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_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애들이 있다.
“오늘 수학 공강?”
“어. 수학 쌤이 감기 걸렸는데 오후에는 수업 못할 정도로 심해져서 병원 갔대.”
“그럼 나중에 보강 잡히겠다. ”
자습실에서 공부하다가 오늘 7, 8교시에 수학 수업이 있어 강의실에 오니 칠판에 수학 수업이 공강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마침 옆에 서진이가 있었는데 다른 반 학생들에게 공강 사유를 들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기계처럼 학원 수업이 운영되면 좋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가끔 이렇게 선생님들이 병원에 가거나 집안 사정으로 취소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렇게 빠진 수업들은 주로 수업이 없는 주말에 보강이 잡히는데 약 5일 이전에 알려주기 때문에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내려온 김에 강의실에 둔 간식이나 먹고 가야겠다.”
학원에선 점심시간마다 음료수와 함께 빵 혹은 과자가 하나씩 나온다. 가끔은 떡이나 과일 등 종류가 다양하게 나오는데, 점심을 먹고 난 뒤라 배불러서 먹지 않고 강의실에 두었다가 딱 배가 고파지는 7교시쯤에 먹는 것이 적당했다.
“진수야.”
“응?”
“요즘 윤성이가 이상하지 않냐?”
“왜? 난 모르겠는데?”
“그게 말야...”
빵 봉투를 딱 뜯으려는 찰나 서진이의 말에 고개를 기웃거리며 바라보았다.
“너는 공부 때문에 애들하고 쉬는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걸 아는데, 윤성이가 매 쉬는 시간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수업 시작 직전에 나타나는 거야.”
“급하게 화장실 간 거 아닐까?”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며칠 동안 급한 볼 일로 화장실에 갔을 때 본 적이 없어.”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러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보기에도 윤성이의 행동이 모호했다.
정확히는 4월 정기 외출을 다녀온 이후 무슨 일인지 식사 시간 중간에 자신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따 저녁 식사 시간에 학과 쌤이 아이스크림 쏜다고 했잖아. 그때 물어보자.”
“오늘이 그날이구나.”
윤성이 덕분에 까먹고 아이스크림을 떠올렸다.
우리 반에는 담임 선생님이 두 명 있는데, 생활과 입시를 담당하는 한진성 담임 선생님과 수업적으로 신경 써주는 학과 선생님이 있다.
기본적으로 학과 선생님은 각 반의 수업을 하는데, 우리 반은 국어 선생님이 담당되어 국어 질의응답만큼은 다른 반보다 신경 써서 챙겨주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학과 선생님이 개인적인 사비로 우리 반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다른 반 학과 선생님은 애들에게 치킨을 쏜 적이 있다고 해서 굉장히 부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솔직히 공짜 아이스크림도 감지덕지였다.
“역시 아이스크림은 늘 맛있어.”
“식후 디저트는 아이스크림이지!”
우리 반 학생들은 식사를 하고 식당 안에 있는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챙긴 뒤 명단에 가격을 체크했다.
식사 시간 안의 매점은 워낙 많은 학생들이 왔다 갔다 해서 사장님이 정신없다. 그래서 미리 반장이 우리 반 애들 이름이 적힌 명단을 매점에 전달한 뒤, 본인 이름에 동그라미를 쳐 아이스크림을 가져갔다고 체크하면 나중에 학과 선생님이 확인하고 결제하는 방식이다.
마침 오늘 저녁 식사 메뉴가 매콤갈비여서,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더욱 맛있다.
“윤성아, 요즘 쉬는 시간만 되면 어딜 그렇게 가는 거야?”
“응?”
“종 치면 항상 무조건 밖으로 나가더라고.”
우리들은 강의동 건물 뒤쪽의 공터로 이동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기는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공간인 데다가 넓어 여기선 크게 말을 해도 상관없었다. 게다가 날이 선선하니 애들이 줄넘기와 배드민턴 등 각종 야외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음....”
윤성이는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를 살피더니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부터 말하는 건 진짜 비밀 지켜줘야 해.”
“뭔데?”
“일단 들어보자.”
“...... 여기서 사귀는 여학생이 있어.”
“뭐어?!”
한 마디의 말에 우리들은 모두 멘탈이 나갔다.
기숙학원에서 몰래 대화를 하는 학생들은 은밀히 있어 관련 소문을 듣긴 했지만, 여기서 사귄다는 학생 이야기를 듣는 건 윤성이가 처음이다.
“언제부터?”
“4월 정기 외출 끝나고부터.”
“그 말은... 이번에 나가서 만났을 거고, 이전부터 은밀히 이야기를 했겠네.”
“대체 누구야?”
혹시라도 주변 애들에게 이 이야기가 들릴까 봐 우리들은 작은 목소리로 우리들만 들을 수 있게 작게 이야기했다.
윤성이는 조심스레 이야기하는데, 현재 사귀고 있는 여학생은 GV반 유아성이다.
4월 초쯤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유아성을 보게 되었는데, 첫눈에 보고 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히 유아성의 반과 이름을 모르는데 어떻게 찾았나?
유아성은 같이 다니는 여학생이 2명 있었는데 우연히 2명 중 한 명을 알고 있었다.
바로 윤성이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여학생이 있었고, 친분이 있어 토요일에 핸드폰을 사용할 때 메신저를 이용해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윤성이가 끈질기게 부탁하자 아성이에게 한 번 말해보겠다고 했고 유아성도 이야기는 나누고 싶다고 수락했다.
“GV반은 완전히 반대쪽인데 어떻게 만나?”
“도무지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물어보았다.
자신들의 반인 GA와 여학생 반 중 하나인 GV반은 같은 층에 있지만 거의 끝과 끝에 위치하고 있어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복도에는 학생들의 사물함이 있는데, 종종 비어 있는 사물함이 있었다.
원래는 사물함을 누군가 쓰고 있어야 하지만, 퇴소하는 학생으로 인해 잠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반은 퇴소 학생이 있으면 비어있는 사물함은 담임 선생님이 본인만 아는 비밀번호로 바꿔놓는데, 모든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디테일하게 신경 쓰는 건 쉽지 않다.
윤성이와 아성이는 본인들 층의 사물함들 중 비밀번호가 걸려 있지 않는 사물함을 통해 쪽지를 남겼고, 몰래 자습 시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 자식..... 간 크네!”
“둘 다 대단하다.”
기숙학원에서 남녀대화는 중대규칙 위반이라 걸리는 바로 근신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쪽지를 받은 여학생이 학원에 제보를 했다간 끝장이고, 누군가가 보기라도 하면 일파만파 소문이 난다.
진짜 여기만큼 소문이 빠른 동네가 없다.
룸메이트가 다른 반 애들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정말 곳곳에 사람으로 된 CCTV들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진짜 더욱 크게 놀란 것은 이번에 4월 정기 외출에 나가서 만나 데이트를 했다는 것이다.
둘 다 집이 서울이고 지하철로 1시간이면 만날 수 있었고, 윤성이가 정식으로 사귀자고 해서 만나고 있다고 한다.
“연애하면 공부하는 데 정신없지 않을까?”
“걱정 마. 아성이와 약속한 게 하루에 1시간만 만나서 이야기하고, 정기 외출 때 나가서 데이트하기로 못 박았어.”
걱정스러워 내 의견을 말했지만 윤성이는 호언장담하며 아무 일 없을 거라고 한다.
“딱 너희들만 알고 있어야 해. 애들한테 소문내면 안 된다.”
학원에 소문나는 게 무서운 것인지 윤성이는 우리들에게 입단속을 부탁했다.
여기서 주변에 떠들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고, 저녁 식사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 강의실로 들어가기 위해 움직였다.
“윤성아, 잠깐 이야기 좀 하자.”
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복도에 있던 담임 선생님이 부른다.
이를 보는 나는 느낌이 싸늘했다.
느낌은 빗나가지 않았다.
퇴실 시간이 되자 윤성이가 어두운 표정으로 왔는데 유아성과 쪽지를 주고받고 대화한 게 담임 선생님에게 걸렸다는 내용이다.
다른 학생으로부터 남녀 학생이 빈 사물함을 통해 쪽지를 주고받고 만난다는 제보가 있었다.
이 제보에 두 학생이 속한 담임 선생님들이 움직여 확인하고, 둘을 각각 부른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내일 부모님에게 연락하고, 빠른 시간 내에 중대규칙 위반으로 상벌위원회가 열린다고 한다.
윤성이는 투덜거리면서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하는데, 다음 날 충격적인 이야기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