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_무식하게 먹으면 답이 없다.
노트에 수학 문제를 풀며 집중해서 공부한다.
태블릿으로 인강을 보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지만,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 된다.
수능에서 한 문제에 끙끙거리며 시간 투자를 할 수 없으니, 정해진 시간 안에 스스로 풀지 못하면 해설지를 보고 풀이를 이해하고 다음에 문제를 다시 보기로 한다.
'아, 젠장.'
이렇게 집중하다 보면 머리가 아파서 흐름이 끊겼다.
요즘 밤에 잠도 잘 못 자서, 낮에 꾸벅꾸벅 조는 게 있다 보니 잠도 깰 겸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어차피 밤에 잠을 못 자니 커피를 마셔도 상관없을 것 같다.
'그래도 좋게 잘 풀려서 다행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유언비어(?) 사건은 부모님에게 연락은 하지 않고 벌점 부여와 일요일 자유 시간에 자습 그리고 몰려다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각 반의 담임 선생님이 중재해서 마무리됐다.
부모님에게 연락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평소에 벌점을 잘 받지 않으니 상관없었고, 자유 시간에 자습하는 건 1회였다.
'모의고사가 10일 남았다.'
지금 중요한 건 4월 모의고사였다. 친구들도 이 사건으로 눈치 보여 이번 모의고사를 보기 전까진 혼자 다니다가 식사 시간에만 식당에서 만나 같이 밥만 먹기로 결정했다.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에 혼자 다닐 수 있지만, 혼밥은 눈치가 보여 무리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이 아프냐?!'
하루하루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 공부를 해야 하기에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자꾸 소화가 안 되고 두통이 심하다.
최근 무언가를 잘못 먹었나 싶었지만,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식사 양은 줄이고 간식으로 부모님이 택배로 보내준 과일을 먹었다.
하루이틀이면 복통과 두통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계속 아프니까 짜증도 났다.
게다가 잠도 못 자는 탓인지 더 예민해진 것 같아, 빨리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소화제와 타이레놀을 물과 함께 먹고 다시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진수야, 괜찮아?"
"응. 왜?"
"너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 같아. 오늘은 그냥 회복실 가서 쉬는 게 어때?"
다음 날, 기숙사에서 일어나자 내 얼굴을 본 진성이가 말했다.
"시험이 얼마나 남았다고 쉬어. 약 먹으면서 하면 되겠지."
"점심때 상태 안 좋으면 외진이라도 가."
솔직히 3월 모의고사 때 성적이 안 좋게 나와서 이번 모의고사에서 만회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공부에 더욱 집착했다.
그래서 머리가 어질 거리고 몸에 힘이 빠지지만, 식당으로 가서 가볍게 빵을 먹을 먹은 뒤 타이레놀을 먹었다.
"이젠 못 버티겠다."
비몽사몽 상태로 1교시부터 3교시까지 수업은 들었지만, 4교시에는 수업이 없다.
원래대로라면 자습을 하는 게 맞지만, 몸이 너무 힘들어 행정실에 가서 허락을 받고 회복실로 향했다.
회복실은 아픈 학생들이 쉴 수 있도록 침대를 배치해 놓았는데, 허락을 받으면 이용 가능했다.
그리고 행정실에서 타이레놀을 하나 받아서 먹은 뒤 잠을 청했다.
'잠이 안 와. 오히려 정신만 말짱한데?!'
보통 해열제의 특성을 가진 타이레놀을 먹으면 잠이 오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회복실은 불을 켜지 않아 굉장히 깜깜한데, 그곳의 침대에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 않으니 차라리 이 시간에 공부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움직였다.
"선생님, 외진 가려면 어떻게 하나요?"
그리고 행정실에 들려 외진 가는 방법을 물었다.
약국 약으로는 소용이 없으니 병원에서 주사라도 맞으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라는 판단이었다.
"두통과 복통이라고? 그럼 근처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오는 걸로 하자."
"네. 알겠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각 강의실에서 인원 체크를 마치면, 담임실에는 학생들이 줄을 선다.
바로 외진을 신청하는 줄이다.
학생들이 외진증에 병원에 가는 사유를 적으면, 병원으로 인솔하는 선생님들이 체크하고 각 병원을 배정한다.
인솔 선생님은 내 증상을 물어보고는 학원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병원으로 가기로 결정되었다.
"진짜 병원을 많이 가는구나."
병원으로 가는 학원 차량은 스타렉스로 총 4대가 동원되었는데, 2대는 학원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가고 2대는 근처로 운행한다고 한다.
학원 주변에는 병원이 많지 않아 전문적인 진료를 원하는 학생은 멀리 있는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와, 신기하다."
"바깥공기를 이렇게 맡는구나."
차를 타고 가는 길은 논밭이나, 학원을 벗어났다는 것에 그냥 기분전환이 된다.
학생들은 차 밖 풍경을 보며 신나게 떠드는데 나는 계속 복통과 두통이 계속되자 그냥 인상이 찌푸려진다.
"병원에서 진료 마치면, 약국으로 약 탄 후 차로 이동합니다."
차는 병원 주차장에 도착하자 나와 학생들은 병원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막 끝난 터라 병원은 한산했다. 그다음은 접수한 순서대로 진료를 받기 시작했고 곧 내 차례가 되었다.
"단단히 체했는데? 이 정도면 최소 일주일은 넘었겠어."
"네?"
"당분간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배에서 꼬르르륵 소리가 날 때까지 먹지 마라."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들은 뒤 청진기로 배와 등을 체크하고, 침대에 누워 배를 몇 번 눌러보더니 바로 진단을 내렸다.
"지금까지 몇 번 체했는데, 그때는 막 설사하고 바로 끝났는데요."
"체기가 낳으려면 배가 완전히 비우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제일 좋은데, 학원에서는 그게 어렵지 않을까?"
"아...!!"
그 말을 듣고 곰곰이 기억을 떠올려보니 하루도 안 먹었던 날이 없었다.
특히 학원에서 맛있는 식사가 나오는 날이면 과식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기도 했다.
당연히 체기가 떨어질 수 없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자, 주사 한 대 맞고 가는데 약은 5일 치 지어줄게."
"네. 알겠습니다."
몸이 아픈 이유를 알았으니 곧 낫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렇게 진료를 마치고 약국에서 약을 탈 때, 액체형 소화제가 효과가 좋아 집에서도 종종 부모님이 사놓았던 기억을 떠올려서 함께 구입했다.
이렇게 약 1시간 30여분 정도 걸린 병원 외진을 마치고 돌아와서 바로 자습실로 향했다.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날린 시간을 빨리 채워야 했다.
"자, 그럼 달려볼까?"
자습실에 들어오기 전에 병원 약을 먹었다. 그리고 두통이 좀 가시지 않는 것 같아 타이레놀을 한 알 더 먹었다.
그리고 평소대로 텀블러에 아메리카노를 세팅하고 공부할 준비를 마쳤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3시간이 있어 정말 빡세게 공부하면 오늘 외진 나갔다 온 시간을 채울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정말 병원 약을 먹은 지 1시간 정도 지났는데, 그동안 짜증 나게 괴롭히던 복통과 두통이 가시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지만 효과를 보니 더욱 공부할 맛이 났다.
덕분에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지만 자습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었다.
이런 집중은 정말 1년에 2, 3번 경험할까 말까 한 일이기에 나는 저녁 식사를 건너뛰고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병원에서도 속을 완전히 비우라고 했으니 괜찮을 거고, 약을 빈 속에 먹어도 된다고 해서 다시 병원 약을 물과 함께 한 봉 털어 넣었다.
"어?"
20분 후, 머리가 이상하게 핑핑 돌며 눈앞의 사물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식은땀이 흘러 어느새 등이 축축하게 젖었고, 복통이 심해 죽을 것 같았다.
'뭐, 뭐야? 이렇게 공부하다가 죽은 거야?'
당장이라도 의식이 멀어질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몸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야, 괜찮아?"
다행히도 이 모습을 본 같은 반 학생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 살려....."
쿵!!
도움을 청하기 위해 말을 하던 중 의식이 끊기며, 그대로 몸이 바닥에 꼬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