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_그냥 도망칠까?
다들 복도에 놓아두었던 짐을 찾느라고 기숙사 내부는 정신이 없다.
몇몇 학생들은 짐을 보관해 둔 층과 배정된 기숙사 층이 달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계단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다행히 나는 짐이 있는 복도와 배정된 기숙사 방의 층이 똑같아 캐리어를 끌고 이동한다.
"방 진짜 깨끗하다."
오늘 모든 학생들이 들어오다 보니 지난번에 구경했던 방과 똑같이 청소되어 있었다.
기숙학원에선 청소와 빨래를 맡아서 해주니 방 관리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아서 좋을 것 같다.
방 안에는 옷장과 침대가 있고, 화장실 & 샤워실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화장실 옆에 세면대가 따로 설치되어 있어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기본적인 세수나 씻는 건 가능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215호 룸메이트인가요?"
"네. 맞아요."
"반가워요."
방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2명의 룸메이트도 들어왔는데, 초면이라 자연스럽게 존댓말이 나왔다.
"침대 배정은 어떻게 하죠?"
"침대 순서하고 사물함 순서는 똑같이 맞추래요."
"괜찮으면 제가 안 쪽 침대를 써도 될까요?"
"전 아무 데나 상관없습니다."
우리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침대 배정으로, 바로 옷장도 배정할 수 있었다.
침대들은 벽 쪽에 붙여져 있는데, 침대 하단에는 수납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사물함이 있어 옷을 보관하기에 넉넉해 가져온 짐들을 보관할 수 있었다.
"늦게 온 학생들 중에서 전자기기와 금지물품 있으면 지금 층 로비로 나와서 제출합니다. 그리고 30분 후 기숙사 선생님들이 각 방을 돌며 인원 점검을 할 예정입니다. 학생들은 짐 정리와 씻은 후 침대에 앉아있습니다."
각 방의 천장에는 스피커가 달려 있어, 공지 사항을 방송으로 한다.
이 이야기를 듣자 우리들은 빠르게 움직임을 공유했다.
"전 정리 끝났으니까 복도 샤워실에서 씻고 올게요."
"저는 가볍게 씻고 싶으니 세면대 쓰겠습니다."
3명의 학생이 동시에 샤워실을 이용하는 것이 어려우니 기본적으로 시간 배분이 필요하나 복도에 공용 샤워실이 크게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땀을 흘리지 않았고, 아침에 샤워하는 편이라 세면대에서 씻기로 하고 룸메이트들은 방 안 샤워실과 복고 샤워실로 이동했다.
인원 점검 시간이 되자 기숙사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며 체크를 하고 바로 방을 끄고 자라고 한다.
침대에는 집에서 가져온 매트와 이불을 까니 익숙한 냄새가 나지만, 침대가 바뀌어서 자꾸 뒤척인다.
"으음..."
그렇지만 잠을 자야 내일 일정을 소화할 수 있으니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본다.
빠라빠라빰!! 빠빠빰!!
"헉!!"
그러다가 갑자기 들린 신나는 클래식에 눈이 떠졌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천장과 내 옆에 낯선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먼저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아, 여기 기숙학원이지."
잠깐 멍을 때리다가 현실을 실감한다.
아직까지 내게 닥친 상황이 믿어지지 않지만 정신 차리고 생활해 보기로 결심한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자 샤워를 하고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먹는 밥이라 익숙하지 않았지만, 먹지 않으면 배고플 것 같다는 생각에 챙겨 먹었다.
7시 50분까지 강의실에 모든 학생들이 모이자 우리 반을 맡은 기숙사 선생님이 와서 인원 점검을 한 뒤, 강의실에 있는 빔 스크린으로 수업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영상은 미리 찍어 놓은 것이 아니라 오늘 빈 강의실에서 촬영하며 학원의 모든 강의실에 영상이 송출됐다.
문제는 너무 졸렸다!!
기숙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아침 내게 잠자는 시간이었다.
기숙사에서 약 6시간 정도 잠을 잤지만 3개월 동안 몸에 박혀 있는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어, 수업 오리엔테이션 영상은 보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오후에는 행정실과 교무실에서 반 학생들을 단체로 호출하여 내 사이즈에 맞는 단체복을 지급받고, 교재들을 수령받았다.
그리고 수업 오리엔테이션 영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관련 프린트물이 있어 그것을 보고 수업들을 확정했다.
국어, 수학, 영어, 탐구 2과목, 한국사는 필수 수업은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
선택 과목으로는 수학 개념 수업과 수1 심화, 수2 심화, 확률과 통계 심화 그리고 영어 독해와 문법 등이 있고, 인문 논술과 수리 논술 그리고 국어 비문학 주제를 인문과 과학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었다.
만약 선택 수업을 신청하지 않으면 이 시간은 자습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일주일에 약 22시간 정도 수업이네."
과목별로 지정된 차수를 계산해 보니 대략 시간이 나왔다. 아직 시간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선택 수업을 제외하고 학원에서 균등하게 배분하면 수업 시간은 하루에 약 4시간이다.
여기에 선택 수업도 수학 개념과 인문 논술 그리고 비문학 인문 수업 등 총 3개를 신청했다.
나중에는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자습 시간 배분이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진짜 미치겠다. 하루가 왜 이렇게 길어?"
저녁을 먹은 나는 운동장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졸린 눈을 비볐다.
현역 때도 이렇게 오랜 시간 깨 있던 적이 없었다.
몸은 자고 싶을 정도로 피곤한데 학원에서 정한 퇴실 시간인 23시 30분까지는 4시간이나 남아있다.
게다가 퇴실을 하더라도 바로 자는 게 아니라 씻고 점호까지 하면 약 1시간이 소요되니 자정을 넘은 0시 30분이 되어서야 침대에서 잘 수 있었다.
잠은 쏟아지는데 아직까지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으니 짜증도 솟구쳐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막 긁적였다.
딩동댕동! 댕댕댕!!
마침 식사 시간이 끝났다는 예비종이 쳤고, 나는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로 강의실로 들어갔다.
다른 학생들도 종소리를 듣고 하나둘씩 강의실에 모였고 곧 담임 선생님도 강의실도 들어왔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도 굉장히 피곤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학생들의 입학부터 시작하여 오늘도 아침부터 일찍 출근해서 일을 한 것 같아 보였다.
"오늘 단체복을 비롯해서 교재를 받았고, 수업 신청도 마무리되었습니다.
옷 사이즈가 맞지 않아 단체복을 교환하려면 텍 떼지 말고, 비닐 포장지도 버리지 말고 가져와야 합니다. 그리고 교재를 포함해서 수학 노트와 플래너 등 받은 책은 총 14권이니 못 받은 책이 있으면 반드시 내일 교무실로 가서 수령합니다.
내일부터 바로 수업이 진행될 텐데 시간표는 잠시 후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자습실이 아닌 여기서 자습하다가 기숙사로 바로 퇴실하겠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들어오자마자 학원 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 오리엔테이션은 내일까지 3일간 진행되는데, 한꺼번에 많은 내용을 말하기에 단 번에 이해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제가 여러 번 다시 이야기할 테니 지금은 '이런 내용을 들었었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내일 수업과 질의응답이 원활하게 진행 것이니 먼저 강의실 자리배치 및 사물함 배정을 하겠습니다.
사물함 배치는 이대로 끝까지 유지되며, 강의실 자리는 매달 정기외출을 기점으로 바꿉니다."
말과 함께 담임 선생님은 이름 순서대로 학생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강의실 자리와 사물함 배치를 하는 방법은 제비 뽑기로, 미리 나무 막대기에 번호를 적어 놓고 1번부터 순서대로 자리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든 학생들의 니즈를 충족해 줄 수 없기에 본인이 나무 막대기를 뽑아서 결정하는 제비 뽑기가 가장 공평하다고 여겼다.
두 번의 제비 뽑기로 강의실 자리 배치와 사물함 배치가 끝나자 부모님과의 연락 방법, 매일 진행되는 질의응답 신청 방법, 작년 시간표를 예시로 시간표를 보는 방법, 반장 및 주번 선정, 강의실 화이트 보드 활용법, 자습실에서의 규칙, 회복실과 외진 이용 방법 등 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학생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 담임 선생님 말대로 이 모든 걸 외울 수 없어 큰 주제들만 정리했다.
이렇게 오리엔테이션을 하다 보니 각 강의실 방송으로 시간표가 나왔으니 담임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수령하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와, 목요일과 금요일은 죽었다."
시간표를 보니 우리 반은 GA반으로 확정되었다.
내가 신청한 과목들을 체크한 후, 확정된 시간표를 확인하니 탐구 2과목이 모두 목요일에 몰려 있어 총 9교시의 수업을 참여해야 했다. 그리고 금요일도 1교시부터 8교시까지 필수 수업과 인문 논술 수업이 연달아 들어가 있었다.
월, 화, 수요일은 하루 4시간의 수업만 참여하면 되고, 토요일은 1교시부터 3교시까지 수업 후 자습이고, 일요일은 수업이 없었다.
"후우."
앞으로 이렇게 시간표대로 9개월 동안 공부 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막막함이 들어 한숨이 나온다.
또한 기숙학원에 오기 전에 하지 못했던 게임들과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눈에 아른아른거려 나도 모르게 욕과 말이 작게 튀어나온다.
"X발, 그냥 집에 가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 기숙학원을 뛰쳐나가고 싶지만, 그로 인해 슬퍼할 부모님 얼굴을 생각하니 차마 나간다고 연락하거나 실행할 수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종현이와 이야기한 대로 인생을 바꾸기 위해 공부해 보기로 각오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