있어 관심만 있으면 식사 시간에 볼 수 있었다.
우리들은 식당으로 가면서 근신 공고문을 확인했다.
"GO반 남학생 3명이 강제 퇴소야?"
"이야. 사유도 안 적혀 있으면 얼마나 큰 일을 저지른 거야?"
"아는 사람 없냐?"
그런데 공고장에 강제 퇴소라는 사유와 반과 이름이 적혀 있어, 디테일하게 어떤 일로 퇴소를 하게 된 건지 알 수 없어 더욱 궁금증이 깊어져 갔다.
"후후후후. 내가 알고 있지."
"정말?"
"어. 내 룸메가 GO반이라서 들은 게 있어. 밥 먹으면서 이야기해 줄게."
그때, 조용히 있던 윤성이가 말하자 우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우리는 얼른 접시에 밥과 반찬을 담아 식당의 자리에 앉았다.
"자, 얼른 말해봐."
"무슨 일인데 3명이 동시에 나간 거야?"
"싸웠냐?"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윤성이가 말을 시작하자 우리들은 귀를 기울였다.
3명의 남학생이 부모님에게 연락해서 몸이 아파서 집에서 쉴 겸 집 근처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학원에서 외진이 있으니 그곳을 가라고 했지만, 너무 엉터리라고 집에 가고 싶다고 징징거리자 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해서 외출을 했다.
그리고 복귀 일과 시간을 사전에 3명이 입을 맞춰서 비슷한 시간에 오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학원 근처 편의점에 들러서 학원에 갈 때 먹고 싶은 게 있다고 사가지고 싶다고 해서 각자 편의점에서 내렸고, 학원이 코 앞이니 걸어가겠다고 부모님에게 말해서 부모님을 집에 가게 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3명의 남학생은 학원 주변에서 떨어진 식당에서 술을 마신 뒤 학원에 들어왔는데, 부모님들이 GO반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한 복귀 시간과 실질 시간이 많이 차이 나서 확인해 보는데 술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GO반 담임 선생님이 확인하니 3명의 남학생이 자신들이 술 마시고 왔다고 주변 애들에게 자랑한 데다가,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몰래 사물함에 숨겨놓고 나중에 기숙사에 가져가려고 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어이없는 학생들의 행동에 화가 난 GO반 담임 선생님은 학원과 이야기해서 상벌위원회 없이 바로 강제 퇴소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학생들의 부모님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다음 날까지 짐 싸서 갈 것을 이야기했다.
당연히 남학생들의 부모님들은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아프다고 해서 집에 데리고 갔다 왔는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고, 학원 규칙을 어겨 퇴소한다는 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현실을 자각하며 서둘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GO반 담임 선생님에게 선처를 부탁했지만 소용없었고, 결국 다른 기숙학원이나 통학학원에 전화를 돌려 바로 옮길 수 있는 확인한 후 바로 다음 날 이동했다고 한다.
"와, 진짜 미친놈들이네."
"남자 중의 상남자다. 배짱 두둑하네."
윤성의 이야기가 끝나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들의 이야기에 몇몇 학생들이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하긴 다른 반 쌤에게 들은 게 있는데.... 몇 년 전에 어떤 여학생이 택배로 술을 받은 적이 있었대. 그 술은 쌤들이 택배 검사할 때 발견했는데, 친구가 장난 삼아서 보낸 거라는 거 알자 경위서 쓰고 끝나기도 했대."
"와. 그 여학생은 진짜 억울했겠다."
"맞아. 친구가 아니라 원수가 될 뻔."
이렇게 이야기하며 밥을 먹으니 거의 20분 이상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재미있어서 도저히 이 대화를 끊을 수가 없다.
"맞다. 너희들 걔 봤냐?"
"뭘 봐요?"
"이번 정기 외출 끝나고 GH반에 여학생이 한 명 왔는데 진짜 예쁘다."
"진짜요?"
"거의 여신이라는데?"
"한 번 봤으면 좋겠다."
갑자기 태영이 형이 꺼낸 말에 갑자기 마음이 들떴다.
기숙학원에 있다 보니 바깥 구경은 쉽지 않고, 마음껏 핸드폰을 하지 못하니 힐링이 될 포인트가 없었다.
밖에 있을 땐 여자 아이돌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는데, 할 수 없으니 답답한데 가끔씩 예쁜 여자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어? 얘들아. 쟤야. 쟤"
그때, 갑자기 윤성이가 목소리가 낮추고 식당에 여학생들이 있는 자리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을 슬그머니 보니 정말 여자 아이돌을 해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예쁜 여학생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남학생들도 그 여학생이 너무 예쁜 탓인지 힐끔힐끔 보는 기색이 느껴졌다.
"저런 애랑 사귀고 싶다."
"니가 말이 되냐?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해."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이성을 좋아하는 성향이 강한 윤성이의 말에 나는 어이없어 대답했다.
우리들은 이렇게 투닥거리며 식당에서 나왔고, 운동장 산책을 한 뒤 오후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갔다.
"얘들아. 잠깐 이야기 좀 하자."
그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우리들은 밥을 먹기 위해 식당에 함께 가려는데, 담임 선생님이 우리를 불렀다.
"너희들 미쳤냐?"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왜 애들 사이에서 너희가 유언비어를 퍼트린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괜히 나오겠냐?"
담임 선생님은 바로 직설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우리들은 당황하며 대답이 멈칫거리는 사이 담임 선생님이 말을 이어갔다.
"오늘 점심시간에 남학생들 강제 퇴소 건하고 다른 반 여학생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 있어?"
"네?"
"네. 그런데요."
"하아. 돌아버리겠네. 지금 너희들이 강제 퇴소한 남학생들 험담하고, 여학생에게는 좋아한다고 곧 고백할 거라는 말이 돌고 돌아서 그 여학생에게 들어갔다."
"말도 안 됩니다!"
"그런 말은 한 적 없어요!"
"시끄러!! 아 자식들아. 너희가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잖아? 분명히 개개인별로 불러서 경고 했음에도 이렇게 결과가 나왔으면 너희가 말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라!"
그 말에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말 한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학원에 소문이 돌고 그게 담임 선생님의 귀에까지 들어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오늘 퇴실 하기 전까지 경위서 써서 담임실로 가지고 와라. 안 가져오는 놈은 인정한 것으로 알고 부모님에게 연락 및 상벌위원회 연다. 알았냐?"
"네..."
"모든 결정은 경위서 쓴 거 보고, 개인적으로 더 알아본 다음에 할테니 가라."
담임 선생님은 머리가 아픈 듯 손을 이마에 대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우리들은 썩은 표정으로 이동하며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