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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DI Sep 04. 2024

운명처럼 나타난 스페인

스페인 1년 살기 도전 중


꿈을 나누다 결혼까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당시 홀로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후 난 스페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동기가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여직원 한번 만나보라고 한다. 흔쾌히 승낙하고 나서 첫 만남의 장소를 대학로 근처 어느 좁은 골목에 위치한 자그마한 스페인 음식점으로 정한 뒤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점심 약속이었기에 우린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예약한 식당으로 가자고 제안하니 돌아온 대답은 예상을 깨는 것이었다.


"근처 스페인 음식점 예약했어요, 그쪽으로 갈까요?"

"아~ 네, 저 근데 사실 밥 먹고 나왔어요." 


당연히 점심을 함께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대답을 듣고 나서 '나 까인 건가, 어이가 없네. 먹기 싫으면 말던가' 속으로 생각했다. 예약한 식당에 도착해 좋아하는 빠에야와 샹그리아를 주문하고서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사실 첫 만남이고, 서로의 공통점은 회사이니깐 당연히 회사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우린 회사가 아닌 다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어쩌다 서로의 꿈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스페인 관련 책 쓰기
스페인어 배우기 그리고 사진 찍기


"저는 스페인 여행 후 스페인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스페인에 관한 책을 써 보고려 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어도 배워 보고, 멋진 사진도 찍어 보고 싶어요."


나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공감하는 표정을 보게 되었고, 첫인상에서 느껴지지 않던 관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꿈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Hidi
작곡하기

"저는 음악을 좋아해서 작곡을 해보려고 해요."


난 평생을 살면서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었는데, 심지어 작곡을 해보고 싶다는 대답을 듣고서부턴 그녀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이후 몇 번 더 만남을 이어가다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데이트를 즐기던 어느 날 우린 서점에 들렀고 난 이제부터 스페인어 공부를 해보겠다며, 그녀가 보는 앞에서 '초급 스페인어 배우기' 책 한 권 멋지게 집어 들었다. 또 어느 날엔 그동안 내가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한동안 우리 둘만의 즐거운 연애 시간을 가졌다.


결혼은 운명처럼 찾아온 사람과 사랑에 빠져하는 줄말 알았는데, 난 어쩌다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과 서로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에게 이끌렸고, 만남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덧 이 사람과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혼을 약속한 뒤 어느 날 그녀가 날 위해 해주고 싶은 게 있다고 입을 열었다.


"결혼하기 전에 오빠를 위한 멋진 노래 한곡 작곡해서 들려줄게"


그 말을 듣고서 가슴속에는 설렘으로 가득 차올라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내심 기대를 많이 했지만, 결혼 전 아내의 약속은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은 채 미완결로 남아있다. 그리고 결혼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주말 아침, 집안 청소를 하던 아내로부터 잔소리 겸 핀잔 섞인 목소리가 귓속에 날카로운 송곳처럼 꽂힌다.


"책장도 좁은데 보지도 않는 스페인어책 좀 버리면 안 돼?"

"그리고 쓰지도 않는 사진기도 좀 정리해"


그 말을 듣고선 나도 모르게 자동반사적으로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 공격에 나섰다.


 "이제 스페인어 공부하고, 사진 찍고 다닐 거니깐 그냥 놔둬."


아내의 잔소리에 문득 오래된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책을 써보겠다고, 사진도 찍고 스페인어 공부도 하겠다고 말했는데, 아무것도 실천한 게 없어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도 나와 마찬가지라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역시 꿈은 영원히 가슴속에 묻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외 1년 살기" 꿈꾸다.


결혼 초반에는 그동안 서로 숨겨두었던 발톱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서로 여행 다니며 즐거운 신혼생활을 5년이나 누렸으니 나름 행복했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던 어느 날 아내로부터 임신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평소처럼 산부인과에 들러 정기검진을 마친 후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듣게 되었다. 


"뱃속에 있는 태아의 심장에서 구멍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선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며, 의사 소견서를 우리 부부에게 건넸다. 우리는 급히 서울로 올라와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고,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태아가 자라면서 아주 가끔 구멍이 막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으면 심장의 구멍을 막는 수술을 아이가 태어난 후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에 우리 부부는 셀 수 없이 많은 날을 눈물로 보내야만 했고, 유일할게 할 수 있는 거라곤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가 괜찮아지길 바라는 기도뿐이었다.


"차라리 저의 심장에 구멍을 내고, 아이 심장에 난 구멍을 막아주세요"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는 예쁜 딸이었고, 심장에 난 구멍은 여전히 메워지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우리 부부에게 앞으로의 치료 방향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앞으로 6개월 관찰기간을 가져보고, 그래도 구멍이 막히지 않으면 심장시술 또는 개복수술을 해야 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조그만 딸아이가 무서운 수술대에 오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고 대신 내가 그 수술을 받게 해달라고 몇 번을 빌었는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수술 방향을 결정할 심장정밀검사를 하는 날이 다가왔고, 초조한 마음으로 딸아이의 심장 초음파 검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꽤 오랜 시간 동안 아이 심장을 관찰하고 있었고, 그때 든 불안과 초조, 긴장은 이미 온몸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다 의사 선생님이 몸을 돌려 말씀하시길


"내가 구멍 막아주려고 했는데 안 그래도 되겠네. 자연적으로 막혔어요 구멍이."


구멍이 메워졌다는 행운 같은 의사의 말에 아내와 부둥켜안고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태아 때부터 큰 고비를 겪었기에 딸아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매일 정신없이 살다 보니 가끔 아내와 옛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때의 아픈 기억은 잊고 지낸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많이 사랑하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돌보고 있기에 육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많이 아플 때를 제외하고선 부모님이든 주변 도움을 받지 않았기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린 딸아이는 우리 부부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항상 어린이집에 보내져야만 했다. 돌을 갓 넘긴 어린 딸아이를 앉고서 등원시키면 거의 1등, 하원할 땐 꼴찌로 그러다 어쩌다 우리 부부가 둘 다 늦게 퇴근하여 부랴부랴 어린이집으로 뛰어가면 홀로 창문에 몸을 기댄 채 엄마, 아빠를 기다리다 바라던 얼굴을 발견하고서 반갑게 웃으며, 손 흔들어 주는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애처로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아이를 생각하면 칼퇴 후 어린이집으로 곧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은 늘 PC 종료 버튼 위에 매번 대기하고 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들 바쁘게 일을 하고 있으니 눈치가 보인다. 이때 내 마음속엔 폭풍과 같은 갈등이 일어나지만 결국 마우스는 종료 버튼에서 다시 멀어진다. 그리곤 껐던 워드 화면을 다시 열고서 일하는 척했지만, 그동안 마음속에서는 조금만 더 있다가 갈까 말까 하는 고민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런 행동은 매일매일 반복만 될 뿐 멈춰지지 않는다.


놀랄만한 속도로 빠르게 성장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뒤로한 채 이런 생활은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고,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홀로 어린이집에 남겨진 채 창밖만 바라보면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딸아이의 모습 또한 반복될 거라 생각하니 내 마음속에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자꾸만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차 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더 많이 크기 전에 우리 다 같이 1년만 쉬는 건 어떨까?"

"좋아. 그럼 쉬는 1년 동안 뭐 할까?"

"우리 예전에 각자 어학연수 했던 캐나다에 가보면 어떨까? 거기 좋았잖아."

"너무 좋다. 그래 캐나다든, 미국이든, 해외 어디든 가서 1년 살아보자"

"딸아이에게도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잖아."

"지금 당장 돈이 없으니 어떻게 하지?"





꿈을 위한 준비


우리는 평소 가진 돈이 많지 않다 보니 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재무 상담을 받았다. 보통 재무 상담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히려 나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거라 생각한다. 이유는 지출 관리를 할 수 있어 낭비하는 돈을 줄일 수 있고, 미래에 목돈이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 효과적인 저축방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리에게 '해외 1년 살기'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는 2021년 1월 재무 상담을 통해 우리 가족의 꿈을 위한 자금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최소 3년간 매월 200만 원씩

기간은 최소 3년.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고 매달 200만 원씩 저축하기로 결심했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마시던 커피와 외식을 줄였고, 쇼핑은 1년에 한두 번으로 제한하며 최대한 지출을 줄여나갔다. 저축 초반에는 그동안 익숙해져 있던 소비습관을 바꾸려고 하니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점차 익숙해졌고, 그만큼 통장에 잔고는 늘어갔다.

우리 가족은 민달팽이다.
등에 짊어져야 할 집이 없다.

누군가는 어떻게 매달 그 큰 금액을 저축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큰 대출을 끼고서 구매한 집이 없었고, 따라서 대출 금액이 많지 않았기에 우리 부부가 받는 월급에서 지출을 최대한 줄인다면 저축하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은 3년이 지나갔고, 우리 부부는 목표로 정했던 금액을 모을 수 있었다. 


돈이 있으니 용기가 생긴다. 돈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다. 꿈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용기와 도전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돈이 있어야 한다. 더욱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하다. 꿈을 위해 필요한 자금은 모았으니, 이제부터 "해외 1년 살기" 꿈을 위한 용기를 내면 된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까? 캐나다, 미국, 스페인? 아직은 미정이다. 






운명처럼 나타난 곳, 스페인


2023년 뜨거운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8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한 주 동안 쌓였던 먼지들을 털어내고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세상 속 이곳저곳 들락거리며 쉬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항공권을 검색하다가 스페인행 항공권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고, 옆에 앉아 있던 아내에게 항공권 예매 창을 보여주며 말문을 때어본다.


"지금 스페인 항공권을 저렴하게 예매할 수 있는데, 우리 그냥 스페인으로 1년 살기 하러 갈까?"


운을 띄어보았다.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아내는 좋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우린 고민할 틈도 없이 돌아오지 못하는 스페인행 편도 항공권을 예매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해외 1년 살기" 장소는 스페인이 되었다. 


예언된 것인가?
운명처럼 눈앞에 나타났고, 거부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운명처럼 나타나 우리 가족의 '스페인 1년 살기' 꿈의 D-day를 알리는 시계는 그렇게 켜지게 되었다. 간혹 지인들로부터 왜 스페인으로 결정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당황하곤 했다. 왜냐면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운명처럼 그냥 그때 우리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스페인 1년 살기를 결정하고 난 뒤 난 아내에게 우리의 미래는 이미 예견된 운명인 거 같다고 운을 떼었고, 그때 나눈 이야기가 떠오른다.


"스페인으로 결정하게 된 건 예견된 운명 같지 않아?"

"그런 거 같아!"

"우리가 처음 만난 곳 기억나? 그 스페인 음식점 말이야."

"살짝 신비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다시 찾아가 보니 없어져서 찾을 수 없었잖아"


그렇다. 스페인을 결정하게 된 건 우리의 운명이 맞는 거 같다. 아내와 첫 만남의 장소는 대학로 어느 골목에 위치한 스페인 음식점이다. 그곳의 기억은 작고 아담한 규모에 작은 창문으로 햇살은 비쳤지만, 테이블 위에 켜진 작은 조명등이 필요할 정도로 어두웠다. 그리고 손님은 아내와 나 단둘뿐, 테이블에 앉으니 식당은 꽉 찬 분위기로 더 이상 손님이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린 스페인에서 꿈이 이뤄지는 신비함을 느낀다.

지금 기억을 되돌려보니 그곳의 느낌은 마치 예전에 읽었던 책 "나미야 잡화점의 기억"과 같이 신비한 일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였다. 그 장소에서 신비한 묘약처럼 붉고 달콤한 샹그리아 한잔을 마시며, 서로의 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좋아졌다. 나의 꿈은 '스페인 관련 책 쓰고', '스페인어 공부', '사진 찍는 꿈', 그리고 아내의 꿈은 '작곡'하는 것이었다. 우린 서로 다른 꿈에 이끌려 결혼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10년 후 우린 지금 스페인에서 서로의 꿈이 이뤄지는 신비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신비한 일은 우리 부부에게만 일어나지 않았다. 곁에서 모든 걸 지켜보던 딸아이에게도 이어졌고, 5살 어린아이도 '화가'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고 조금씩 변화되는 자신을 모습을 발견하며 꿈이 이뤄지는 신비함 경험을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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