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DI Sep 07. 2024

마지막 출근 그리고 '스페인 1년'

스페인 1년 살기 도전 중

D-3 years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문득 일상 속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나만의 공식으로 계산해 보았다.

표준 하루 24시간  = 회사 9시간 + 숙면 8시간 + 가사 7시간
  * 회사 9시간 = 근무 8시간 + 점심 1시간 
  * 가사 7시간 = 출퇴근 준비 2시간, *여유시간 5시간(먹고, 놀고 즐기고)

딸아이는 어린이집에서 그리고 우리 부부는 같은 회사지만 다른 부서에서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서로 떨어져 지낸다. 그리고 잠자는 무의식의 시간 3분의 1을 빼고 나면 우리 가족이 함께 먹고, 놀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8시간이 채 안 된다. 거기서도 출퇴근 준비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하루 5시간이나 될까?

하루동안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20퍼센트도 안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하루 중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겨우 5분의 1 뿐이라는 걸 알았는가?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와 어린 딸아이가 커가는 속도는 너무 다르다.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더라도 공백이 느껴질 만큼 딸아이가 커가는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 

지나간 가을 어느 날, 붉게 물든 단풍잎을 따려고 뻗는 딸아이의 작은 손이 마치 단풍잎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훨씬 커져버린 손을 보고 있으면 언제 이렇게 컸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중한 딸아이와 매일 함께 하면서 그동안 벌어졌던 시간의 공백을 채우고, 부족했던 우리 가족의 추억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그 후  아내와 이야기 나누면서 1년간 휴식기간을 갖기로 약속하였다. 1년 동안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해외에서 시간을 보내면 아이에게도 더 넓은 세상을 경험시켜 줄 수 있고, 우리 또한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미래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해외 1년 살기" 꿈을 가져 보았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한다. 필요한 돈을 얼마나 빨리 마련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그래야 나에겐 언제든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날카로운 용기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용기의 칼을 뽑는 그날


세르반테스 작품 속 돈키호테는 풍차를 향해 칼을 뽑고 달려간다. 미치고, 어이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매번 칼만 허리에 차고서 뽑지 못하는 것보다 허공에라도 휘두를 수 있는 용기라도 가져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처지여서 공감이 갔다. 누군가는 우리 가족 모두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여길 거라고 생각한다




During 3 Years



도전의 용기는 어디서 올까


'해외 1년 살기' 꿈을 가졌으니 언제라도 운명의 시간이 왔을 땐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과감히 용기 내어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필요한 준비할 것들이 아주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1년 동안 사용할 자금 즉, 돈을 모아야 한다. 나머지 준비들은 그 이후에 해도 될 거라 생각하고 우선 돈 모으기에 집중했다.


용기 갖고서 기회와 마주 할 것이다.

돈과 관련해서는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재무 상담을 통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효율적인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앞으로 3년간 매월 꾸준히 저축하고 목표했던 금액을 다 모으게 된다면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던 용기의 칼을 내 손안에 거머쥘 수 있다. 그리고 운명의 기회가 나에게 찾아왔을 때 멋지게 휘둘러 볼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우리 부부는 소비를 줄이고자 수시로 찾아오는 지출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로 했다


"비싼 음료 대신 그냥 아메리카노 마시자."

"저녁 외식 말고 집에서 밥 해서 먹자."

"옷장에 널린 게 옷이잖아. 정말 필요한 거야?"


처음에는 평소 하던 지출을 한 번에 줄이고자 하니 온갖 불편한 마음이 매 순간 찾아왔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적응이 된다. 그래서 커피가 생각날 때면 가장 저렴한 곳에서 아메리카노를 외치고, 집에서 음식을 자주 하다 보니 요리실력이 점차 향상되어 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사는 동네는 시골이라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곳조차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불편함에 익숙해지니 더 이상 힘들지 않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삶의 급격한 변화와 갈망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의 삶에 많은 변화들이 찾아왔고, 마주하게 된 현실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해외 1년 살기' 꿈을 잊고 지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만 가고, 누적되는 회사 업무 스트레스로 쉬고 싶은 마음은 점차 강해졌다. 처음에는 딸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목적이 컸지만 지금은 우리 부부가 잠시 회사를 떠나 쉬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졌다. 


꿈을 이루기 위한 또 다른 이유가 생겼고, 더욱 간절해졌다.


꿈을 가진 후 1년의 시간이 지나갈 때쯤 우리 부부는 회사에서 동시에 승격을 하게 되었다. 승진의 기쁨도 잠시 나는 타사업소로 인사발령이나 이동하게 되었다. 그동안 어린이집이 직장 내에 있어 언제나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하던 출퇴근길이 달라졌지만 다행히 주말부부를 해야 할 만큼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변화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출근 시간은 빨라졌고, 퇴근은 더욱 늦어져 딸아이 등하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곧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혼자 남겨지는 일이 예전보다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승진으로 높아진 직책과 새로 맡게 된 업무는 우리 부부에게 예전보다 더 많은 책임감과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고, 그것도 부족했는지 회사는 우리에게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해 왔다. 우리는 마주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였고, 그러다 보니 때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가만히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니 결론은 결국 한 가지였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까?"

"남과 비교해서 더 잘하려고 일에 몰두하다 보니 우린 회사에 매몰되고, 나의 에너지는 점점 고갈되는 듯 해."

"내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상대를 위해 배려할 여유도 없어."

"계속 이곳에 매몰되다 보니 내가 볼 수 있는 건 회사 속 작은 세상뿐이구나."

"우리에겐 잠시 쉼이 필요해."



딸아이가 점점 스스로 하는 게 많아진다.


회사에 얽매이다 보니 그만큼 사랑하는 딸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줄어 갔다. 그동안 몸집이 작았던 딸아이는 어느새 키가 훌쩍 자라나 어린이집과 놀이터를 휘젓고 다녔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졌으며, 자신의 감정을 더욱 조리 있게 잘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만큼 아빠의 잔소리에 반항하면서 "아빠 싫어."라는 말을 더 자주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슴에 콕콕 꽂히면 슬픈 마음이 든다. 


"늙어가는 몸뚱이야 제발 힘 좀 내주라."


매일 내가 가진 에너지의 대부분을 회사를 위해 쏟아내고서 집으로 돌아오면 딸아이와 놀아줄 힘은 없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쏟아낸다. 그리곤 빨리 잠재우려고만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씁쓸해진다. 함께 웃고 떠들며 뛰어다니면 즐겁고 행복한데 자꾸 누워 쉬고 싶기만 하다.



시작종이 울렸다.


"해외 1년 살기"를 위해 저축을 시작한 지 거의 3년이 다되어가던 어느 날, 통장에 얼마나 모였을까 궁금해 확인해 보니 어느새 목표했던 금액이 들어 있었다. 즉, 이제 언제든 용기만 낸다면 그동안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삶에 잠시 쉼을 선물로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우연히 솟아난 용기,
앞을 막고 있던 두려움의 장벽을 한 칼에 베었다.


무더운 8월 어느 일요일 오전, 운명처럼 내 손에는 스페인행 '편도' 항공권이 주어졌다. 그리고 작은 휴대폰 화면 속 항공권에는 우리 가족을 데려다줄 장소, 떠나는 날짜 그리고 시간이 찍혀 있다. 

"ICN(서울/인천) -  MAD(마드리드)"
"2024. 1. 30.(화) 12:45 - 2024. 1. 30.(화) 19:30

지금부터 출발까지 5개월 남았다. 어떻게 보면 긴듯하면서도 짧은 시간이다. 떠날 날이 정해진 후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어깨의 짐들을 하나둘씩 내려놓게 되었다. 


"왜냐면, 난 떠날 사람이니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스페인 1년 살기'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비 사항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니 "비자준비, 살 집, 어학원, 딸아이 유치원, 차량, 지출계획, 짐 싸기" 등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그중에 다시 우선순위를 정해보니 당연 1년간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받아야 한다. 


보통은 비자를 신청하고 항공권을 예약하는데, 우린 그 반대로 항공권을 예약하고서 비자를 준비했기에 리스크는 컸다. 이럴 땐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스페인 전문 유학원을 검색해 보니 2곳 정도가 눈에 들어왔고, 비자 발급이 거부된 적인 없다는 후기를 보고서 망설임 없이 그곳에 연락하였다. 그리고 알려주는 것들을 하나둘씩 준비하다 보니 우리 가족 모두 빠르게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비자를 준비하면서 담당자분과 이야기를 했던 것 중에 기억나는 게 있다.


"보통은 비자를 먼저 받고서 항공권을 예약하는데, 순서가 바뀌었네요." 


그렇다. "만약 항공권을 먼저 예약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다시 한번 항공권을 덜컥 예약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갑자기 솟아난 용기에 고민 없이 덜컥 선택한 우리 가족의 무모한 그 결정이야말로 알지 못하는 어떤 운명의 힘에 이끌렸던 것 같다.


비자 준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서류 및 어학원 선택 등은 등은 유학원에 맡겨두고서 우리 부부는 현지에서 머무를 수 있는 집, 아이가 다닐 유치원, 우리가 타고 다닐 차량, 그곳 생활에 필요한 소비계획, 스페인으로 가져갈 물건 리스트 정리 등 하나씩 순차적으로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5개월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9월부터 준비한 비자는 12월 초에 순조롭게 받을 수 있었다.



잠시 1년간 휴직 좀 할게요.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 부부는 약 13년 동안 쉬지 않고 다니던 회사에 휴직한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래서 각자 소속된 부서에 내년 1월부터 1년간 휴직할 계획을 미리 알렸다. 우리 회사는 12월 말부터 인사이동이 시작되므로 지금 담당하고 있는 업무의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고 후임자를 구하려면 지금 말해야 한다.


"저 내년 1월 초부터 1년간 휴직 좀 하려고 합니다."

"갑자기 왜 휴직하려고?"

"더 늦기 전에 딸아이와 시간을 많이 가져보려고요. 그래서 가족과 함께 스페인 1년 살기 하러 갑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제각각이었는데 부러워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잘한 결정이라고 응원해 주는 분들도 있고, 때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이유는 충분히 공감 가는 것이었다.


"지금 한창 열심히 일해서 좋은 자리로 이동하고, 승격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스페인 1년 살기' 꿈이 실행되기 전까지는 아내도 나도 '지금 이렇게 인정받고 일 잘하고 있는데 지금 떠나는 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꿈을 가졌던 이유인 딸아이를 떠올려보니 아쉬움은 금세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헤어짐


시간은 흘러 어느덧 스페인으로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영원히 떠나는 것도 아닌데 그동안 친하게 지낸 이들에게 잘 다녀와서 다시 연락하겠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고, 우리 가족의 도전에 많은 분들이 응원을 받으며 기분 좋게 헤어졌다. 


"다시 만날 걸 알면서도, 헤어짐은 언제나 가슴속에는 아쉬움으로 차오른다."


그리고 우리 딸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친구들과도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마지막 등원을 하고 하원시간이 되어 우리 부부가 딸아이를 데리러 갔을 땐 아이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땐 모든 아이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딸아이를 안아주고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던 건 왜일까.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보니 딸아이 가방 속에는 친구들과 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손편지와 그림들 그리고 함께 즐거웠던 시간을 담고 있는 사진을 모아 작은 책을 만든 것이 들어있었다. 그 책을 펼쳐보니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얼마나 행복하고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고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D - Day. 

스페인으로 출발


기대와 걱정을 품고서


공항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 내 마음속은 기대와 걱정으로 가득 차오르면서 그동안 스페인 살기 준비과정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공항으로 마중 나와준 어머니와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왜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걸까. 

새로운 곳, 새로운 삶, 모든 게 낯선 그곳에서의 삶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리고 앞으로 1년 무엇을 할까 떠오르는 생각을 비행기 안에서 글로 적어본다. 

 






이전 02화 운명처럼 나타난 스페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