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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Feb 27. 2023

손길이 닿는 의미(새끼 강아지들을 입양 보내며)

이별의 아픔

손끝이 달려가는 곳엔 언제나 마음도 함께 간다. 가끔은 의무감과 주어진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 손을 움직이기도 하고,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억지로 손끝을 움직여야 할 그런 때도 분명히 있지만 말이다.

보통은 손길이 사랑과 함께 가곤 한다.


우리 집 반려견 꽃순이가 새끼들을 일곱 마리 낳던 그날부터 나의 손길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갓 태어난 일곱 마리 콩알 같은 새끼 강아지들이 행여라도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눈과 손을 떼지 못했다.

내 두 손 끝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돌보는 일곱 마리 생명체와 그 어미에게 조심조심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일곱 마리 새끼 강아지들의 출생

그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줬다.

'알라딘과 자스민, 백설, 로즈, 벨라, 에이리얼, 아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빨아주며, 잠자리를 챙기고, 이유식을 시작하여 사료를 먹기까지 어미와 함께 육아에 동참했다. 마치 내 아기들인 것처럼.

어차피 보내야 할 아이들이라면, 잘 먹이고 맘껏 충분한 사랑으로 키워서 보내고 싶었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내 손길은 새끼들이 자랄수록 더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눈을 뜨고, 걷고, 뛰기 시작한 일곱 마리 들을 돌보는 일은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다. 일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내 손길이 닿을수록 아기들은 쑥쑥 자라났다. 손 끝에서 아기들이 자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손 끝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일곱 마리 강아지들

감히 어미를 대신하여 내가 돌보고 키운다는 생각은 안 했다. 모든 육아는 어미 꽃순이 몫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훌륭한 어미였는지 새끼들을 돌보는 어미의 모습은 숭고함 그 자체였다.

새끼들이 다 자랐다.  사료도 잘 먹고, 어미를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워주시길 바라며 사방팔방 수소문하여 무료 입양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준비했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카페, 밴드, 카카오톡의 SNS를 이용해서 수소문을 했다. 또한 면사무소, 편의점, 식당, 문구점, 철물점, 동물병원, 교회에 까지 발품을 팔며 강아지 사진을 프린트해서 좋은 보호자를 찾아 나섰다.

준비한 강아지 입양 포스터

그렇게 하나 둘, 가족이 되어주실 보호자들이 강아지들을 한 마리씩 데려가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미처 몰랐다. 이렇듯 큰 이별이 될 거라는 것을, 이렇듯 큰 아픔과 눈물을 남길 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새끼 강아지들을 입양 보내기 시작한 2월 초부터 한 달 내내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고, 가슴에는 돌덩이 하나가 콱 업혀 있는 느낌이다. 

언제든 엉엉 울 준비가 되어 있다.

어미의 젖을 사모하던 새끼 강아지들

이별의 고통이 그리도 큰 이유가 무엇일까?

내 손길이 머물던 생명체들.

내 손끝을 부드럽게 감싸던 꼬물이들.

내 손 안에서 사랑을 나눴던 새끼 강아지들이 내 손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손 끝이 텅 빈다.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새끼 강아지들을 손 안에서 더 이상 느낄 수가 없다. 그것이 이별이었다.

그래서 이별이 아픈 거였다.

손길이 닿을 수 있다는 것은 이별이 아니다는 걸 알았다.


이제 막내 로즈만 우리 곁에 남았다.

유난히 겁이 많고, 약하고, 순하고, 아기 같은 로즈는 누군가의 손에 도저히 맡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내 손 끝에 머물도록 했다. 내 작은 손길이 필요하기에. 아니 어쩌면 로즈가 내게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내 손 길 닿을 막내 로즈가 있어서 내게 위안을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혼자 내 손길에 머무는 막내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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