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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DI Sep 11. 2024

 Hola! 스페인 전입신고식

스페인 1년 살기 도전 중


스페인 마드리드 도착,

2024.1.30.(화) 20:30, 뼛속까지 춥다.


비행기 안 좁은 의자에 13시간가량 앉아 있으니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잠을 이루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영화도 음악도 책도 심지어 술도 소용이 없다. 어느덧 비행기의 속도가 느려지더니 창문밖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에 싸인 이곳은 스페인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예정된 도착시간 보다 1시간가량 늦어져 집주인의 부탁을 받고 우리들에게 집 열쇠를 전달해 줄 분을 찾으려고 서둘러 공항 밖으로 나가 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1년간 머무를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어둡고 차가운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 10시를 넘어섰고, 집안을 대충 둘러본 뒤 가져온 짐에서 잠옷만 꺼내 갈아입고선 씻지도 못한 채 좁은 침대에 셋이서 꼭 붙어 잠을 청했다. 집안의 공기가 차가워 오히려 좁은 게 좋았다. 


이 집은 나의 친구집이다. 처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에서 살 집을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결국 마드리드 친구의 집으로 결정했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하는 시기에 딱 맞게 세입자를 구하고 있었고 집 내부에는 웬만한 살림 도구가 모두 구비되어 있어 우리 가족이 1년 생활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스페인에서의 첫 기억, 추위와 몸살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새벽 4시쯤 잠에서 깨어 보니 배가 몹시 고프다. 잠시 후 아내와 딸아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어났고 역시나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침대 밖으로 나오니 집안인데도 쌀쌀한 탓에 겉옷을 걸치고서 주방 구석구석을 뒤져보니 조금 남아있는 쌀과 미역 그리고 소금을 찾을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의 첫끼니는 갓 지은 밥과 소금으로 끓인 미역국이다. 배가 고팠기에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따뜻한 국물이 몸속에 들어가니 비로소 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밥을 다 먹고서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니 먼지 투성이다. 청소를 시작하다 보니 어느새 입주청소를 하고 있었고, 창밖에는 해가 떠올라 집안이 환해졌는데도 우리의 짐은 아직 가방 안에 그대로이다.

[창밖을 바라보며]

스페인의 겨울 기온은 영상 5도 정도지만, 한국보다 습도가 높아 훨씬 춥게 느껴진다. 집안에 있는 라디에이터를 아무리 틀어도 실내는 따뜻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집안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으니 아늑하고 편안한 '내 집'같은 느낌이 안 든다. 이렇게 스페인에서의 둘째 날은 춥고 배고픔으로 맞이하였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다. 남의 집 청소해 주러 스페인까지 왔나?"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집안 청소에 짐정리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걸레를 몇 번이나 빨고 닦고 했는지 손아귀가 욱신거린다. 하루종일 서늘한 집안에서 늦은 밤까지 청소하고 짐정리 하고선 우리 부부는 몸살기운을 느낀 채 침대에 쓰러졌다. 그 후로도 며칠 동안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은 이어졌다.


"내가 어디에 있지? 여기가 스페인 맞지?"

"다시 한국 가고 싶어 지네."


지친 몸으로 소파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여기 온 지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불편한 시선들


우리가 지내는 동네는 마드리드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조용한 주거지역이다. 주민들 절반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고 관광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으며, 더불어 동양인도 거의 없는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조용하던 동네에 나타난 외모가 다른 동양인 셋이서 한국말로 대화하며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동네 사람들의 눈길이 자꾸 우리 가족으로 향하는 게 느껴진다.


뭐 어쩌겠는가, 이곳에선 우리가 외국인이니까!

거리를 걷다가도, 마트에서 물건을 고를 때에도 여기저기서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느껴져 불편하다. 어르신들은 눈이 잘 안 보여서 그런지 우릴 빤히 쳐다 보고, 아이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쩌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미소 짓고 눈인사를 하며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른 후 계산대 앞에 서면 점원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데, 전혀 알아들 수가 없다. 그래서 '만국공통어'인 영어로 다시 말해달라고 말하면 그들 역시 알아듣지 못한다. 그럴 땐 대충 눈치로 지례짐작 하는 수밖에..


그동안 해외 여러 나라에 여행도, 출장도 많이 다녔지만 이 정도로 쳐다보는 시선을 느껴본 건 처음이다. '관광지가 아닌 곳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충 이 상황을 흘려 넘기려고 노력해 보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영어도 안 통하고, 우리도 스페인어를 전혀 못 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꼴'에 따라 상대의 태도가 달라진다.

예전부터 해외로 나갈 때면 '꼴'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외국인을 만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꼴에 따라서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터라, 우리 가족은 평소 외출할 때면 한 번 더 옷차림에 신경을 썼고, 길을 걷다 동네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띠고 눈인사를 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경계하거나 신기하게 바라보던 동네 사람들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이웃들은 우리가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외출하기 위해 예쁘게 차려입고 길을 걸어가는 딸아이를 보면 어르신들께서 먼저 이쁘다며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주신다. 그리고 어느 날 마트에 갔더니 항상 무표정한 표정으로 웃지 않던 직원이 먼저 웃으며 안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차츰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받았던 불편한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당당해져야 한다.

예전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 '나 자신에 집중하고, 당당해져야 한다.'는 문구를 떠올리고서 마주한 현실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상황을 최대한 당당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하다 보면 이 상황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 생각한다.



답답함과 익숙해지다.


마트에서도, 식당에서도, 관공서에서도, 은행에서도 내가 가는 곳만 그런 건지 대부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곳이 드물다. 유명 관광지에서는 영어로 대화가 되지만, 그곳을 벗어나면 나처럼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전화, 그리고 초인종 소리이다. 신호가 울리는 순간 온몸에는 항상 긴장감이 돈다. 


전입신고 하려면 미리 예약하고 오세요

스페인에 거주하려면 전입신고와 외국인등록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경험했거나 하게 될 사람들이 있다면 이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을 것이다.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관공서, 병원, 은행 등 어딜 가더라도 예약을 '꼭' 하고서 방문을 해야 한다. 특히 관공서의 업무를 보기 위해서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먼저 해야 하는데, 막상 어렵게 접속해 보면 '예약 가능한 날짜와 시간이 없다'는 메시지만 보게 될 경우가 많으며, 예약을 해도 빠른 일정을 잡기는 어렵다. 그리고 예약을 했다면 절차에 필요한 수수료는 사전에 직접 은행에 납부한 뒤 영수증을 지참하고 관공서를 방문해야 한다. 심지어 은행에서도 정해진 요일과 한정된 시간에만 납부업무를 진행하기에 이것마저도 쉽지가 않다. 


드디어 예약한 날짜가 도래되어 준비한 서류들을 모두 챙겨서 관공서에 도착해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며 접수하는 곳을 바라보면 자기들끼리 웃으며 이야기하는데, 내가 보기엔 잡담하며 노는 것처럼 보인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예약시간은 지났는데도 그들은 아량곳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현지 사람들 역시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가만히 자기의 순서를 기다린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가 보다 생각한다. 기다리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도 여유가 있어 보인달까. 어쩌다 이 이야기를 이탈리아 친구에게 들려주니 그래도 스페인이 이탈리아보다는 훨씬 업무처리 속도가 빠른 편이라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니 모든 건 비교하기 나름인가 보다.



스페인어! 배움의 고통.


스페인에 도착하고서 일주일이 지난 뒤 난 어학원 첫 수업을 듣기 위해 아침에 홀로 집을 나섰다. 전철을 타고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거대한 스페인 국기가 겨울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아침이라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오히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학원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레티로공원과 프라도 미술관이 있고 걷는 동안 잔잔한 음악을 듣고 있으니 기분이 상쾌하고 행복해진다. 그리고 고개를 조금만 위로 올려다보면 짙푸른 색의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주는 여유 또한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한국은 오후 5시쯤. 평소 같았으면 회사에서 오후 회의를 마치고 힘없이 자리에 앉아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시간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이곳 스페인에서 보내는 여유 있는 시간이 정말 좋다.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



스페인어 첫 수업,
'영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걷다 보니 어느새 학원에 도착했고, 리셉션에서 수업과정과 필요한 사항을 안내받고 강의실에 들어서니 아무도 없다. 잠시 후 몇몇의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러 들어온다. 첫눈에 봐도 다양한 국적에 젊은 친구들이다. 수업 시작 전 같은 공간 속 낯선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생겨 먼저 영어로 나를 소개하고선 다른 학생들에게 소개를 부탁했다. 학생들 대부분 다른 국가, 다른 직업 그리고 이곳에 온 목적이 다양했다. 잠시 후 스페인어 선생님이 들어왔다.


스페인어는 한국에서 공부해 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매번 시작만 하다가 그만두었기에 알파벳 읽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 내가 듣는 수업은 가장 기초 Level 1.이다. 당연히 수업을 시작할 때 알파벳부터 가르쳐 줄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엄청난 속도로 스페인어를 쏟아내고 있는 선생님을 보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 수가 없다. 멍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다시 영어로 설명을 해주신다. 다행히 나와 영어를 할 수 있는 학생들은 이해를 하고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점점 고립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과 시선은 핸드폰으로 번역하느라 바빠졌다.


3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나니 충격의 도가니 속에 빠지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할까 고민해 보니 답은 스스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복습한 후 다음날 자신감을 가지고 학원으로 향했지만 수업 시작과 함께 나의 자신감은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정신없이 '구글 번역기'로 문장을 찾아내고 수업 따라가려고 고군분투를 벌인다. 그러다 수업 중엔 학생들끼리 서로 대화를 하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대화의 주제를 이해 못 해서 같이하는 친구에게 미안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는 수업시간 동안 불편한 마음으로 있으니 자존감이 점점 떨어진다.


"난 수업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된다."

"나도 그래. 전혀 못 알아듣겠다."

"선생님은 왜 이렇게 빨리 말하는 거지, 오 마이갓.."


중간 쉬는 시간에 나처럼 죽어가는 표정을 하고 앉아 있는 이들과 영어로 이야기하며 하소연을 쏟아내고 나면 그제야 서로 위로를 받았으며, 나만 외톨이가 아니란 걸 알고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영어도 못하고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가 없는 학생들은 하루종일 혼자서 이 상황과 맞서야 했다. 수업이 끝나면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도, 나도, 그리고 우리들의 핸드폰 배터리도 모두 다 방전이 된다. 스페인어를 배운다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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