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1년 살기 도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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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회사에서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가진 대부분의 에너지는 소진된 상태였다. 퇴근 이후에도 회사로부터 오는 전화 벨소리와 메신저의 알람은 계속되었다. 대부분은 다음날 출근해서 처리하면 되는 것들인데, 난 계속 일에 사로잡혀 회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스트레스만 쌓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스페인 1년 살기를 시작했고 그날 이후부터 삶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가장 큰 변화는 가족들 모두가 진심으로 원하고 이루고 싶어 하는 꿈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 있을 때는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일과 나의 일상을 완전히 분리시키지 못했다.'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그저 먹고 쉬면서 흘려보내기만 했다.'
지금까지 난 일하지 않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쉬면서 보내는 걸 여유로 생각하면서 즐겼다. 쉬는 날 대부분은 한 주 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기 위해 TV를 보거나 잠을 자는 게 다였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여유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유'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럼 진정한 여유를 즐겼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뜻하는지 고민해 보았다.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기는 여유
삶의 진정한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다면 일과 나의 삶을 완벽히 분리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주위를 의식하지 않은 채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인생을 즐기게 될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이곳에서 진정한 여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하루를 바쁘고 지치게 살다 보니 정령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점점 나의 내면에서 외치고 있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차츰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여유가 가져다주는 행복의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짧은 시간이라도 내가 진정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긴다면 비로소 진정한 여유가 가져다주는 행복을 알게 될 것이다.'
스페인에 도착한 후 이곳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정신없이 지냈다. 처음엔 나를 바라보는 낯선 시선들 때문에 막상 하고 싶은 게 생겨도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나,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살 때마다 이곳 사람들의 낯선 시선을 받았고, 그것을 의식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눅 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어느 날 생각을 바꿔보았다.
'내가 왜 그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나?'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은 비용을 지불하는 건데 왜 주눅 들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들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했을 때, 그들은 나에게 보다 많은 관심과 신경을 가져주었다.
'매사에 당당하게 행동해야 한다.'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눈치 볼 필요 없다.'
예전 오래된 친구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 그는 나에게 멋은 외모가 아니라 내면에서 풍겨져 나오기 때문에 늘 자신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무대 위에서 좋은 옷을 입고 있는 주인공이라도 마음과 행동이 움츠려 들어 있으면 관객들은 그를 조연으로 생각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누더기 옷을 걸쳤더라도 태도나 행동이 당당하다면 비록 조연이라도 사람들에게는 주인공으로 기억될 수 있다.
당당해져야만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당당하게 생각하면서 행동하다 보니 어느덧 낯선 시선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 결과로 인해 내 삶을 점차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게 되었으며, 나의 생각이나 행동은 이전보다 더 나의 내면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런 노력들을 반복하다 보니 나의 다이어리에는 어느새 하고 싶은 꿈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하나씩 그것을 이뤄나가 보니 성취감을 느끼며 나의 자존감 역시 높아졌다. 그 결과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어학원에 함께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들 중 일부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을 때, 지금처럼 여유를 즐기면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였다.
'가정, 나, 직장생활. 어떻게 하면 이 3박자를 조화롭게 연주할 수 있을까?'
평소 '일. 가정의 양립'이라는 용어는 무수히 들어봤다. 그러나 나 자신을 제외한 채로 일과 가정만 바라보고 살아가면 과연 재미가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일상을 위해서는 '가정, 나, 일' 3박자를 조화롭게 연주해야만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다. 연주자인 내가 나의 일상을 위한 곡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하나의 음이 끝나고 시작할 때마다 맺고 끊어주는 걸 잘해야 한다. 답은 비교적 어렵지 않지만 막상 직접 해보면 일상을 조화롭게 연주하는 건 건 쉽지가 않다. 지속적으로 노력하면서 동시에 욕심을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처음 피아노를 배우면서 바로 베토벤의 곡을 치는 건 불가능하다. 피아노 건반을 하나씩 눌러보며 '곰 세 마리' 같은 쉬운 곡을 먼저 하나씩 연습하다 보면 점차 실력이 향상되어 나중엔 내가 그토록 원했던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서두르지 말고,
시작과 종료를 잘 맺고 끊어야 한다.
하루 일상에서 '가정, 나, 일' 3가지의 시작과 종료시점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물리적인 행동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 생각도 함께 멈추어야 한다. 쉬운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변수도 많이 생기기 때문에 자신만의 대응 방법을 만들고 연습해야 한다. 참고로 스페인에 있는 동안 일을 할 수 없으니 스페인어 어학원과 공부하는 것을 일로 생각하며 연습했다.
난 절대시간을 기준으로 3가지의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시간을 기준으로 하게 되면 하던 일을 끝맺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비록 미완성되었더라도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다른 것을 한다. 그렇게 3가지를 마치고 난 후 여유시간이 생기면 미완료된 것을 보완한다. 처음에는 대부분 잘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해놓은 시간 안에 마무리하려다 보니 차츰 예전보다 훨씬 더 집중하게 되고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버리면서 효율성은 높아졌다. 그리고 조금씩 일상의 화음이 맞아지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무엇보다 조화로운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습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급해하거나, 욕심부리지 말아야 한다. 많을 것을 한꺼번에 끝내려고 한다면 연주가 끝나기 전에 내가 먼저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하나씩 그리고 천천히 나의 능력 안에서 연습해야 한다. 과욕은 오히려 나를 망가뜨리게 된다.
처음 스페인에 올 때에만 해도 솔직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근심과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모든 걸 내려두고 이곳에 와보니 예전에 가졌던 불안감은 사라졌다. 대신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갖게 된다. 요즘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각자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다. 글쓰기, 작곡하기, 그림 그리기 이 3가지가 우리 가족들 한 명, 한 명의 꿈이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 각자가 자신의 꿈을 향해 즐기면서 노력하는 중이다.
작곡하는 엄마가 만들어준 행복
아내는 학창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밴드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음악 공부를 했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부터 꿈이었던 작곡을 이곳에서 시작하고 있다. 아내는 딸아이를 위한 곡을 하나씩 만들어고 있다. 더불어 또 다른 목표가 생겼는데, 바로 자신의 곡이 완성되면 동요대회에 출품하는 것이다.
집에서나 여행을 가서나 어디서든 음악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 곡을 쓰고, 가사를 적는다. 가끔은 아내가 직접 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해 주면 아이와 난 멜로디를 듣고서 어울리는 가사를 함께 떠올려본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을 가족이 함께 따라 부르다 보면 즐겁다. 집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 가끔 딸아이가 혼자 놀면서 엄마가 만든 음악을 흥얼거리는 걸 듣고 있으면 신기하기도 하다. 아내 역시 자신이 만든 곡을 딸아이가 따라 부르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어느새 아내도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림 그리는 딸의 불타오르는 열정
'부모는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거울'
요즘 들어서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어느 날 딸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모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도 화가가 될 거라며 엄마, 아빠 앞에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요즘은 유치원에서도, 집에서도 매일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놀러 갈 때나, 심지어 마트에 갈 때에도 종이와 색연필을 필수로 가지고 다닌다. 틈만 나면 쪼그려 앉아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려낸다. 매일 여러 가지를 그리다 보니 이제는 멋진 그림들로 아이의 스케치북이 가득 채워졌다.
'딸아이의 열정이 가장 뜨겁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모가 된 입장에서 가끔 딸아이가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이제는 아이가 우리 부부의 거울이 되었다. 부모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자주 보여 줘야 하는데, 오히려 아이가 우리에게 더 많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배우고, 느끼는 것에는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나? 아내와 나도 아이를 보면서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글 쓰는 아빠,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
나는 스페인 1년 살기를 준비하면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적었던 블로그 글을 보면 어쩜 이렇게 못 적었을까 생각이 든다. 글밥도 적고, 앞뒤는 맞지 않고 보기가 부끄럽다. 글을 내려버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나의 성장과정이 담겨 있으니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한다. 지금도 글을 적는 건 어렵다. 그러나 글을 적다가 보면 내가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거나, 반성도 하게 된다. 또한 꿈에 대한 마음이 흐려질 때면 미래에 대한 설렘을 가졌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다. 더불어 누군가 나의 글을 읽으면서 좋아해 주고 함께 희망을 느낀다면 그보다 행복할 순 없을 거 같다.
아내와 난 스페인에서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말도 잘 안 통하지만 그들의 따뜻한 마음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보니 그동안 잘 느끼지 못했던 타인을 위하는 이타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행복의 가치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이제는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작게나마 힘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여러 나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그림이나 문학, 음악, 영화 등 예술에 관련된 지식을 많이 갖고 있었다. 간혹 예술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난 아는 것이 없어 참여하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듣기만 했다. 대화 내용에는 어떤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들이 나온다. 그래서 호기심에 한 두 명씩 찾아봤다. 그렇게 하나의 작품에 대해 설명된 자료를 읽어보니 각 그림이 가진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벨라스퀘스, 고야, 히에로니무스 보쉬 등 각 화가들의 대표작을 한 번쯤은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Garden of Earthly Delights(1490-1500)
네덜란드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는 인간은 사회적 계층이나 출신지에 관계없이 즐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림은 왼쪽부터 천국 - 인간 세계 - 지옥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여러 가지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사진도 찍어 보고 싶다. 서핑도 배워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창작 활동으로 'N잡러'가 되어 보고 싶다. 10년 뒤 또 다른 곳에서 1년 살기를 해보고 싶다. 딸아이를 위한 그림 전시회를 열어주고 싶다. 등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여유를 즐기며 사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느껴지는 행복의 소중함을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