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하고 굳은 표정의 군인들이 군복을 입고, 허리에 총을 찬 채 공항 입구를 지키는 곳, 그 앞에서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하는 그곳은 인도 뉴델리의 인드라 간디 국제공항(I.G.I)이다.
그곳을 통과해야만 항공 수속과 이민국 검색을 통과해 하늘을 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군인들은 공항 입구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승객들의 항공 티켓을 일일이 검사한다. 당일 항공 티켓을 소유한 사람들만이 공항 내부로 들어가도록 허용된다.
그러니까 인드라 간디 국제공항은 공항 안에서 누군가를 마중하거나 배웅하기가 어렵다. 테러의 위험으로부터 승객들을 보호하고 인드라 간디 국제공항을 지키겠다는 당국의 정책이다.
하지만, 나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며 비행기와 공항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델리 국제공항은 야속하기만 하다.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을뿐더러, 마중과 배웅을 핑계로 공항에 한 번이라도 더 가서 공항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꼭꼭 굳게 닫힌 거대한 철문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단, 항공권을 가지고 있을 때는 가슴을 쭉 펴고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으니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날에는 기쁨과 설렘을 맘껏 누릴 수 있었다. 델리 공항은 바로 하늘로 가는 문이었다.
꼬맹이 어린 시절 나는 하늘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자주 고개를 힘껏 뒤로 젖히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하늘에 빨려 들어가 콘크리트 바닥에 눕곤 했다. 하늘은 손에 닿을 듯 말 듯, 멀리 아주 멀리 높은 것 같기도 하고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가깝기도 했다. 하늘을 감싸 안은 구름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멀리 날아가버렸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구름은 참 좋겠다. 언젠가 나도 구름처럼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친구와 함께 하늘을 구경하던 어린 나는 구름이 부러웠다. 하늘을 마음대로 둥실둥실 떠돌아다니는 구름이 되고 싶었다. 그때부터 하늘을 날고 싶은 새싹 같은 꿈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파란 하늘과 구름
내게는 비행기를 타는 것만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렇게 나는 마침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비행기를 많이 타게 되었다. 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한 것이다. 심지어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 공항에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누렸다.
아무튼 델리의 인드라 간디 국제공항(I.G.I)은 이런 내게 가혹한 곳이었다. 실탄이 들어있는 총을 허리춤에 차고, 공항 보안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인도 군인들을 보고 있는 자체로도 스스로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인도 인드라 간디 국제 공항(출처, Wikipedia)
그러던 어느 날, 우리에게 한 가지 사건이 터졌다. 한국을 방문해서 일정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델리행 비행기를 타고 밤늦은 시간에 인드라 간디 국제공항(I.G.I)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에 다녀오는 길은 언제나 가방이 무거웠다. 한국에서 온갖 필요한 물품들을 꽉꽉 채워왔기 때문이다. 그날도 셋이서 가져온 가방이 총 6개였으니 얼마나 챙기고 또 챙기며 짐을 꾸렸을지 그야말로 짐들과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문제는 분홍 헬로 키티 여행 가방이었다. 딸아이를 위해 선물한 슈트케이스는 우리가 여행할 때마다 함께 한 동료이자 친구였다.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장을 통과하고, 짐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분홍 헬로 키티 가방은 기내로 들고 들어간 핸드 캐리어 가방이라 아이와 함께 곁에 두었다. 무사히 짐을 다 찾고는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섰을 때 딸아이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엄마, 내 헬로 키티 가방 어디 있지?"
아뿔싸, 아무리 이리저리 찾고 또 찾아봐도 가방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과연 분홍 가방을 찾을 수 있을까?'
불안이 엄습해 왔다. 핸디 캐리어로 기내에 들고 들어갔던 가방이라 중요한 서류도 넣어둔 상태였다. 앞이 캄캄했다. 공항으로 다시 가야만 했다. 얼른 대문을 열고 나와 골목으로 나섰다. 시간이 이미 늦은 밤이라 택시를 부르기도 어려웠다. 인도의 택시 개념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미리 택시 회사에 전화로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한밤중에 택시를 불러서 예약하고, 공항으로 다시 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바로 그때, 어두운 골목에 택시 한 대가 지나갔다. 누군가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온 모양이었다. 우리는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택시비를 여유 있게 더 드리기로 하고 공항에 가 줄 것을 부탁했다.
인도 meru 공항 택시(출처, meru)
감사하게도 주저하던 택시 기사가 우리를 무사히 공항에 데려다주었지만, 문제는 우리가 공항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였다. 군인들이 삼엄하게 총을 들고 하늘로 가는 문, 공항 게이트를 막고 있는데 무슨 수로 공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암담했다.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바쁘게 검문을 하고 있는 인도 군인들에게 다가가 사정을 이야기했다. 잠시 후 위의 상관을 불러왔다. 나는 다시 한번 난처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딸아이의 가방을 잃어버렸어요. 핑크색이에요. 분명히 공항 안에 있을 거예요. 제가 찾을 수 있도록 들여보내주세요.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제발."
군복을 입은 군인은 내 여권을 확인하고는 혼자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남편에게 내가 들어가서 어떻게든 가방을 찾아오겠다고 했다. 수화물 코너부터 항공사 사무실까지 찾아가 알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애타는 가슴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우리가 아끼는 가방을 꼭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공항을 이리저리 찾아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날 불렀다.
"인포메이션 센터(Information Center) 로 가 보세요."
내가 왜 진작 그곳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멀리 인포메이션 센터의 테이블 위에 분홍색 가방이 날 바라보며 서 있는 게 아닌가? 담당자에게 우리 가방이라고 했더니, 기다리고 있었단다. 이름표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델리에 도착하고 늦게야 켜 둔 인도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성의를 표하며 짜이라도 사서 드시라고 백 루피 몇 장을 전했다. 그랬더니 절대로 받을 수 없다고 극구 사양을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분홍 가방을 열어 아이가 좋아하는 한국 과자를 꺼내 간식으로 드시라고 드리는데도 결코 받을 수 없다고 사양을 하셨다. 하는 수 없이 그저 감사 인사만 여러 차례 드리고는 가방을 들고 게이트로 향했다.
내게 공항 입장을 허락해 준 군인에게 가방을 찾았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굳 굳, 아차해!!"
"땡큐 쏘~~~~ 마치~~ 다야바드!!"
다시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세상 그 어느 길보다도 아름다웠고, 따스했다. 그토록 철벽 같던 인드라 간디 국제공항(I.G.I)이 내게는 다정하고 따뜻한 아주 특별한 곳으로 다가왔다. 인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경험한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와 무사히 착륙을 하고, 입국 심사를 마치고 델리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의 그 느낌을 기억한다. 아직도 그곳의 독특한 인도 냄새와 후덥지근한 공기와 살아 숨 쉬는 듯한 시끄러운 소음들, 그리고 탁한 색감들을 잊을 수가 없다.
델리에 도착해서 바라본 하늘은 늘 깜깜한 밤하늘이었지만, 그 밤의 그 하늘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다.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웠던 곳, 두려웠지만 두렵지 않았던 그곳은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고픈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