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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궐 Oct 23. 2023

이 따위로 할 거면 다 때려쳐!

4_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한다.


"진짜 꼭 가봐야 해요? 피곤한데."

"지금 아니면 언제 가니? "

"여기가 마지막이니까 빨리 보고 가자."


서울에서 용인으로 내려온 우리 가족은 주변의 독학 재수 학원과 기숙 학원을 돌아다니며 투어를 진행했다.

두 종류의 학원은 학생들이 퇴실하기 전까지 직원들이 있었고, 학원 투어와 상담을 원한다면 저녁 9시까지 오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당연히 모든 독재 학원과 기숙 학원을 시간 상 모두 갈 수 없어, 각각 2곳을 선정하여 돌아다니는데 저녁이 되니 피곤해서 다 때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지금 가는 기숙학원은 진짜 가면 안 된다고 소리치고 싶지만 차마 입이 열리지 않는다.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사전에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여기 기숙학원이 전국에서 가장 규칙이 빡세고 공부 량도 많고 생활이 가장 힘들다는 글들이 많았다.


분명 부모님 마음에 들 것 같아 집에 가자고 징징거렸지만 소용 없었다.


"와아. 학원이 대학교 같네."

"작년에 새로 지은 티가 나는구나. 시설도 좋고."


늦은 저녁에 도착했음에도 학원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밝게 켜져 있었다.

학원 건물 앞에는 넓은 운동장이 있었고, 강의동 건물을 중심으로 양 옆과 뒤쪽에는 학생들의 기숙사가 지어져 있었다.


차를 주차장에 대고 안내데스크에 가서 입학 상담을 하고 싶다고 말하니 금방 상담실 쪽에서 사람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 받았던 상담실 차장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아까 보내주신 성적표는 확인했습니다. 잠깐 상담 부스에 이야기를 할까요?"


단정한 캐쥬얼 정장을 입은 50대 중반의 남성이 나와 우리들을 맞이했다.

안 쪽으로 들어가니 유리로 학생들과 상담할 수 있는 부스들이 10여 개 정도 만들어져 있어 부모님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이미 통학과 독재 그리고 다른 기숙학원을 돌아보셨다고 하니 가장 궁금한 것은 다른 학원들과 차이점 일 겁니다. "


이야기의 속도가 빠르다.

학원에 도착하기 전에 아빠가 사정을 말해 학원의 시스템과 관리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고, 상담실 차장은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다른 기숙학원과 시스템은 비슷했다. 

한 달에 한 번씩 3박 4일로 집에 갈 수 있는 외출 기간이 있고, 학원 주도하에 사설 모의고사를 정기적으로 본다. 핸드폰은 학원에서 정한 단체 통화 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고, 1인 1태블릿이 제공되는데 보안 어플이 깔려 있으며 담임 선생님이 정기적으로 확인한다고 한다.


다른 학원과 차이점은 타 학원과 달리 규칙이 엄격하여 학원에서 정한 중대규칙을 3번 위반하면 바로 퇴원을 시킨다는 것과 반 담임이 생활과 입시를 같이 담당하여 수능 때까지 철저히 관리한다는 것이다.


"우리 애가 잠이 많은데 아침에 어떻게 깨어주나요?"

"기숙사만 담당하여 따로 관리하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기숙사에서의 인원 체크부터 시작해서 아침에 모든 학생들이 강의실에 갔는지 확인하니 못 일어날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2명의 룸메이트가 있어 서로 깨워주기도 하고요."

"아이와 연락하는 건 어떻게 합니까?"

"미리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담임 선생님이 연락을 못 받을 때가 있는데, 정말 급한 일이라면 학원 직통 번호로 전화 주시면 바로 학생이 통화할 수 있게 합니다. "

"한 달에 한 번 있는 외출 말고 사정이 있다면 학원에서 외출을 못 하는 건가요?"

"몸이 아파 길게 병원을 가야 하거나, 경조사 등이 꼭 나가야 하는 일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미리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주시면 조치가 될 겁니다."

"그럼 꼭 3박 4일 외출을 나가야 합니까?"

"학원에서 7월과 8월은 기간을 붙여 일주일을 외출 기간으로 잡습니다. 이 시기엔 학원에 남지 않고 전원 외출을 하고 그 외에는 학원에 잔류해도 됩니다. 혹은 외출 출발일에 나갔다가 하루 일찍 조기 복귀도 가능합니다."


상담실 차장의 설명이 끝나고 부모님은 궁금한 점을 물어본다.

부모님 얼굴을 슬쩍 보니 앞의 학원들과 분위기가 다르다.


불안하다.

왠지 이 학원으로 결정된 것 같은 느낌이다.

한 달에 한 번 외출에 핸드폰은 일주일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면 미칠 것 같다.

학교에서도 핸드폰을 압수하지 않았는데, 기숙학원에서 압수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응? 이제 고등학생이 된 듯 한 애들이 보이는데 고등학생들도 기숙학원에 다닙니까?"

"윈터스쿨 학생들입니다. 지금이 겨울 방학이라 예비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학생들을 받아 5주간 수업 및 자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윈터스쿨이 끝나면 다시 다니던 학교로 가고요."

"그럼 우선반 학생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군요."

"네. 식당이나 매점 등 공용 공간만 같이 쓰고 기숙사는 다른 건물에, 수업은 층을 나누어 따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설명이 어느 정도 끝나자 상담실 차장은 우리를 데리고 학원 투어를 시작했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정말 옛된 얼굴의 아이들이 보이자 궁금증에 아빠가 물어보니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그 뒤로 부모님은 강의실과 휴게실, 식당, 기숙사 등 학원의 시설을 둘러보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 뒤를 쫓아다니며 대충 볼 뿐이다.

걸음을 걷다보니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트레이닝복을 단체복으로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보인다. 목에는 목걸이 형태의 학원 명찰을 걸고 있고, 손에는 기출 문지제를 들고 있었다.


저게 내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최악이었다!

게다가 애들의 얼굴을 보니 피곤과 졸음으로 쩔어 있어, 저렇게까지 공부 해야 하는 재수는 사양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기숙학원으로 결정하자. 그리고 마지막에 갔던 학원이 제일 좋은 것 같구나."

"독학 재수 학원으로 가면 안 되요?"

"안 된다."

"기숙학원은 무조건 수업에 참여해야 해서 자습 시간도 부족해요."


서울과 용인의 학원 투어를 끝나고 다음 날.

부모님은 나를 불러 어디서 공부할 지 정했다.


그리고 기숙학원으로 가라는 말에 나는 반발부터 했다.

이미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기본기는 다 채웠으니 부족한 것은 인강 위주로 공부하고, 자습 시간에 문제 풀이 위주로 공부하면 된다고 여겼다. 게다가 기숙학원은 규칙이 빡빡해서 거기 들어가면 죽을 것 같만 같았고 충분히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다고 어필한다.

특히나 직접 기숙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또래 친구들을 보고 왔기 때문에 더욱 가기 싫었다.


"안 돼! 그렇게해서 현역 때 망했잖니?"

"맞아. 주변에 알아보니 독학 재수는 어느 학원보다도 자율성이 커서 생활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계속 망가진다고 하더라. 그런데 기숙 학원은 인강도 볼 수 있지만, 국수영은 현강으로 무조건 참여할 수 있게 하니 최소한의 공부 시간은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현강 보다 인강이 공부가 잘 된다고요. 그리고 이번에 실패했기에 또 실패 안 하려고 열심히 할 거예요."


계속 이야기를 나눴지만 입장이 서로 평행선을 달렸다.

부모님은 기숙학원의 엄격한 규칙이 있어야 내가 공부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통학이나 독재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를 원하면서 공부한다는 게 어이 없어 했다. 재수를 하기로 했으면 처음부터 확실히 제대로 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각 반의 담임 선생님이 끝까지 생활 및 입시를 관리해 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반면 나는 공부는 공부고, 쉬는 것도 따로 있어야 했다.

기숙학원은 식사와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 오로지 공부 뿐이었다. 그리고 학원이 시골 외진 곳에 있어 아프면 병원도 가기 어려울 뿐더러, 내가 시간표를 세워 정한 시간에 공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부모님이 나를 믿지 못한 것에 배신감이 들어 더욱 반발했다.


"나진수!! 이 따위로 할 거면 다 때려쳐!!"

"알았어요. 내 인생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요!"


끝내 참지 못한 아빠의 호통이 튀어나왔고, 나도 욱해서 소리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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