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장군이와 청계 닭

by 샨띠정

어차피 모든 인생은 이방인의 삶을 사는 것일 텐데.

가끔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버거움을 느낀다.


시골 학교를 먼저 정하고 나서 거주할 집을 구하러 다녔다. 이 집을 결정할 때, 오래 살 집이 아니라는 생각과 동네 한가운데 있어서 무섭지 않을뿐더러 근처에 편의점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집이 없었다.


무식하게도 시골에는 어서 와서 살아달라는 비어있는 빈집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니 집 구하는 일은 어쩌면 누워서 떡먹기라 여겼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시골에서 집을 구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살만한 빈집이 없었다.


시골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을 했지만 집을 못 구해서 어쩔 수 없이 전학을 포기하며, 전전긍긍하는 분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도 후에 알게 되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거주하던 수원에서 용인의 시골까지 집을 보러 다니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우리는 운이 좋게도 그나마 작은 시골집을 소개받았지만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단 대문도 없고, 담도, 울타리도 없는, 그야말로 오픈 하우스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도시에서 이사 오는 사람들은 다들 예쁜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는데 유독 시골 마을의 오래된 낡은 집에 이사를 오는 우리가 어떻게 보였을지 짐작이 간다. 우리는 그 당시엔 근처에 전원주택 단지가 많다는 것도 몰랐으니까.


아마 인도에서 살다 온 몰락한 가족이나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한 가족쯤으로 여기며 신기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불과 얼마 전이다. 어쩌면 자기 시각화를 제대로 못한 채 그저 천진난만하게 들어와 벅찬 시골 생활을 시작했던 거 같다.

강아지와 마당에서 놀며 소리 지르고 깔깔거리던 딸아이의 별명이 '고라니'로 불렸다는 것을 안 지도 이곳에 산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갈 즈음이었다.

우리는 스스로의 높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쓰러져 가는 구옥에 살아도 꿀리지 않는 커다란 자존감을.


주변 이웃 어르신들은 나를 싹싹하고 성격이 좋다고 좋아하셨다. 나도 어르신들이 좋았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관찰 대상자였고, 트루먼쇼의 주인공과 같은 비슷한 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주변의 좋은 집들 속의 초라한 구옥, 마당은 온 사방에서 다 들여다 보이는 그런 집에서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우고 살았다. 아주 꿋꿋하게.


자연 속에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음악이 되고, 따스한 햇살이 옷이 되는 곳을 누렸다. 비록 열악하고 힘들어서 불편을 많이 감수해야만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오늘, 모든 평화가 깨졌다.


몸집이 큰 장군이만 홀로 집에 두고, 꽃순이와 퍼지를 데리고 글램핑장에 간 것이 화근이 되었다. 샤이니의 소원이 강아지랑 캠핑장 가기였다.

아침에 캠핑장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큰일이 생겼다. 비상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장군이가 옆집 어르신이 마당에서 키우시는 네 마리 청계 닭을 모두 죽였단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장군이가 목줄이 끊어진 채로 마당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장군이가 범인임에 틀림없었다.


어르신은 우리를 보려고도 하지 않으셨고, 이웃분들도 화가 많이 나 계시니 만나지 말라고 하셔서 어르신을 뵙지도 못했다.


이러다가 이사를 나가기도 전에 쫓겨날 지경이었다.


나는 속으로, 다시 입으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냉정해야 해. 냉정해야 해."


결국 지난번에 장군이를 보냈다가 다시 데려 왔던 적이 있는 어르신 댁, 꽃님이 집으로 장군이를 보내며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과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떠나는 장군이도 울었다. 울보 장군이니까.


현관에서 잠든 꽃순이를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다.

꽃순이는 장군이를 정말 좋아했는데... 친 남매처럼.

그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까 싶어서 더 눈물이 났다.


개는 개라고,

마음을 추스르며 눈물을 삼킨다.


해결되지 않는 내 마음을 정리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마음이 딸아이의 마음이고, 꽃순이의 마음일 것이다. 너무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딸아이는 다행히도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딸아이와 나 자신에게 그리고 꽃순이에게 말했다.


세상에는 가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며 이별을 해야 할 때가 있다며,

보고 싶을 때 장군이를 보러 갈 수 있으니 그걸로 감사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