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파친코
파친코는 시대가 낳은 조금은 특별한 존재, 재일조선인의 4대에 걸친 가족사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재미교포 1.5세대인 이민진 작가가 1989년 전쟁 후 일본에 남은 재일조선인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하고 그로부터 30년 후인 2017년 출간했다. 역사학 전공의 그녀는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복잡한 역사 속 인간의 본질을 녹여내어 세계의 주류, 비주류 인의 마음을 울린 대작이 탄생했다. 2017년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BBC, 아마존 등 75개 이상 주요 해외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거론되며 세계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회복과 연민에 대한 강력한 이야기”라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찬사로 전 세계적인 파급력은 더욱 강해졌다. 특히, 한국에서도 한 OTT 채널을 통해 오픈한 동명의 드라마와 함께 화제가 되며 2022년 ‘올해의 책’으로 모든 서점 종합 1위를 휩쓸었다.
‘파친코’는 우리가 잘 아는 역사 속에서도 철저하게 경계선 밖에 있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선자’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어딘가 모르게 어긋나 있다. 혼전임신을 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선자, 입술이 갈라지고 발을 저는 선자 아버지 훈이, 가난해서 결혼한 선자 어머니 양진, 똑똑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지독한 야쿠자가 된 한수, 일제 강점기 몰락한 양반집 자식이자 일본에서 비주류인 기독교인 이삭과 요셉, 똑똑하지만 조선 시대 양반 규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경희, 도덕적으로 올바른 아버지 이삭과 야쿠자 생부인 한수 그리고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노아, 파친코 가게를 하는 모자수, 미국에서 성공한 듯 보였던 솔로몬 등. 이민진 작가는 첫 문장에서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단지 이 말은 첫 장에 등장한 훈이 뿐만 아니라 4대에 걸친 등장인물, 이 시대를 살아간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였음을 마지막 장을 덮으며 깨닫는다. 그리고 찾아온 가슴 먹먹한 여운은 묵직하며 오래도록 남는다.
재일교포 1.5세 미국인이 쓴 재일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문학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유는 역사학도인 저자의 선형적 역사 연구와 더불어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통찰력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선형적 흐름 속에서 버텨낸 21세기 사람들은 지금도 대부분은 그 큰 흐름에 휩쓸리면서 경계선의 삶을 산다. 선자는 20세기 초 조선의 약하기 그지없던 식민지의 한 소녀지만 그 시대를 살아내고자 아등바등 버티며, 오히려 그 생명력을 빛내며, 4대에 걸친 거대한 서사를 완성한다. 그 다양한 인생의 여정을 따라가며 문화권이 다른 우리도 모르게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을 응원하며 마지막 장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다. 단지, 재일 한국인의 고난사가 담긴 디아스포라로 그치지 않고, 유럽계 미국인이든 히스패닉이든 아프리카 아메리칸이든 중국인이든 유럽인이든 “읽으면서 우리 할머니가 떠올랐어요.”라고 한결같이 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민진 저자도 파친코에 담은 이야기는 ‘남’이 아닌 ‘우리’라고 말한다. 세상의 경계선에서 힘껏 살아가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공감하고 치유로 소통하라 한다. 저자의 의도는 소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책의 마지막에 이삭의 묘를 방문한 선자는 관리인을 통해서 노아의 소식을 듣는다. 이로써 우리도 끝까지 일본인으로 남고 싶었다고 여겼던 노아는 실은 그 삶의 끝까지 가족과 함께했음을 알 수 있다. 비로소 ‘내 아들 노아’를 선자는 자신을 구원한 사랑하는 가족이자 남편인 이삭에게로 보낸다.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인 경희에게 돌아가면서 끝을 맺는다. 파친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공감하는 ‘우리’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