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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DI Sep 21. 2024

스페인, 중독치료센터에서 마주한 후유증

스페인 1년 살기 도전 중

'중독'과 '후유증'


'스페인 1년 살기'를 시작한 이유는 딸아이와 함께 놀고, 지쳐버린 일상을 떠나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나는 지금 스페인에서 그것을 이루면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지친 하루를 살던 예전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제목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문득 '중독'과 '후유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단어의 정확한 뜻을 찾아보고 싶었다.


중독
    생체가 음식물이나 약물의 독성에 의하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일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택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후유증
    어떤 병을 앓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병적인 증상
    어떤 일을 치르고 난 뒤에 생긴 부작용


'중독'은 독성에 의해 기능 장애를 일으키거나,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후유증'은 어떤 병이나 일을 치르고 난 뒤 생기는 병적인 증상 또는 부작용을 말한다.


"남과 비교를 하게 되면 시기심이 생기고, 불행만이 찾아옵니다."  - 법정스님-


그동안 나는 '비교와 시기심'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건 어릴 때부터 친구와 비교하거나, 비교당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남과 비교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러나 중독이 되었다. 동시에 내 마음속에는 시기심으로 가득 찼다. 이것들 때문인지 나에게 찾아온 만족의 순간은 짧기만 했다. 왜냐면 또 다른 비교 대상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증상은 쳇바퀴처럼 계속 반복되었다.


금연(禁煙) 보단 휴연(休煙)
편하게 잠시 쉬어간다 생각하니 중독에서 벗어났다.


중독을 끊어내고, 시기심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왜냐면 '후유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금연'은 중독과 후유증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나도 여러 번 금연 시도를 했었고, 여러 차례 실패를 했다. 그러다 마지막 시도에서는 금연이 아닌 차라리 잠깐 쉰다는 가벼운 의미로 '휴연(休: 쉴 휴, 煙연기 연)'을 한다고 생각하며, 휴연을 시도했다. 이것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휴연의 후유증이 찾아왔다.


"조금만 더 쉬었다가, 한대 피우자."


그때마다 '난 조금만 더 쉬자'라고 생각했다. 휴연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해 보니, 어느덧 흡연에 대한 욕구를 다스릴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휴연에 따른 후유증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넘는 지금까지 나의 약속을 잘 지켜 내고 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번에 단절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편한 마음으로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씩 휴식의 시간을 늘린다고 생각해 보니 중독과 후유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스페인 브리우에가 라벤더 밭에서 - Hidi 作 -


스페인, 중독치료센터에서


공간적 격리로 중독환경에서 멀어졌다.

스페인 마드리드는 한국에서 직항으로 13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사람들의 모습과 사용하는 언어, 기후, 문화 등 모든 것들이 내가 사는 곳과는 많이 다르다.


'눈에서 사라지니, 괜찮아졌다.'


공간적으로 내가 있던 곳에서 멀어져 보니 한순간에 비교 대상이 사라졌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인가 나에게 반문해 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비교의 현장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면, 빠르게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언제 어디서든 고개를 뒤로 젖히면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넋을 잃고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 푸른 하늘이 들어온 듯한 벅찬 감정을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러 집 밖으로 나오면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도는 시원함이 좋다. 그리고 가슴 가득 공기를 들이마시면 내 안에 쌓였던 먼지들이 날숨에 빠져나가는 느낌을 느낀다. 왜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는 이런 느낌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리고 길을 걷다 눈에 들어온 꽃들, 나무들, 풀잎 등 자연의 생명들에게서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그것들에게서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나의 인생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사람 손길에서 길러진 꽃은 화려하지만, 결국 사람 손길에 잘려 나간다. 그러나 자연 속에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꽃은 씨앗을 만들고 더욱 넓을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자라는 작은 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남과의 비교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기다림을 여유로 즐긴다.

스페인에서 산다는 건 기다림을 잘 견뎌내야 한다. 관광서를 갈 때도, 식당을 갈 때도, 병원을 갈 때에도 어딜 가도 기다려야 한다. 급하다고 해서 빠르게 처리해주지 않는다. 그저 나의 요청사항을 들어줄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 이곳은 고객 중심이 아니다. 어딜 가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이 기다려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일한다.


한국과 다르게 고객을 대하는 입장이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여러 번 겪어보니 점차 그런가 보다 생각하면서 마음 비우게 된다. 마음을 비워보니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생각을 바꿔보니, 일하는 사람도 여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그래서 기다림의 시간을 나에게 주어진 쉬는 시간으로 생각하고서 즐겨보기로 했다. 생각을 바꿔 보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 생각을 바꿔보니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남들을 비교하면서 힘들게 살았을까 생각이 든다. 맡은 일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조용히 나만의 여유를 느꼈으면 어땠을까?

    

언어를 배우면서 소통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일 것이다. 스페인어를 이곳에서 처음 배워보니 좋다. 그것보다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간다는 게 더 좋다. 처음에는 서로 소통이 안되어서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언어를 배울수록 조금씩 소통이 더 가능해졌다. 그리고 그들의 다양한 생각과 삶을 알게 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어학원에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은 스스로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 모든 게 낯선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열정적으로 노력한다.


'난 그동안 스스로 꿈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본 적이 있는가?'


두 가지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면서 내가 앓고 있는 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의 주관이 빠져 있으니 쉽게 비교에 빠져 드는 것 같다.


'남의 꿈이 아닌, 내 꿈을 가지고, 그것만 바라보고 뛰어야 한다.'


내가 진정 이루고 싶은 나의 꿈이 있다면 그것을 향해 열정을 가지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의 눈치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다.


하고 싶은 것에 집중!

스페인에 있으면서 하나, 둘씩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 났다. 그리고 못 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고서 직접 실천해 보니 재미있다.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하고, 해 보니 그중에서 내가 꼭 해보고 싶은 게 생겼다.


'글쓰기다.'


지금껏 내 삶에서 글 쓰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글을 적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지 모르겠다. 어떤 때에는 즐기면서 하고, 어떤 땐 하기 싫을 때도 있다. 그래도 난 스스로 내 꿈을 가졌다는 게 행복하다. 꿈을 향해 열정을 쏟으려고 노력 중인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잘 안된다. 그렇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뿌듯하면서 기쁘다. 그리고 남의 눈치를 보는 시간이 점점 줄어간다. 왜냐면 내 글을 적을 시간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딸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그동안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딸아이 역시 엄마, 아빠 따라 어린이집으로 출퇴근을 함께 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은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다. 이곳에서는 우리 가족 말고는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스페인에 도착 이후 우리 가족은 같은 것을 보고, 웃고, 즐기고, 힘든 일을 견디어 내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서로 함께 보낸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은 애정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괜찮아. 지금 잘하고 있어!"

"아빠! 힘내세요"


나에게 힘든 시간이 찾아올 때면 항상 아내와 딸아이가 나를 겪려 해 주고, 응원해 준다. 아내든 딸아이든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힘이 되어 준다. 곁에서 항상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난 오롯이 내 꿈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차츰 비교의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스페인 시구엔사 지역 알카사르 -Hidi 作-


후유증 찾아왔다.

하던 거 잠깐 멈추고 쉬어간다.


스페인에 도착 후 비교를 그만하고, 내 마음속에 있는 시기심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변화하고 싶은 의지가 강했기에 잘 지켜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주변에 있는 작은 행복들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이 바빠지고, 하고 싶은 것들 많아졌고, 해야 하는 것들이 차츰 늘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옆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비교와 시기심에 사로잡히는 후유증에 빠졌다.


스페인어를 빨리 배우고 싶다.

나의 세 번째 언어, 스페인어를 이곳에서 처음 배우고 있고, 생각보다 잘 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언어를 자꾸 문법적으로 분석하려는 과거습관 때문이다. 그리고 듣고, 문제 풀기에만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스페인어로 상대방과 대화를 하려니 어렵다. 또한 말 한마디를 하려면 머릿속으로 언어를 공식에 맞춰 계산을 하고 있으니, 항상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어학원에 있는 친구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스페인어를 잘한다. 그러나 난 계속 우물쭈물 만 하다 보니 남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점점 주눅 들었고, 점점 우울해졌다. 그리고 혼자 뒷처질 것 같은 조바심이 차올랐고, 스페인어를 빨리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나를 자꾸 재촉한다.


'잠시 스페인어 어학원을 쉬어본다.'


쉬는 동안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나는 어학원 친구들처럼 대학에 입학하거나, 스페인에 이민하기 위해서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곳 문화를 느끼고,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만 배우면 된다. 그러나 난 언젠가부터 그들의 목표를 내 것으로 착각했다. 그것으로 인해 내 안에는 근심으로 가득 찼고, 여유를 즐기지 못한 채 나의 하루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나의 원래 목표로 돌아가야 한다. 친구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더 많은 조회수를 바라보다.

'스페인 1년 살기' 꿈을 준비하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는 스페인 1년 살기를 하면서 변화되는 나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글을 적다 보니 어느덧 구독자와 조회수가 늘어갔다. 점점 내 눈에는 매일 통계 숫치만 바라보고 있다. 어떤 글을 올렸을 때 조회수가 늘어나는지, 댓글은 어떤 것들이 달리는지 궁금해졌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라보았다. 수치가 올라가거나 떨어지면 나의 기분도 함께 오르락내리락거렸다. 그렇게 타인의 관심과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조회수에 집착하게 되었다. 집착을 하게 되니 원하는 조회수가 나오지 않을 때에는 글을 쓰고 업로드하는 게 싫어졌다.


'잠시 블로그 활동을 멈춰본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쉼'은 사치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한참 열심히 해야 할 때인데, 갑자기 잠시 휴식을 취한 면 안될 거 같다. 그것은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쉬어보니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더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많은 꿈들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블로그를 잠시 쉰다고 해서 나에게 큰일이 생길 게 있는지 생각해 본다. 원래 블로그에 글을 적는 이유는 나의 변화되는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다. 잠시 쉬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처음에는 쉬고 있을 때에도 조회수에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회수가 떨어지니 더 이상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쉬는 동안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여행 다니고, 가족과 놀다가 보니 글을 적을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쌓여갔고,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그렇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이야기는 틀리지 않았다.


유명 관광지 모두를 여행하고 싶었다.

스페인에 있으면서 근처 유럽에 있는 인기 많은 관광지 모든 곳을 여행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 또는 휴일이 있을 때에는 여행을 떠났다. 연속되는 여행으로 몸의 피로가 쌓여갔고, 모아둔 경비도 빠른 속도로 줄어갔다. 하지만 다녀온 곳보다 가볼 곳은 한참 많이 남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속에 조바심이 생겨 난다. SNS에 올라오는 멋진 곳의 사진을 볼 때면 나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고, 못 가볼 거라 생각하니 미련이 남아 서운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 중 딸아이의 뜻밖의 사고로 인해 두 달가량 집에서 쉬어야 했다.


'남들은 휴가 떠나는데, 우리는 집에서 쉰다.'


집에 머물면서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부러운 마음이 생긴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가까운 곳으로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드라이브를 했다. 비록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 멀리는 못 가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 위치한 스페인의 작은 마을들로 구경 다녔다.


'진정한 스페인은 시골 작은 마을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정한 스페인을 느끼게 되었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오랜 역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을 여행하고, 친절한 스페인 사람들을 만났다. 오래된 성에서 잠을 자거나, 밤하늘의 별을 보고, 옛길을 걷고, 그곳 전통 음식을 맛보고, 친절하게 우리 가족을 반겨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것들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선물해 주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남에게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내가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여행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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