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_지옥으로 들어가는 거다!
내가 말이 없자 엄마는 아빠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수능을 보고 너한테서 성적에 대한 말이 없길래 망했구나 싶었다. 이 성적이면 수시로 지원한 대학교는 다 떨어진 거지?"
"네."
"그럼 성적에 맞춰서 W대 갈 거니?"
"......"
이 질문엔 나 스스로도 모르겠어서 표정이 애매모호해졌다.
솔직히 공부는 너무 학교에서 치여서 하기 싫지만, 그동안 외고까지 가서 생기부를 만들고 공부한 게 아깝긴 하다.
"요즘은 1년 더 공부한다고 흠이 되는 시대가 아니니까 해보라는 거야. 나중에 대학교에 들어가서 아르바바이트나 취업 준비로 휴학하는 애들도 있잖니?"
"......."
"나중에 네가 어떤 일을 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우선 보는 건 대학교 졸업장일 테니까, 이왕이면 좋은 대학교에 진학했으면 좋겠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부모님의 학력은 고등학교가 마지막이지만 취업을 하고 일을 해서 먹고사는 게 가능했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는 중견 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업하려면 필수로 보는 것이 4년제 대학교 졸업장이다. 혹여 사범계열로 진학해 교사가 되거나, 전문직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면 대학교에서의 공부가 필수다.
"만약 재수하면 그 돈은요? "
"그 정도 돈은 있으니 걱정 말고. 할지, 말 지만 정하면 된다!"
"......"
"솔직히 그 학교가 나쁜 건 아니지만 네가 목표한 학교에 미치지 못한 것과 학교 인지도를 생각하면 W대에 가는 거 반대다."
"......."
"그리고 재수를 안 할 거면 바로 군대 갔다 와서 기술 배워 자격증 따라."
"여, 여보!!"
"나는 할 말 다 했고, 네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결정해라."
냉정한 아빠의 말에 엄마는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역력했다.
그리고 말이 끝나자마자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머리가 아프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려는데 종현이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너, 중학교 때 애들하고 연락하고 지내냐?"
"아니. 나 외고에 적응하기 바빠서 애들하고 연락 끊어졌지."
"음. 혹시 김혜성 기억하냐?"
"혜성이면... 항상 내 뒤에서 놀던 애? 아마 집 주변의 고등학교 간 걸로 아는데?"
"어. 맞아. 나는 몇몇 애들하고 연락하며 지내는데 걔가 수능 최저 맞췄고, 내신도 괜찮아서 B대와 C대 거의 합격이래."
"뭐어?!"
"이지우하고 김세찬, 강민이도 수시 지원했는데 최소 H대 이상 확정이라고 하더라."
"......."
"그리고 걔네들이 너 소식도 물어보던데? 네가 우리 나이에서 제일 공부 잘하던 놈이었고, 외고 갔으니까 대학교는 어디 갔는지 궁금해하더라고."
"......"
"수능 성적표도 나왔으니까 대충 알......"
"야, 야. 나 캐릭터 죽기 직전이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살려주라!"
"어? 어. 알았어."
그때, 종현이의 말에 게임 플레이를 핑계 삼아 대답을 회피했다.
아까 언급됐던 애들은 중학교 때 다 자신보다 성적 및 등수가 낮은 애들이다.
당시 나는 외고로, 그 애들은 일반고로 진학이 결정되자 자신이 위라는 우월감과 자신감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승승장구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헌데 3년이 지나고 대학교 진학이라는 결과가 나오니 나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초라한 성적표와 상한 자존심만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그 애들과는 같은 동네라 지나다니다 보면 언젠가 만날 거고, 만나지 않더라도 W대에 다닌다는 말이 돌테니 쪽팔려서 살 수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엄마. 저 재수할게요."
그래서 나는 1년 더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재수를 결정하자 바로 부모님과 함께 학원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재수 학원이 이렇게 많았나?"
"방문해서 상담하는 것도 일이구나."
학원 종류를 알아보니 통학, 독재, 기숙. 이렇게 3가지로 크게 나누어졌다.
통학 학원은 고등학교처럼 아침부터 오후까지 현강 수업을 진행했다. 중간에 공강이나 수업이 없다면 학원 내부에 있는 독서실에서 자습하거나 학원과 연계된 자습실을 이용하게 된다.
독재 학원은 기숙형 학원으로 현강 수업이 아닌 내가 스스로 원하는 인강만 찾아보며 자습이 위주가 된 곳이었다. 즉, 시간표를 내가 짜서 스스로 공부하는데 기본적인 관리를 해 준다.
기숙학원은 학생 생활의 모든 것을 관리해 주는데, 통학과 독재보다 규칙이 엄격했다. 그리고 신청한 수업은 무조건 참여해야 했으며, 들어가면 답답하고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 근처보다는 서울이 좋겠다."
부모님이 가장 알아본 곳은 집 근처의 재수 학원이다.
하지만 학원이 2곳 밖에 없었고 강사진도 별로인 데다가 학원 독서실도 시설이 별로 좋지 않아 부모님이 원했다 해도 반대했을 학원들이었다.
서울의 몇 군데 통학 학원을 추려 미리 상담 일정을 잡은 뒤, 가게 휴무일에 부모님과 함께 올라갔다.
"흠, 시설은 괜찮네."
"선생님들도 다 유명한 사람들이네요. 다 인강에서 봤었어요."
"이 학원에선 이렇게 많은 애들이 매년 A대, B대, C대를 갔다는 말이지?"
기본적으로 통학 학원은 완벽했다.
강사진도 뛰어났고, 자습실 공간과 가구는 올해 최신식으로 리모델링되어서 불편함이 없었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주변엔 먹거리와 놀거리가 가득해서 학원이 끝나면 스트레스도 풀기에 적당했다.
또한 학원들을 돌며 내 평가원 성적과 수능 성적을 대조하며 입시 상담도 받았는데, 대체적으로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고3 때 9월 평가원 모의고사 성적이 수능 성적이었다면 G대와 H대를 갈 수 있었네요. 학생 말대로 운이 있었다고 해도 최소한 개념과 기본기는 갖춘 셈이니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면 정시 기준으로 최대 D대와 E대까지 진학 가능성을 잡을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학원에는 9월 모의고사 성적으로 정규반에 입학하면 상위권 반에서 공부할 수 있을 겁니다."
대체적으로 모든 재수학원은 우선반과 정규반으로 나누어 입학하는데, 우선반은 1월부터 학원 적응 겸 일찍 공부하기 위해 선택하고 정규반은 2월 중순부터 수능 보는 11월까지 공부하길 선택한다.
부모님은 당장이라도 나를 상담하는 학원의 우선반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선반은 마감되었고 정규반부터 들어올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오전부터 오후까지 통학 학원 투어를 하고 난 뒤, 늦은 점심을 먹으며 학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진수야, 통학 학원 다니는 건 절대 안 되겠다."
"여보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네? 왜요?"
분위기 좋게 학원 투어를 해 놓고 부모님이 통학 학원을 반대하자 당황스러웠다.
"시설이나 강사진은 괜찮지만, 여기 다니면 자취가 필수인데 또 고등학교 때와 똑같은 꼴이 날 거라 본다."
"엄마도 마찬가지야. 너 성격 상 행동이 절제되지 않아 나중엔 술 마시고 놀기 바쁠 것 같구나."
"시간 통금이 있는 학사 신청해서 다니면 되잖아요? 어때요?"
"제대로 통제가 되는 건 아니어서 불안하구나. 마음만 먹으면 학원 수업을 빠질 수 있고, 언제든지 핸드폰으로 게임하거나 노는 환경이 주변에 너무 많아."
학사는 통학 학원에서 공부한 뒤 자습 공간부터 편의 시설과 숙식 시설을 제공하는 곳이다. 매끼 식사를 제공하고, 전반적으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공부 및 생활 패턴을 잡기에 좋다.
하지만 20년 동안 키운 나를 귀신처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내 생각에도 초반에는 열심히 하겠지만, 지내다 보면 익숙해져서 풀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생기긴 했다.
"그럼 엄마, 아빠는 어떻게 할 건데요? 주변에 갈만한 학원들은 다 갔다 왔는데!"
"이왕 온 김에 용인 쪽에 있는 독학 재수 학원과 기숙 학원에 들리자."
"자, 잠깐만요. 죽어도 기숙학원은 반대입니다!!"
아빠의 제안에 나는 다급히 손사래 치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