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 남자 이야기, 내 나이 스물 하나였을 때

추억으로 남은 엇갈린 사랑

by 샨띠정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When I was one-and-twenty)

by 엘프리드 E. 하우스먼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어느 현명한 사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크라운, 파운드, 기니는 다 주어도

네 마음만은 주지 말거라.

진주와 루비는 모두 주어도

네 자유로움만은 잃지 말아라.”

하지만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으니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다시 그가 내게 말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은

늘 대가를 치르는 법.

그 사랑은 넘치는 한숨과

끝없는 후회 속에서 얻어진단다.”

지금 내 나이 스물하고 둘,

아, 그것이 진리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When I was one- and- twenty

I heard a wise man say,

“Give crowns and pounds and guineas

But not your heart away;

Give pearls away and rubies

But I was one-and-twenty,

No use to talk to me.

When I was one-and-twenty

I heard him say again,

“The heart out of the bosom

Was never given in vain;

‘Tis paid with sighs a plenty

And sold for endless rue.”

And I am two-and-twenty,

And oh, ‘tis true, ‘tis true.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내가 기억하는 세 남자가 있었다.


그중 두 남자, J와 L은 교회 오빠였다.

J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내게는 친오빠처럼 살뜰히 챙겨주고 보살펴 준 은인 같은 오빠였다. 가끔은 설마 여자친구가 있는데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친동생처럼 날 아껴주던 오빠다. 내가 큰 딸이다 보니 오빠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는데, 나의 그러한 결핍을 채워줬던 은인 같은 사람이다.

후에 오빠가 결혼을 하고 언니와도 친하게 지내며 가족처럼 지냈는데, 세월이 흘러 내가 해외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서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연락 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수소문하여 J오빠를 찾아 안부라도 전하고 싶다.

꽃처럼 아릉다웠던 날들

또 한 사람의 교회오빠 L 은 당시 서울의 명문대학에 다니던 몇 안 되던 오빠 중에 하나였다. 나는 L을 혼자서 좋아했었다. 짝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외사랑이라 해야 할지... 암튼 고백을 한 번도 못하고 말았다.

교회에서 등산을 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고백조차 용기가 없어 할 수 없었던 나는 은근슬쩍 L 곁에서 알짱거리곤 했다.

그러다 마침내, 바위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어느 시점에 짜릿한 순간을 맞이했다. 올라가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던 내게 L이 다가와 손을 잡아 주는 게 아닌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나를 이끌어주던 그 순간을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같이 등산했던 일행들과 사진을 찍었는데, 우연찮게도 L 오빠는 내 곁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냥 그 자체로 너무 행복했었다. 고백이라는 건 상상조차도 못하고 그렇게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고 누리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 후, L 오빠는 군 입대를 위해 떠났고 제대 후에는 서로 다른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나의 짝사랑은 막을 내렸다. 후에 L 오빠가 MBC 기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MBC 9시 뉴스를 통해 종종 L 오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MBC 뉴스 이 00 기자였습니다."

한동안 뉴스를 통해서 L오빠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적이 있다. 그 후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내 스물하고 하나였을 그때의 내 마음속 사랑이었다.


세 번째 남자는 S다. S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동갑내기 어린 시절 친구다. 그런데 S가 스무 살이 넘더니 내게 고백을 해왔다. 매주 S에게서 편지가 날아오고, 나에게 사랑을 얻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했다. 하지만 내게는 S가 꼬맹이 소년 같기만 하고, 남자친구로는 상상하려 해도 도저히 마음이 따라가지 않았다. 난 그 당시 교회오빠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니 더 그랬을 터이다.

S도 1학년을 마치고 일찍 군대를 갔다. 군대에서도 계속 편지가 왔다. 구애의 편지가 계속되었다. 나는 그가 너무 좋은 친구이며 고마우면서도 남자친구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S도 열심히 교회를 다니던 친구였는데(나와 다른 교회에 다녔다.) 후에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내 탓이라고 했다.


너무 마음 아픈 일이었지만, 나는 그저 내 인생의 좋은 친구로 S를 곁에 두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S는 지방 은행에 근무하게 되어 자주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어느 날, 그가 나를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내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해?"

"넌 정말 내게 좋은 친구야."


그 후, 그가 직장 동료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S가 마지막 결단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던 모양이었다. S가 결혼한다는 소식은 기쁘면서도 친구를 잃는 슬픔도 함께 왔다.

지금은 아주 가끔 소식을 전한다.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던 그 시절, 세 남자 중에서 S만이 유일하게 아직까지 친구로 남았다.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로, 언제든 내려오면 밥 사겠다는 S.


그러고 보니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그때도, 꽤 낭만적이었다.

비록 연애는 못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추억을 선물해준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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