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학교에서 뭐 했을까?
"후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나는 손에 든 종이를 보자 한숨부터 나왔다.
오늘 학교에 가서 중학교부터 6년간 공부한 결과물, 수능 성적표를 받아 본 순간부터 넋이 나갔다.
"이 성적이면 W대 정도?"
정시 지원을 생각하고 학교 선생님과 얘기해보니 W대의 과를 골라서 가는 것이 아니라 인기 없는 과의 문을 닫고 들어갈 성적이었다.
더불어 지방 거점의 국립대를 지원해도 정말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교에 가야 했다.
"게다가 가채점 보다 더 떨어졌네."
당연히 수능을 보고 나서 가채점을 했지만, 생각보다 낮은 점수에 믿지 못하고 성적표가 발표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가채점 보다 더 낮은 점수가 나오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했다.
"바로 군대나 갈까?"
그동안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지 기억을 회상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전교에서 3등 안에 들 정도로 손꼽히는 수재여서 늘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굉장히 많은 기대를 받아 고등학교는 집과 떨어진 외고에 진학했다.
외고로 간 이유는 수능이 아닌 교과와 학생부 종합으로 대학교에 진학하는데 유리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집 근처 고등학교에서 좋은 대학교에 가려면 수능 만이 답이었고, 수능 공부를 하기에는 너무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냉혹했다. 외고에는 자신보다 더 잘하면 잘했지, 못하는 학생들이 없어 내신 점수를 받기 어려웠다.
외고에는 각 지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 모여 경쟁해야 했고, 방심하거나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성적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1학년 1학기의 반 등수가 25등이라는 것에 크게 놀라서 2학기에는 멘탈이 나가 있었고, 2학년부터 정신 차리고 해 보려고 했지만 상위권 내신 성적을 쫓아가기에는 역부족이라 여겼다.
'교과는 무리다. 수능 최저 점수가 있는 종합 전형을 노리자!'
내신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 동안을 노려서 최대한 노력하고, 학교생활기록부를 영어영문 쪽으로 채우기 위해 준비했다.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영어였고, 고등학교 1학년 4번의 시험에서도 가장 낮은 영어 성적은 95점이었다. 그리고 영어영문은 웬만한 대학교에 학과가 있기에 진학하기에 유리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각종 대회와 교내 수상 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참여했고 다른 과목들도 영어와 연관시켜 생기부도 만들었다.
"이야. 1학년 때는 엉망이었는데 2학년부터는 열심히 했네. 이 정도 내신과 생기부가 유지되면 학과는 영어영문이나 영어교육으로 잡고 I대를 기준으로 잡자. 그럼 상향으로는 G대와 H대를 쓰고 안정으로 J대, K대, L대를 준비하면 되겠네. 그리고 지원하는 대학교들은 수능 최저와 면접도 있으니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고."
3학년에 올라가자마자 학교에서 주로 입시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내신 점수와 생기부를 살피고 해준 말이다.
게다가 우리 학교에서는 G대와 I대에 종합 전형으로 많이 진학하기 때문에 생기부로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말도 들어 대학교는 무사히 진학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도 선생님과의 상담 결과를 듣고 나서 다행이라며 겸손하게 열심히 해보자고 응원해 줬고, 보답하기 위해 진짜 한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했다.
“이게 내 성적이라고? 와, 미쳤네!!”
성적이 최고점에 도달한 시기는 9월 평가원 모의고사였다.
국어 1등급, 수학 3등급, 영어 1등급, 생활과 윤리 1등급, 사회문화 2등급, 한국사 1등급이 나왔다!
찍은 것도 다 맞추는 미친 기적으로 평소 국어가 3등급에서 1등급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수학과 탐구 과목인 생활과 윤리도 평소보다 1등급이 상승했다.
이 정도 성적이면 지금까지 준비한 종합 전형이 아니라 정시의 표준점수와 백분위 점수로 환산해도 인서울 상위권 대학교들은 진학 가능했다.
부모님은 이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뻐했고, 주말에 소고기 집에서 외식하며 성공적인 대학교 진학을 미리 축하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성적이 잘 나왔다 하더라도 온전히 내 실력이 아닌 찍어서 잘 나온 것을 인지하고 겸손하게 공부했어야 했다.
수능에서도 이 성적이 나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오만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부를 대충대충 하고 말았다. 그리고 주말에 친구들과 놀러 다녔고, 밤새 핸드폰을 붙들고 게임하기 바빴다.
집에서 생활하면 부모님이 바로 눈치채고 잔소리와 케어를 했겠지만,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어 부모님은 전화로 잘하고 있다는 내 말과 9월 평가원 모의고사 성적을 믿고 기다려주었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할 땐 부모님에게 죄송하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지만 , 한순간의 쾌락에 빠져 그 뒤를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수능 보기 한 달 전에 진짜 공부함을 느껴 정신 차리고 펜을 잡았지만,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제야 진짜 망했다는 생각이 들어 멘탈이 나갔지만 어찌 되었든 수능을 봐야했기에 정신줄을 잡고 공부했다.
국어 4등급, 수학 5등급, 영어 3등급, 생활과 윤리 3등급, 사회문화 4등급, 한국사 2등급
수능을 보는 동안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예상대로 결과는 엉망진창이었다.
부모님에겐 수능 볼 때 문제 풀 시간이 부족해 정답을 따로 체크하지 못했다고 거짓말하고, 내 방에서 몰래 가채점한 결과였다.
차마 부끄러워 이 성적을 말할 수 없기에 잘 나왔을 것이라 말하며 학교에서 성적표가 나오면 이야기해 보자고 미뤘다.
오늘 성적표를 받아보니 등급은 가채점과 똑같지만, 점수는 등급의 끝자락이라 표준 점수와 백분위 점수로 환산하니 최악이었다.
"수능 망쳤고, 내 인생도 망했네."
불행 중 다행으로 부모님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어,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시니 그때까지 어떻게 말할지 고민해야 했다.
"응? 종현아. 무슨 일이야?"
갑자기 핸드폰에 전화가 와서 받사오니 중학교 친구인 이종현이다.
서로 부모님도 알 정도로 어릴 때부터 친구였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얼굴 보기가 뜸했지만 종종 연락하면서 만나곤 했다.
"그래. 지금 이터널에서 만나자!"
어차피 시간 남아있으니 뒷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집에 있어봤자 재미도 없으니 종현이 말대로 이터널 PC방에서 가서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하고, 성적표는 거실 식탁에 둔 채 밖으로 나갔다.
"다녀왔습니다."
"왔니?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저녁 10시쯤 집에 들어가자 부모님이 심각한 얼굴로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엄마의 손에 수능 성적표가 들려있다.
나갈 때 내 방에 숨겨두고 갔어야 했는데, PC방 간다는 생각에 그냥 거실에 놓고 간 것이 화근이었다.
"뭐해? 얼른 오지 않고!"
게다가 아빠의 얼굴이 찌부러진 채 목소리 톤도 사나워 진짜 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엉거주춤거리면서 거실 바닥에 앉았다.
"이거 정말 너 성적 맞니?"
"......"
"말 좀 해 봐라."
"네."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 이 성적으로 어디 갈 수 있는 거고?"
"......"
엄마가 말을 하는데 고개 숙인 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 죄송했다.
"진수야. 이럴려고 외고 갔니? 성적 나왔으니 대학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온 게 있을 거 아니냐?!"
아빠가 답답함에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슬쩍 얼굴 표정을 보니 배신감과 분노가 가득했다.
그동안 바라는 것 없이 나를 믿어주었는데, 배신하고 뒤통수를 크게 맞은 느낌일 것이었다.
"W대와 지방의 국립대 정도요."
"에휴."
"하아."
동시에 부모님의 입에서 한숨이 튀어나오며 이 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아빠와 엄마의 눈이 서로 마주쳤고, 결정을 내린 엄마의 입이 열렸다.
"진수야, 재수하는 거 어떠니?"
"......"
그 말에 너무 놀라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