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1년 살기 도전 중
우리 부부에게는 활발한 성격에 자기주장도 강하고, 어떤 때에는 논리적인 화법으로 부모를 당황하게 만드는 다섯 살 딸아이가 있다. 나와 아내는 '스페인 1년 살기'를 준비하는 동안 딸아이가 다닐 유치원을 알아보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어린 딸아이는 한국어 말고는 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 그리고 혼자 낯선 환경 속에서 다른 언어와 외모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딸아이가 유치원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여 최소한 우리 부부와 선생님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영어를 사용하는 곳을 선택해야 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학교 선정에 꼭 필요한 내용들을 하나씩 리스트로 만들었다.
선생님과 영어로 의사소통 가능
집에서 가까움
학비가 저렴
입학 가능 정원 있는 곳
스페인도 배울 수 있는 곳
구글지도를 열어 우리가 머물 집 근처에 있는 'Internatioanl School, Kindergarten'을 검색해 보니 여러 곳이 검색되었다. 그래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비교 자료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학교별 학비, 사용 언어, 입학정원, 학부모 후기 및 특장점 등을 추려 우선순위를 포함한 나만의 정리표를 만들었다. 그 뒤 각 학교별로 사전 인터뷰를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하였다.
그 나라 언어를 배워야지, 그곳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딸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주된 목적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시켜 주면서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그 나라 문화를 배우기 위해서는 현지 언어를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 미리 스페인어와 영어를 동시에 가르쳐 주는 곳으로 범위를 좁혀 놓은 뒤, 최종 결정은 직접 학교를 방문해 본 후 딸아이가 좋아하는 곳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스페인에 도착한 후 우리 가족은 여러 학교들 중 1순위로 정했던 곳을 가장 처음으로 방문했다. 딸아이는 자신을 친절히 반겨주는 선생님과 넓은 야외 놀이공간을 보고 나서는 선뜻 이곳에 다니고 싶다며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아내도 나도 이곳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최종 결정할 수 있었다.
아내와 딸아이는 약 한 달가량 집에서 머무르며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특별한 활동 없이 쉬기로 했다. 내가 어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둘이서는 집에서 함께 피아노 치며 놀거나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 가족은 마드리드에 있는 미술관, 박물관 등 이곳저곳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고, 동네 마트와 놀이터를 돌아다니면서 반복된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 한 달이 채 안 된 어느 날 아내와 딸아이는 지루하다며 어학원과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하여 아이는 유치원으로 예정된 일정보다 조금 더 빨리 등원하게 되었고 아내 역시 나와 함께 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들 모두 자신이 소속된 곳으로 각자의 스페인 생활을 찾아 나섰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너야!
유치원 등원하는 첫째 날 아침 우리 부부는 딸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였다. 그리고 아이는 역시 엄마, 아빠와 떨어져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우리를 유치원에 데려다줄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난 딸아이의 근심으로 가득 찬 두 눈을 보게 되었다.
"딸,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너야."
"네가 주인공이니깐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널 처음 본 친구들은 너에 대해서 궁금해서 널 자꾸 바라볼 거야. 호기심 때문에 보는 것일 뿐이니깐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 있게 행동하고 재밌게 놀아."
"그리고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말할 거야. 못 알아듣는다고 주눅 들 필요 없어!"
"대신 넌 그들이 못하는 한국말을 아주 잘하잖아."
"필요한 거 있으면 당당하게 손짓 몸짓하면서 말하면 알아들을 거야."
"잘할 수 있어, 우리 딸! 엄마 아빠는 너를 믿어."
"사랑해 우리 딸"
딸아이가 마주할 낯선 환경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서 우리 가족 모두 유치원으로 향했다. 등원 첫째 날은 엄마와 아빠랑 함께 유치원 교실로 들어갔다.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들은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부끄러워 뒷걸음치거나, 우리 뒤에 숨어 앞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담임선생님이 딸아이 손을 잡고서 수업이 없는 빈교실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따스한 목소리로 아이의 마음을 달래어 주었다. 그제야 딸아이는 긴장된 마음을 풀고 조금씩 웃음 지었다.
"나 잘할 수 있어!"
이후 딸아이는 선생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가면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말을 건네었다. 자신 앞에 놓인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보여준 다섯 살짜리 딸아이의 용기를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한 감동이 올라왔다. 아내와 유치원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홀로 서기를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에 느꼈던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하며 걱정되는 마음을 조금 달래 보았다.
딸아이가 유치원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갑자기 아이는 등원하는 것을 점차 힘들어했다. 어제도, 오늘도 매일 아침 일어나면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짜증을 부렸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강도는 높아졌다. 아이에게 유치원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때론 어르고 달래서 보냈지만 하루하루 더 힘들어졌다.
외톨이가 된 스트레스를 짜증으로 풀어낸다.
한국에서 어린이집 다닐 때의 딸아이는 활달하면서 주도적인 성격으로 말도 잘하고, 리더처럼 친구들과의 놀이를 이끌었다. 그리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다 보니 감사하게도 예쁨을 많이 받으며 지냈다. 그러나 이곳에서 딸아이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친구를 사귈 수도 없고,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나 도움이 필요해도 선생님께 표현하지 못한 채 멀뚱히 혼자 남겨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와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아이에겐 힘들게 보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당연히 심적으로 아이는 많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것을 짜증으로 표출하며 화내기 일쑤였다. 이때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고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되진 않았다.
"얼마 전엔 가기 싫으면 안 갔는데 지금은 왜 또 가야 해?"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처음 한두 번은 보내지 않았다. 그랬더니 어느덧 습관처럼 등원하지 않으려고 더 자주 떼를 썼다. 만약 앞으로도 투정을 부린다고 다 받아주면서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다면 아이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딸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으려고 둘러대는 여러 가지 핑계들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딸아이 입장에서는 아빠나 엄마의 반응이 차갑고 서운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냉정하게 거절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딸아이가 겪어야 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기보다는 피하려고만 할 것이다. 아이의 힘든 마음은 진심으로 이해하지만, 몸이 아픈 걸 제외하고는 등원에 예외사항을 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 딸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한 신경전을 한동안 벌여야만 했다.
"가기 싫은 유치원을 왜 매일 가야 해~"
딸아이가 특히 짜증을 많이 냈던 어느 날 저녁 아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았다.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어서 유치원 가는 게 너무 싫은데 엄마, 아빠는 자꾸 가라고만 해서 화가 나."
딸아이가 이 상황을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걸 알기에 난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아이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딸아 너의 마음속에는 아주 투명하고 깨끗한 유리컵 하나가 들어 있어. 그 안은 너 스스로 깨끗한 물로 채워야 한단다. 깨끗한 물은 좋은 생각과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거야. 그런데 네가 가진 컵 안에 나쁜 생각으로 만들어진 검은색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깨끗했던 물은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검은색으로 변하게 된단다.
검은색 물 한 방울은 바로 네가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같이 안 좋은 생각들 때문에 만들어지는 거야. 그런데 계속해서 안 좋은 생각을 하면서 만들어진 검은색 물방울들을 네 마음속에 깨끗한 물이 담긴 유리컵에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결국 네가 가진 컵 속의 물은 검은색으로 더러워져 깨끗해질 수가 없어.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보면 정말로 가기 싫고 짜증만 나게 된단다. 그러니깐 유치원에서 재밌었던 일을 하나만 떠올려봐. 그러면서 유치원은 재밌어, 재밌어 마법 주문처럼 말해보는 거야. 그럼 너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 흐려진 너의 마음이 깨끗해지면서 유치원을 좋아하게 될 거야.
무엇이든 네가 생각하는 데로 만들어져. 알겠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딸아이는 나에게 질문 한 개를 던지고선 아주 조금 편안해진 표정으로 유리컵 이야기를 되새기며 잠에 빠져 들었다.
"진짜 내 안에는 깨끗한 물이 담긴 컵이 있는 거야?"
아침이 되면 딸아이의 머릿속에는 홀로 유치원에서 겪어야 하는 힘든 기억들로 채워졌다. 이 또한 딸아이가 맞서야 하는 현실이면서 스스로가 직면한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한동안은 모두가 힘들더라도 딸아이가 스스로 이겨 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며 힘낼 수 있도록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공감해 주기 위해 아이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날 저녁 이후 딸아이는 며칠 동안 짜증을 부리긴 했지만 전보다 안정된 표정으로 등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에서 겪었던 일들을 우리 부부에게 들려주었다. 그동안 몇몇 남자 친구들이 자신을 때리거나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서 아내와 난 너무 놀랐고, 그 누구도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채 혼자 힘들었을 지난날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졌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모르고 딸아이에게 등원해야 한다고 모질게 대했던 나의 행동을 몹시 후회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나를 때리고, 침 뱉고 괴롭혀"
"근데 난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냥 참았어"
유치원 같은 반 친구들은 대부분 스페인 학생들이다. 계중에 몇몇은 타국적의 아이들이지만 모두 유럽계통이라 비슷한 외모를 지녔다. 그러다 보니 그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건 우리 딸아이뿐이었고, 친구들의 시선을 사로 잡기에는 충분했다. 만약 딸아이가 영어나 스페인어를 잘했다면 친구를 만들고 잘 지냈을 것 같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안되니 늘 혼자 외톨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몇몇 친구들이 우리 딸아이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전부터 의사소통이 어려워 처음 적응할 때 힘들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때리고, 침을 뱉는 것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 딸아이에게서 괴롭힌 아이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나와 아내는 바로 담임 선생님 면담을 요청했다. 더불어 유치원에도 공식적으로 이 내용을 알렸다. 얼마 후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이후 면담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미국인 담임 선생님은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담임 선생님은 면담이 있기 전에 딸아이를 괴롭힌 학생의 부모와도 이미 상담을 마친 상태였다. 면담을 진행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우리의 입장을 적극 이해하고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공감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딸아이를 더 세밀히 관찰하고 보살펴 주겠다는 뜻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딸아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나, 언제든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 번역기를 사용해서 한국어로 아이와 소통하겠다고 말해주었다. 우린 담임 선생님의 약속을 간절히 믿어야만 했다. 그리고선 딸아이에게 선생님과 나누었던 대화를 설명해 주었다.
"언제든 선생님하고 이야기하고 싶으면 한국말로 해."
"선생님은 한국말 못 하잖아?"
"선생님이 핸드폰 번역기를 써서 한국말로 이야기해 주기로 약속했어."
또다시 그 아이들이 괴롭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언제든지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알려주었다. 그 뒤로 아이도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면 대다수의 부모님들을 만날 수 있다. 등원할 때와 달리 하원할 때에는 아이들은 야외 놀이공간에서 잠시 놀 수 있다. 그동안 학부모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스페인어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공간 속의 분위기와 낯선 시선들 때문에 아내와 나는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졌다. 그러나 딸아이는 이런 낯선 환경 속에서 온종일 홀로 견뎌 내며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우린 아이가 겪고 있는 상황과 그 마음을 함께 느껴보니 가슴이 찡해졌다. 어느 날 하원시간, 딸아이와 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먼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이분의 국적은 대만이고 아이 아빠는 스페인 분이다. 우린 같은 동양의 정서 때문인지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 만나면 인사하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느 때처럼 대화를 나누다 딸아이가 겪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우리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도 처음 유치원에 들어왔을 때 한 두어 달 정도 남자애들이 밀치고 괴롭히거나 친구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아 힘들어했다며 자신들의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셨다.
딸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해요.
그러면서 자신의 아이에게 우리 딸과 함께 놀아주고, 혹시 괴롭힘을 당하는 걸 보면 선생님과 본인에게 알려 달라고 시키겠다고 했다. 자신도 유럽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은 때리고 괴롭히는 것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며 딸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조언도 해주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테니 꼭 이야기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집에 도착한 이후에도 메시지로 위로와 진심 어린 조언을 함께 보내 주었고, 우린 그녀의 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힘을 낼 수 있었다.
먼저 손 내 밀어주고, 도움을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날 이후 본인의 엄마처럼 배려심이 많은 그녀의 아들은 딸아이와 함께 놀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노는지 등 자신의 엄마에게 이야기하였고 그분은 그 내용을 우리에게 다시 전달해 주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딸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더불어 딸아이도 그 친구 덕분에 점점 유치원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우리 가족을 본인의 별장으로 1박 2일 초대해 주었고, 아들의 생일에도 유일하게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축하파티를 하였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불고기, 김밥 등 한국 음식을 만들어 가서 함께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친절한 가족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유치원을 옮기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너무 아쉬웠지만 서로 좋은 인연을 만들었기에 여전히 종종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있다.
유치원에서 안 좋은 일이 발생한 이후부터 담임선생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심 많은 친구의 도움으로 딸아이는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조금씩 용기를 내었다. 이 모든 과정들이 합쳐져 다행히 딸아이는 점차 유치원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언젠가부터 아이의 입에서 유치원 가기 싫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처음엔 딸아이의 친구가 한 명이었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갔다. 어떤 때에는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서 함께 파티에 가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생일파티 때 아이들 마다 얼굴에 그림을 그려 준다. 예쁜 공주 모습을 얼굴에 그린 후 한껏 기분이 업된 채로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점차 적응하며 성장해 가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도 강하다.'
아직도 우리 부부는 여러 학부모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 있으면 불편하고 대화에 참여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러나 딸아이의 모습에 힘을 내어 조심스레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보았더니 지금은 만나면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며 짧은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대화를 스페인어로 이어나가는 건 어렵다.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는데, 막상 알아듣지 못하면 어떡하지?'
무엇 때문에 용기를 못 내고 우물쭈물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 속에는 두려움과 걱정들보다 체면 때문에 부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용기를 못 낸 나 자신이 있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딸아이처럼 우리 부부도 용기를 내어봐야겠다.
좋은 생각을 갖고, 용기를 내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