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만난 허난설헌

세상의 허난설헌들

by 샨띠정

신사임당이 살면서 이율곡을 낳아 길렀다는 오죽헌에 새로 생긴 한옥마을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은 그 유명한 초당두부를 먹으러 갔다. 지역 이름이 '초당'이라 초당두부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아버지 허엽의 호가 '초당'이었단다. 바로 허균과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이 지금의 초당인 이유다.
초당순두부를 맛있게 먹고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가를 향했다.

강를 허난설헌의 생가

강릉에서 신사임당 보다 49년 늦게 태어난 허난설헌. 조선 중기의 여인이다. 이 여인들은 어떤 집에서 태어나고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해진다.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는 강릉으로 장가를 왔다면, 허난설헌은 남편 김성립을 따라 시집을 갔다. 이때 조선 중기부터 우리의 결혼 풍습이 '장가를 가는 것'에서 '시집을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신사임당이 운이 좋았다.


허난설헌이 시집을 안 가고 김성립이 장가를 왔다면 이 여인의 역사가 좀 달라졌을까?
1563년에 태어나고 27세의 나이에 요절한 이 여인을 천재 여류시인이라 불러야 될 거 같다.

허난설헌(본명 허초희)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나 허난설헌, 본명은 허초희다.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가진 조선의 여인으로 시와 그림 실력이 뛰어나 널리 유명세를 떨치던 허난설헌은 불행한 결혼과 자녀들의 죽음, 남편과 시댁과의 불화로 이른 나이에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한다.


훗날 동생 허균이 어린 시절부터 누나 허난설헌의 시를 모조리 외운 덕에 중국에서 허난설헌의 시집을 편찬하게 되어 천재적인 조선 여류시인의 시들을 지금도 볼 수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허난설헌이 지은 시들은 허균이 줄곧 다 외웠다 한다. 참으로 정답고 똑똑하기 그지없는 오누이의 모습이다.


강릉 초당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김성립과 결혼하였지만 행복하지 못했던 여인.
그녀의 '세 가지 한'이 있단다.
첫째로 대국에 태어나지 못한 한, 둘째로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한이요, 마지막으로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이 한이었다고 한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허난설헌의 생가

재력 있는 양반댁에서 나고 자라며 어려서부터 시를 배워 수많은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시를 지은 재능 많은 허난설헌이 남존여비와 사대주의의 틀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눈으로 보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을 거 같다.


대문을 지나 마당을 들어서니 마당 정원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옥의 멋과 귀품을 뿜어내고 있다. 선조들의 지혜가 자랑스럽고 정말 존경스럽다.
하얀 흙마당은 손으로 빚어 놓은 듯 곱디곱다.
비가 와도 물이 그대로 빠지며 배수가 잘 되는 한옥의 마당에 우뚝 서 본다.


허균과 허난설헌이 시를 읊으면서 거닐던 고운 마당에 서 있으니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자연 그대로의 500년 된 한옥이 지금 이렇게 보존되어 있는 게 너무 고맙고 좋다.
한옥은 어느 곳 하나 버릴게 없이 단아하고 아름답다.

여인들의 안채

여인들의 삶이 안채에 녹아있다.
똑똑한 여자들을 배출한 강릉에서 허난설헌을 보며 가슴이 애잔하여 차 한잔 대접하며 안아주고 싶어 진다.
남자들이 여인네들을 조금만 더 감싸주고 아껴주면 좋을 텐데... 재능 있고 유능한 여인들이 남편의 눈치 보지 않고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좋겠다.

지난 설날 시댁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무심코 던진 한마디.
"커피 좀 타 주세요."
"응~ 그럴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남편에게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시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얘, 너 집에서도 이렇게 하니? 가만히 있어."
엉거주춤 일어설까 말까 하는 남편에게
"괜찮아요. 내가 탈게요."
말을 건넸더니 분위기가 편안해졌다.

옛날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에 비하면 참 편하게 사는 인생이다. 가끔 남편이 타주는 커피가 너무 맛있고, 가끔 설거지를 해줄 때라면 고마운 마음이 솟구쳐 올라온다.
세상이 좋아진 걸까?
잘 모르겠다. 나도 밥하고 설거지할 때 가끔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지만 사랑을 담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강릉여행의 마무리는 마지막 안목항이다.
바닷가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안목항 커피거리.
모래사장에서 조가비 줍는 딸랑구와 놀다가 흔들 그네에 몸을 싣고 바다를 본다.
카페에 들러 4층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커피 향에 빠져들며 서서히 바다와 작별 준비를 한다. "잘 있어. 다음에 또 올게~~"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기억 속에 담는다. 잊지 말자.
갈매기가 힘차게 날아올랐다가 내린다. 푸른 바다와 갈매기가 있는 바다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리고 마지막 바다 보며 멍 때리기.

바다 멍에 빠져든다.
파도소리도 머릿속에 담아주자.

강릉 안목항 푸른 동해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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