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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DI Sep 18. 2024

스페인 1년,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

스페인 1년 살기 도전 중



거울 속에 비친 난


오래전부터 난 나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나의 모습은 보지 않은 채 타인의 삶과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비춰 보기 바빴다.


'일을 할 때도, 놀고 있을 때도, 선택을 할 때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동시에 사회가 만든 기준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항상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나의 삶의 방향을 찾아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했고, 사소한 것 하나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잘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는 나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며 비꼬다 보니, 타인과의 비교에서 이긴 듯한 교만한 승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남과의 비교' 하는 삶은 '시지프스의 벌'과 같다.


타인의 시선이 느껴지는 장소에 있을 땐, 난 항상 그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평가를 할까'가 궁금했다. 남과의 비교에서 항상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욕심은 계속 켜져만 갔고, 끝이라고 생각했던 비교의 대상은 양파 껍질처럼 끊임없이 나타났다. 끝이라고 생각하고서 했는데, 새로운 상대가 나타나면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허탈한 감정이 반복되면서 더 이상 새로운 에너지를 낼 수가 없다.


끝나지 않는 비교의 삶은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처럼 신들의 벌을 받는 듯했다. 언젠가부터 여유를 즐기는 건 사치가 되었고, 행복을 느끼는 빈도는 줄어만 갔다. 그리고 늘 눈앞에 있는 비교 대상만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은 점점 좁혀져만 갔다. 마치 주변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굴속에 갇혀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던 비교되는 삶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잠시 멈춰보니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나'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또 고개를 들고서 주변을 돌려보니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페인 1년 살기' 꿈이 가져다준 소소한 행복들이 그동안 '비교에 길들여진 나의 모습'보다 더욱 나를 멋지게 만들어 주고 있다. 



매일 즐기는 행복들


어느덧 딸아이와 같은 동심을 느낀다.


'내 꿈의 날개를 펼치다.' Hidi. 스페인 하늘 作.

스페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동안 바라보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서 난 하늘이 만들어주는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게 좋다. 고개를 들어 올려 보거나,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넋을 잃은 채로 하늘만 바라본다. 푸른 하늘을 캔버스 삼아 바람이 하얀 구름으로 그려 놓은 작품을 보고 있으면 너무 좋다. 잡다한 생각을 비워내고, 멍하니 있으면 머릿속에는 행복한 생각들로 채워진다.


"지금껏 같은 하늘과 구름 아래 살았는데, 이제야 바라보고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항상 자동차를 타고 지날 땐 보지 못했는데, 차에서 내려 천천히 길을 걷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들 중에는 예쁜 것들이 많다. 


"보도블록 틈에서 자란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의 아름다움"

"카페 근처에 누군가 나눠주는 빵조각을 먹기 위해 모여든 작은 새들의 귀여움"

"무더운 날 그늘과 바람이 주는 시원함"

"내리는 빗방울이 얼굴에 스칠 때 느껴지는 촉촉함"


지금껏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바라보고, 느껴보니 곁에 있던 딸아이와 같은 동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니 저절로 행복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걱정보단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 


'스페인 1년 살기'는 오랜 시간 동안 한 곳만 바라보며 빠르게 달려가는 자동차 안에서 갑자기 급하게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느끼고서 잡고 있던 핸들을 돌려 휴게소에 멈춰 선 듯한 느낌이다.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해소하고 난 뒤 가져본 잠깐의 꿀 같은 휴식 시간은 나의 생에 있어 가장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더불어 먼 훗날 인생의 종착점에 다가갈 때쯤에는 지금 이 순간의 멋진 추억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잠시 멈춰보니 가졌던 불안감은 사라졌고,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들로 채워진다. 


우리 부부는 매일 아침 딸아이를 등원시키고서 어학원으로 간다. 지하철에서 내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산미가 도는 커피 한잔 손에 들고서 마드리드 시내의 한적한 거리를 함께 걷는다. 커피가 전해주는 행복은 추울 땐 손에 들고 있는 따뜻한 커피잔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고, 더운 날엔 입안 가득한 커피 향이 더위를 잠깐 잊게 만든다. 그리고 어학원이 끝나면 근처 맛있는 식당에서 오늘의 메뉴(Menu del dia)를 또는 집에서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가지고서 레티로 공원 나무 그늘에서 앉아 한가롭게 점심 식사를 즐긴다.


여유롭게 둘만의 시간을 보낼 때면 우리 부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대부분의 대화 주제는 주변에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감정들, 딸아이에게 찾아온 변화들, 주변 사람들이 가진 좋은 점들, 그리고 각자의 꿈을 찾아가는 기쁨과 힘든 점들에 대한 것들이다. 우리 부부가 주고받는 대화의 주제는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교 대상에 관한 것들이 아닌,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스페인에서 지내는 몇 개월 동안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와 행복들을 누렸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그리고 꿈이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이 마음속에 가득 차 오른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은 사라지고 다가올 미래가 기다려지는 설렘을 가졌다.



딸아이와 함께 만드는 추억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일상은 일에 집중한 채 바쁜 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자주 놀러 다녔다. 그러나 지금처럼 매일 놀아주지 못했고,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열정적으로 아이와 무언가를 함께 하지는 못 했다. 


갑자기 솟아난 용기 덕분에 긴 것 같지만 짧은 휴식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막상 시간이 많아졌다고 해서 하루종일 놀아 주거나, 불타오르는 듯한 에너지가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어 좋다.


잔디밭에 누워 함께 굴러다니기, 축구하기,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숨바꼭질, 카드놀이, 인형놀이, 그림 그리기, 스페인 이곳저곳 여행 다니기, 레몬나무에서 레몬 따기, 밤하늘 아래 누워 별 보기, 갓 태어난 아기 새 구경하기, 바다 수영하기, 고래 보기, 암벽 타기, 요리하기, 그리고 열쇠구멍으로 염탐하기 등 함께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난 이렇게 많은 것을 함께하고 즐겨서 당연히 아빠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는 아직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빠, 싫어! 아빠, 못생겼어"

"엄마만 좋아"


이 말을 들으면 섭섭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의 품에 안겨서는 부드러운 볼을 나의 얼굴에 비벼 될 때에는 너무 사랑스럽다. 하지만 영리한 딸아이는 걷기 싫으니깐 날 이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본인이 필요한 게 생길 때마다 수줍은 표정을 하고서 나에게 귀속말을 한다.


"아빠, 사랑해"

"아빠, 잘생겼어"


그러면 딸아이 손에는 인형이 들려있거나,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이 주어진다. 뻔히 보이는 딸아이의 아부에 기분 좋게 넘어가 준다. 그래서 딸아이를 키우는 건가 싶다. 


딸아이와 함께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쭉 아이와 더 많은 것을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딸아이는 점점 자라면서 이 순간의 소중한 시간들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빠와 함께 공유했던 감정들은 마음속에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은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딸과 아빠의 편지


테이블에 앉아 컴퓨터로 글을 적고 있는 내게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는 놀아 달라며 다가왔다. 그리고선 내 컴퓨터를 자기 것인 양 키보드를 마구 눌러보다가 음성기능이 되는 것을 알고서는 아무 말이나 한다. 그래서 문득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딸, 아빠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 편지로 적어줘"

"좋아, 그럼 아빠가 먼저 해"


이렇게 우연히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쓰게 되었다. 




사랑하는 딸에게

새로운 유치원, 처음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 모든 것들이 지금은 처음이라 낯설고 적응하기 힘들 거야.

우리 딸은 지금 너무너무 잘하고 있는 거 같아. 엄마, 아빠는 너를 처음 유치원에 보낸 후 너의 모습에 너무 감동했어. 우리 딸이 엄마, 아빠랑 유치원에서 헤어질 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했어.


"안녕. 괜찮아. 나 잘할 수 있어" 


엄마, 아빠는 네가 정말 이렇게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는데, 스스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려고 용기를 내는 모습이 너무 대견했어. 그리고 우리 딸이 엄마, 아빠 보다 더 좋은 마음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

엄마, 아빠는 항상 우리 딸을 믿고 스스로 잘 헤쳐 갈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딸아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네 인생의 주인공이 되렴. 그래야지 너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어. 또 자신감 갖고 당당해져,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당당하게 요구하고, 어려운 게 있으면 도와 달라고 이야기해. 그리고 싫은 거 있으면 싫다고 꼭 말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계속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게 될 거야.


그러나 치카치카랑 씻는 거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우리 딸을 많이 사랑하는 아빠가.




아빠에게 


그럼 아빠 아빠는 누구나 친절하고 아주 멋진 사람인 것 같아.

나는 이제부터 아빠랑 함께 있을 거야.


근데 난 아직 너무 어리고 스페인어도 못 써서 아직 잘할 줄은 없지만,

다녀 보니까 너무 즐겁고 흥미로운 계획도 잘할 수 있는 것 같아.


나는 엄마 아빠 말을 잘 믿고 싶지만 나는 왜 잘 안 믿어 줄까. 

나도 이제부터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싶은 말을 계획하고 싶어. 

아직은 내가 엄청 키가 크려면 기다리고 나의 이름은 얼른 스마일도 될 수 있어.

근데 아직 내가 너무 친절하지 않아서 좀 걱정이 돼. 


근데 엄마 아빠는 내 말도 잘 알아듣고, 아주 멋지고 아주 흥미롭고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건 언제나 언제나 행복하니깐 말이야

그래서 나는 엄청 기뻤어


내 말투는 아직도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이 사랑받고 있단다.

나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멋진 엄마 아빠의 친구들과

그리고 내 친구들을 다시 만나 보고 싶어.

그런데 언제 나는 스페인에 다시 여행을 떠날까

친구가 온다고 했지만 아직은 안 오는 것 같아


그래서 내 말대로 아빠랑 엄마랑

그리고 엄마 아빠는 언제나 내 옆에 있으면 좋겠어


엄마 아빠 제 말 들려요

저는 아주 엄마 아빠랑 함께 살 수 있는 아주 멋진 딸이에요

저가 아직도 이렇게 멋진 딸로 자라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이렇게 결심했어요

엄마 아빠들은 친절하고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갖고

그리고 이제는 나를 그만둘 생각도 없는 계획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우리 친구들이 엄청 예쁜 하루를 보내면 좋겠으니까

저도 이제 엄마 아빠와 함께 편지를 쓰고 떠날 거예요

저는 이제는 아주 친절한 딸이 될 거라고 결심을 두 번이나 했어요


그럼 저는 안녕히 가세요.





딸이 아빠에게 들려준 편지 내용을 옮겨 적었다. 다섯 살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옮겨 보고 싶은 마음에 내용 수정은 하지 않았다. 다소 이야기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지만, 아이의 따뜻한 마음만큼은 느낄 수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보고, 느끼다.


스페인에 있는 동안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들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지난날의 나와는 많이 달랐다. 그들은 스스로 원하는 삶을 개척해 나가는 '개척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또한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지난날의 나처럼 남과 비교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한 채 스스로 원하는 미래를 위해 도전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척자의 삶은 어떨까?


"이탈리아어 가르치는 선생님 할 거야"

"건축가로 스페인에서 일하고 싶어"

"스페인에서 의사를 할 거야"

  ...

"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도전했던 적이 있었던가?"


지금 그들의 첫 번째 관문인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스페인어와 어원이 유사한 언어를 사용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온 학생들은 원활하게 배워나갔지만, 나처럼 아시아, 인도 등 어원이 다른 국가에서 온 학생들에게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게 쉽지 않다. 여러 차례 같은 수업을 다시 들어가면서 스페인어를 배워나가는 걸 보고 있으면, 원하는 꿈이 있으니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에서 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만약 과거의 나였더라면 과연 그들처럼 꿈을 위한 큰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


난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인다. 난 저 나이 때 무엇을 했나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보호 아래서 그저 사회가 정해 놓은 표준화된 길을 걷기 위해서 노력했고, 다행히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쉬운 건 점이 하나 있다면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원하는 꿈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껏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의지대로 현재 내가 있는 위치까지 왔었더라면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지 않았을까 나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지금이라 이들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순간 글을 적으며, 매일 꿈에 가까워지고 있는 설렘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


온실 속 화려한 꽃보단, 들판에 핀 꽃이 아름답다.


어느 날 공원을 걷다 잔디밭 중간중간엔 노랗고, 하얀 작은 꽃들이 바람에 찰랑찰랑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씨앗 하나가 수많은 잔디들 속에서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홀로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틔운다. 이후 홀로 심술궂은 날씨로부터 견뎌낸 뒤 자신만의 꽃을 피우고, 향긋한 향기를 내뿜는다. 그러자 어디선가 날아온 꿀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꽃을 피우기 울 수 있는 행운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남이 보살펴주는 온실 속 꽃들은 화려하고, 돈의 가치는 있어 보이지만, 자연 속에서 자란 특유의 매력과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없다. 

이전 나의 일상은 바쁘고, 계속되는 경쟁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언젠가부터 주변에 있는 작은 것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 스페인에 있는 동안 난 주변에 있는 소소한 것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에게서 느낄 수 좋은 감정들과, 교훈들을 얻다 보니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조금씩 매일 충전 중에 있다. 


지금은 나의 곁에 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즐기고, 삶의 깨달음을 매일 느끼보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스페인어를 한다는 기쁨


오랜 시간 동안 영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고, 영어를 통해서 넓을 세상을 여행 다녔다. 그리고 지금처럼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폭넓은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국가별로 사용언어를 분석해 놓은 '에스놀로그' 자료에 따르면 영어 106개국, 스페인어 31개국으로 영어와 스페인어를 하게 된다면 전 세계 198개국 중 137개국 약 70%의 국가를 언어장벽 없이 여행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사람들을 만나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스페인어를 배우기 전까지는 영어 하나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배우게 되면서 나 자신이 더 당당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언젠가 여러 언어를 유창하게 말을 하게 된다면 3개 국어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인생에서 다개국어를 할 거라는 상상은 못 했는데, 어느 순간 3번째 언어를 배우고 있다니 신기하면서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Hola. Buenas días."

(안녕. 좋은 아침이야.)


어느 순간부터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이웃들과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딱 거기까지가 좋은데, 그들은 더 많은 말을 나에게 할 때면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고, 눈치껏 상대방의 표정과 행동을 보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어설픈 호응과 웃음으로 마주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다. 소통은 불가능했지만 이웃들은 반갑고 환한 미소로 우리 가족들을 반겨줘서 나름 이웃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낀다.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난 이제 3개 언어를 한다.


스페인어를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마트나 식당에서 종업원들이 나에게 투척하는 무수히 많은 단어들 중 한 두 개의 단어가 드디어 들리기 시작했다. 몇 개의 단어를 가지고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유추하고서 대답하면 질문들 중 절반은 맞는 것이었고, 점차 이런 경험 쌓이다 보니 바닥이었던 자존감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다. 간혹 식당에서 질문을 잘 못 이해하고서 '네'라고 대답했는데, 깜짝 놀랄 때가 종종 있었으나 반문할 자신이 생기지 않아 따질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점차 스페인어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면서 주변 친구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것들은 새로운 것들이었고,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고방식들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여러 고정관념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그 나라 언어를 할 수 있어야, 그곳의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페인어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난 처음 스페인 사람들의 말투가 딱딱하고 억양이 부드럽지 않아 그들에게서 배려와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로 인해 스페인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프랑스어나, 포르투갈어처럼 부드러움이 없는 언어적 특성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가졌던 선입견을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서툴지만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스페인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보다 더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우릴 반겨준다. 이렇게 이곳 사람들과 조금씩 소통하며 스페인이 가진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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