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나도요.
보통 기숙학원은 시내가 아닌 외곽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시내 한가운데에 짓기에는 학원 부지가 큰 데다가 한 달에 한 번 휴가 때마다 많은 차량이 왔다 갔다 하기에 주변에서 많은 컴플레인이 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의 차를 타고 함께 기숙학원으로 가고 있다.
"이 자식이 뒤통수를 칠 줄이야. 배신자. 나가 죽어라. 젠장! 망할!"
가는 동안 굉장히 작은 목소리로 이종현을 욕한다.
바로 이틀 전이다.
전날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고 갑자기 기숙학원에 같이 못 가겠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대기를 걸어놓은 통학 학원이 있었는데, 오늘 자리가 생겨서 학원 다닐 건 지 연락이 왔고 그 학원에 다니기로 결정했단 것이다.
이 이야기와 함께 나도 기숙학원에 못 가겠다고 했다간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사고 싶은 장난감이 아빠 지갑에서 돈을 훔쳤고, 나중에 새로 생긴 장난감을 본 부모님의 추궁에 돈의 출처가 들통났다.
그날 파리채로 살려달라고 할 정도로 엄청 맞은 뒤, 밤새 가게 보일러실에 갇혀 있었다.
덕분에 평소에도 엄격한 데다가, 그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여 아빠가 아직도 무섭다.
"가기 전에 밖에서 밥이라도 먹고 갈까요?"
"밥 먹고 가면 가게 여는 게 늦어. 진수는 학원에서 먹고, 우린 얼른 돌아가자고."
어제 학원에 연락해서 오전에 들어가도 되는지 문의했고, 점심 식사 시간 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덕분에 학원 버스가 아닌 부모님 차를 타고 학원에 올 수 있는 것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차는 기숙학원을 향해 조용히 달렸다.
"차는 갓길에 대지 말고, 주차장에 주차해 주세요."
"학원에 도착한 학생들은 정문으로 이동합니다."
"계속 차가 들어오니 지정한 장소에 차를 대주세요."
오늘 기숙학원에 처음 오는 차량들이 많다 보니 학원 내부는 분주했다.
학원 관련자들이 모두 나와 차량 통제와 학생 및 부모님들을 인솔하는데 정신없어 보인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캐리어와 함께 짐을 들고 강의동 건물의 로비를 지나 식당으로 들어갔다.
"남학생은 오른쪽 라인에서, 여학생은 왼쪽 라인에서 짐 검사합니다."
"금지물품인 전자기기 및 담배, 음식물 등은 미리 제출 바랍니다."
"기숙사에는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식당에서는 학생들의 짐 검사가 진행하는데, 학생은 핸드폰 및 노트북 사용이 금지된다.
또한 20살이 돼서 자유롭게 살 수 있던 기호식품인 담배를 비롯해서 라면도 금지다.
기숙사에 음식물을 가지고 갈 수 없는 이유는 학원에선 기숙사에서는 잠만 잘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음식물을 보관하면 벌레들이 꼬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고, 일과 시간에는 기숙사 출입이 안 돼서 학생들이 먹기에도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헤어 드라이기는 기숙사에 세팅되어 있어 별도 반입은 안 됩니다. 외출할 때 담임 선생님 통해서 줄게요."
"전자사전은 나중에 담임 선생님에게 확인받으세요."
짐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앞의 사람들을 보니 전자기기도 허용되는 것이 있었는데, 공부할 때 필요한 전자 사전 정도였다. 주로 여학생들은 고데기와 헤어 드라이기를, 남학생들은 담배와 전자담배를 체크 당해 따로 금지물품 보관함에 넣어졌다.
"짐 검사를 마친 학생은 기숙사 복도에 짐을 놓고, 공부할 책 한 권 정도와 필기도구를 가지고 나올게요."
"방에 짐을 놓지 못하나요?"
"방 배정은 오늘 테스트를 보고 저녁에 결정됩니다."
"그럼 방 구경도 못하는 것입니까?"
"아! 부모님들이 보실 수 있는 기본 방은 기숙사 1층에 세팅해 두었습니다. 다른 방들은 우선반부터 다녔던 학생들 물건이 있어 출입 자제 바랍니다."
내 짐 검사는 무사히 통과됐고, 가지고 있던 핸드폰은 학교와 이름을 따로 기입하고 제출했다.
원래 부모님이 기숙사까지 들어가 방을 구경하고 짐 정리를 해 주고 갈 계획이었다.
"그럼 우린 여기서 가는 게 좋겠다. 열심히 잘하고 한 달 뒤에 보자."
"밥은 잘 챙겨 먹어.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하고! 아들, 사랑해. 화이팅!!"
부모님은 지난번 학원 방문 때 기숙사를 본 적이 있어 또 들어가서 보는 건 의미 없다 여겼다.
그리고 시간 상 여기서 헤어지기로 하고 인사하는데,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알았어요. 조심히 가세요."
무덤덤하게 헤어지려고 하는데, 괜히 속에서 무언가 울컥했다.
남자가 쪽팔리게 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최대한 슬픈 감정을 삭였다.
이렇게 부모님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학원 안내에 따라 가져온 짐을 복도에 두고 정해진 강의실로 책과 필기도구로 이동했다.
점심은 아침에 먹은 식사가 든든해서 먹지 않는다.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학원을 둘러볼까 생각했지만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어 괜히 쪽팔리게 길 잃어버릴 것만 같아 포기했다.
강의실로 가니 생각보다 많은 애들이 있다.
학원 단체복을 입고 있는 애들은 우선반 학생으로 보이고, 나처럼 사복을 입고 있는 애들은 정규반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선반 애들은 정말 열심히 책을 쌓아두고 공부하고 있고, 오늘부터 들어온 애들은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모습을 보니 어차피 재수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 일찍 들어와서 공부하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하지만 금방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한다.
공부하는 게 엄청 힘들다는 걸 아는데 일찍부터 하는 건 미친 짓이라 생각하고, 오늘 입학시험을 보기 전에 잠깐 공부하려고 책을 펼쳤다.
근데 보기가 무섭게 마치 약을 먹은 것처럼 자꾸 잠이 쏟아진다.
정신을 붙잡고 책을 보려고 하지만 눈이 감기며 점점 종이와 머리가 가까워졌다.
"자고 있는 학생들은 일어납니다. 5분 후, 종이 치면 시험 시작합니다."
"헉!"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강의실의 모든 자리에 학생들이 앉아있고, 교탁 앞에는 한 선생님이 시험지와 OMR 카드를 들고 서 있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보니 나도 모르게 2시간을 자 버렸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 반의 임시 선생님으로, 반 배정이 되기 전에 기본적인 안내를 합 겁니다.
이 중에는 우선반으로 있던 학생들도 있고, 오늘 처음 온 학생들도 보이네요. 저희 학원은 여러분들이 제출한 6월과 9월 평가원 모의고사와 수능 성적으로 정규반 편성을 하는데, 이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면 기본 배정보다 더 높게 반 편성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 시험 결과는 수업하시는 학과 선생님들에게 공유돼서 수업할 때 참고되며, 혹여 시험을 본 못다 해도 불이익은 없으니 최선을 다해 응시하시길 바랍니다."
말과 함께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국어시험 문제지와 OMR 카드를 배부하고, 시험 시간을 칠판에 기입한다.
시간은 수능과 동일한 국어 80분, 수학 100분이었다.
나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 손에 든 펜을 돌리며 종이 치기를 기다리다가, 방송으로 소리가 들리자 바로 시험지를 펼쳤다.
"하아.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책상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댄 채 한숨을 내쉬었다.
시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난이도는 높지 않았고, 평소에 꾸준히 공부했으면 맞출 수 있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제는 내가 수능 끝나고 공부를 손에서 완전 놓았다는 것이었다.
먼저 국어 선택과목은 어렵지 않아서 그냥저냥 풀었다. 그리고 비문학도 현역 때 공부를 많이 해 놓아서 얼추 풀었는데, 문학은 거의 찍었다시피 했다. 지문을 보니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데 의미나 뜻을 완전히 까먹었다.
수학은 아예 다 찍었다. 어렴풋이 개념과 공식을 알지만 어떻게 푸는지 다 잊어버렸다. 그리고 어찌어찌 푼다 해도 중간부터 풀이가 막혔다.
그나마 정말 쉬운 문제들은 다 풀었고, 기출문제들은 다 틀렸을 거라 짐작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지?"
기숙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나름대로 각오했지만, 막상 여기서 해야 할 공부를 생각하니 그냥 앞날이 막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