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묵은 친구들과 가을 과천 나들이

과천 현대미술관 전시회

by 샨띠정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비행기로 24시간이 걸리는 콜롬비아에서 온 윤정 덕분에 넷이서 함께 뭉쳤다.

보령으로 가서 대천해수욕장도 가고 간장게장도 먹기로 했지만 당일코스로 부담스러워 그냥 가까운 과천으로 틀었다. 보령은 광주에서 오는 유나도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은 한켠에 접어 두기로 했다.


마침 가을은 하늘을 찌르고 올라 정점을 향해 가고 있었고, 가을비는 다행히 내일 온다니 천만다행이었다.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과천 대공원에서 아침에 만나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윤정, 의숙, 승희, 나 이렇게 넷이서 차를 몰고 달려간 나와 함께 근처 과천소망교회 안에 있는 만나 카페로 향했다. 산 밑에 위치한 숲 속 맛집이었다.

의숙과 승희는 아침을 안 먹어 브런치 세트를 주문하고, 아침을 안 먹으면 기운이 없는 윤정과 나는 이미 배를 채웠기에 참치 샌드위치를 하나 시켜 둘이서 따끈따끈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나눠먹었다.


작년에 만나고 일 년 만에 만났다. 각자 해외 생활을 할 때는 함께 모이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윤정만 남미에서 지내고 있으니 그래도 해마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시작된 폭풍 수다는 멈출 줄을 몰랐다. 웃었다가 진지했다가 울었다가 인생의 희로애락이 대화 속에 녹아들었다. 각자의 삶과 그 이야기를 존중하고, 경청하며, 지지하는 마음의 대화가 무르익었다.


가을 단풍이 막 시작되는 시월에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가을은 마음을 더 깊어지게 하기에.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휙 지나가버렸다. 스카이리프트를 탈까? 미술관을 갈까?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현대미술관을 택했다. 동물원과 호수, 서울랜드를 지나 꼬불꼬불 오솔길을 따라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언제나 정겹다. 숲 속 오솔길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어 더없이 고마웠다.

과천 현대미술관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미술관은 아름답다.


마침 현대미술관에서는 '이신자, 실로 그리다' 전시회와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도 진행되고 있었다.

전시 관람로도 저렴했다. 2000원을 내고 티켓을 구매하고 전시회를 두 개 다 관람을 할 수 있다니 횡재한 느낌으로 전시회를 누렸다.

평생을 온갖 실로 작품을 만들어 온 이신자의 모든 실로 된 작품들은 예술 그 자체였다.

섬유미술은 회화와는 달리 재료에서 오는 독특함이 있잖아요.
따뜻하잖아요.
왜 섬유 작업을 하냐고 물어보는데,
난 참 포근하고 좋거든. -이신자

그녀의 전시회를 관람하며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따뜻한 예술이다. 포근한 예술. 온기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테라피스트가 되고 있었다.

전시실에서 나와 1층 중앙에 서있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지났다. 얼마 전에 읽었던 방구석 미술관에서 만났던 백남준과의 또 다른 만남이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목, 금, 토요일에만 불이 켜진다고 하여 우리가 간 수요일은 위대한 작품이 죽은 듯이 서 있었다.


비디오 아트를 지나 3,4 전시실로 걸어 올라갔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산 박주환이 수집하여 기증한 209점의 작품들이 있다. 한국 미술의 시대적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사군자화, 산수화, 문인화, 영모화를 비롯한 지필묵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이런 한국화는 마음을 평화롭게 만져주는 듯하다.

의욕은 시간을 움직이고,
시간의 마디마디마다
성장과 결실이 교차합니다.-박주환


그렇게 눈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나니 허기진 배를 채우러 서울랜드 맛집 '쌈이맛'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시작된 수다는 끝이 나지 않았다. 식당이 문을 닫는 8시 30분에 엉덩이를 들고 나섰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주차장에서 또다시 자동차 안에서 다시 시작된 수다. 9시가 넘어서야 억지로 억지로 대화를 마치고 작별을 고했다.

콜롬비아로 돌아갈 윤정에게 준비한 선물로 마음을 전했다. 선크림과 클렌징 폼, 크림 그리고 책 한 권. 내 사랑이다.

하루 종일 수다를 떨어도 모자란 시간들.

다시 다음엔 밤을 지새우며 얘기 나누기로 기약하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누고 홀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20대 꽃청춘으로 만나 중년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 서로의 연애와 사랑, 꿈, 진로, 생각을 누구보다도 잘 알던 우리다. 그렇게 인생 전체를 통째로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오래된 묵은 우정이 있어서 더욱 감사한 가을날이다.


집으로 돌아가더니 옛 사진을 모아 콜라주를 만들어 올리며 추억을 더 깊어지게 했다. 우리의 청춘을 그리워하고 축복하면서.


그때 그 시절 촌스러웠지만 청초했던 우리.

이젠 어느덧 중후한 중년이 되었다.

작년의 사진은 지금보다 훨씬 젊고 예쁘다. 그때는 몰랐다.

내년은 또 어떻게 변해갈까?

청춘을 사랑했듯이 지금 이 중년의 시간도 더 사랑으로 품어 보고 싶다.


가을에 더 감사하자.

모든 것에.

감사의 이유를 붙여보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