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피부로 느낀 아주 특별하고 놀라운 일이 인도에서 일어났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돈에 대해서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인도에서 화폐개혁이 있었다. 그것도 아무 예고도 없이, 도둑이 오는 것처럼 불쑥 나타났다.
이전까지 사실 돈이 휴지조각이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돈은 가치가 있었다. 귀중한 몸값을 지닌 돈은 가장 깊숙하거나 중요한 어느 곳, 최소한 지갑 속에는 자리 잡고 있어야 했다. 그만큼 대접을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히 주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인도에서 바로 오늘까지 사용하던 상용 화폐가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일을 직접 겪었다. 2016년 11월 8일 밤 8시쯤 인도 학생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내일부터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돈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거였다. 믿기 어려웠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웃어넘기고 싶은 메시지였다. 그러고 나서 두 시간 후, 밤 10시에 긴급 속보가 전파를 타고 온 인도를 덮었다.
밤 12시 자정부터, 그러니까 11월 9일부터 인도의 화폐 500루피와 1000루피를 사용할 수 없다(사용 금지)는 내용이었고, 곧 새로운 화폐가 발행될 거라는 특보였다. 단 병원이나 약국에서는 이틀간 구 권을 받아준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갑작스러운 특보에 머리가 하얘졌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하루아침에 길을 잃은 인도 화폐 구 권
12월 30일까지 은행에 가서 구 권을 신권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부패 척결이라는 명목하에 지하의 모든 검은돈을 뿌리째 뽑겠다는 정부의 갑작스러운 개혁에 온 국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사실 인도 사람들은 집에 현금이나 현물을 침대 밑이나 비밀상자에 보관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렇게 보관하던 현금을 흰개미가 다 먹어치워 버리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아무리 부정부패를 척결한다고 해도 이 일로 인해 14억이 량 되는 그 많은 인도 인구들이 발을 동동 굴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건을 사고팔 수도 없었고, 현금을 사용할 수 없어 굶어 죽은 사람들도 뉴스에서 보았다.
뒤늦게 기다리던 신권이 발행되었다. 엄청 좋은 재질인 실크로 만들어진 새로운 화폐라고 홍보를 했다. 하지만 신권을 빠른 시간 내에 찍어내지 못했고, 사람들 손에 들려지기까지 너무나 많은 힘들고 불편한 시간을 감내해 내야만 했다. 거기에다 신권은 그 단위가 매우 컸다. 1000루피가 없어지고, 2000루피 신권이 발행되었다.
갑작스러운 인도 신 권 발행
12월 30일 이후에는 바로 눈앞에서 돈이 종잇조각으로 휴지가 되어 강에 버려지고, 길가에 뿌려지는 광경을 바로 목도하는 일이 생겼다. 미처 신권으로 바꾸지 못했거나, 교환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일을 다 기록할 수가 없다. 현장에서 화폐개혁을 겪으며 혼란 속에서 애를 태웠던 그 시간을 잊지 못한다.
ATM에서 신권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섰다. 하지만 제한된 금액의 신권은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헛걸음을 계속 반복해야만 했다. 여기저기 ATM기를 찾아 숨 가쁘게 다녔지만 헛수고였다. 정부에서 하루에 인출할 수 있는 금액을 1인당 1만 루피로 제한했고, 1주일에 2만 루피만 인출할 수 있도록 출금을 막아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행된 새로운 신권은 턱없이 부족했고, 사람들은 신권을 찾아 기다리고 헤매며 긴긴 줄을 섰다.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는 보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당시만 해도 인도에서는 은행 계좌를 개설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구가 태반이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신권을 구할 수가 없었다. 노동을 하고 인건비로 받아야만 했지만, 신권이 부족하니 모든 인건비도 미루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계좌이체나 수표를 거부하고, 현금만 받고 있었던 집주인(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현금을 고집하는 경우가 흔하다.)에게 월세를 제때에 내지 못하여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토록 혼란한 상태에서 상상도 못 할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우리도 무엇보다 야채와 과일을 사서 식생활을 해결해야만 했다. 동네 골목에서 리어카에 채소와 갖가지 과일을 싣고 와서 파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식탁이 채워졌다. 이들과는 100퍼센트 현금 거래만 가능했다. 우리도 신권을 확보해야만 했다. 우리는 인도 델리 지점 신한은행, 인도 현지 은행 ICCI 뱅크, 그리고 시티은행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생활에 필요한 새로운 신권 2000루피를 확보한 어느 날, 나는 미루고 있었던 야채와 과일을 새로 발행된 인도 화폐를 주고 샀다. 2000루피는 인도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큰돈이었다. 2000루피를 보면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랐다. 보통 사람들이나 가난한 하층민들에게는 특히 더 그러했다. 우리는 2000루피 화폐를 가지고 장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겨우 어렵게 구한 신권이었기 때문이다.
골목에서 장을 보고 집에 들어와 재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현관 벨이 울렸다. 좀 전에 과일을 샀던 과일장수가 현관 앞에 서있었다. 그는 나의 단골이었다. 나는 주로 그에게서 과일을 사서 먹었다. 아침마다 우리 집골목에 와서 나를 기다리던 과일장수다. 그가 왜 우리 집에 올라왔을까? 궁금했다.
"마담, 당신이 내게 가짜 위조지폐를 주고 과일을 샀어요."
너무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몸이 떨렸다. 그의 손에는 가짜 위조지폐 2000루피가 쥐어져 있었다. 그 돈을 내가 주었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그 돈을 ATM에서 가져왔어요. 진짜 신권이에요."
그는 내게 위조지폐를 보여주며 내가 준 것이라고 우겼다. 나는 하는 수없이 그를 데리고 아래층 주인 할아버지께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주머니에 있는 것들을 다 꺼내보라고 했다. 그는 벨트까지 풀어헤치며 빈 주머니들을 다 증명해 보였다. 집주인 할아버지께서 엄하게 묻고 다그쳤지만, 그는 단호하게 위조지폐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나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올라와 다른 신권 2000루피를 꺼내 주고는 그를 보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앞에서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무력함을 느꼈다.
과일장수가 가져온 위조지폐
그가 내게 건네준 위조지폐를 살펴보니 인도어린이 은행(Children Bank of India)라고 찍혀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나는 지금도 그 위조지폐를 내 지갑에 보관하고 있다. 나를 위조지폐를 준 사기꾼으로 몰아세우고 또 다른 2000루피를 하나 더 챙겨간 나의 단골 과일장수. 그는 그렇게 그날 이후 우리 동네 골목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아저씨들이 그를 가만 봐주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오고 싶어도 그는 다시 우리 골목에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 그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과일을 좋아했던 우리 가족은 그에게서 그 이상의 많은 과일을 계속 사 먹었을 것이고, 그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그는 떠나야만 했다.
그 후에 새로운 과일장수가 우리 동네 골목에 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와 다시 단골을 맺었다.
리어커에서 파는 인도 열대과일 파파야
그렇게 새로운 인도 화폐가 발행되면서 신권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대부분의 모든 상거래와 일상이 현금으로 거래가 이루어졌기에 현금 없이는 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나 쇼핑몰에서는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현금거래가 보편적이었다. 대부분 많은 부자들도 현금 돈다발을 들고 다니며 쇼핑을 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위조지폐도 많아서 모든 매장에서는 점원들이 일일이 위조지폐를 확인한다.
한 번은 쇼핑몰 정기 할인 기간에 맞춰 딸아이 원피스를 산 적이 있다. 마음에 드는 옷을 하나 골라서 계산을 하려고 섰는데, 바로 내 앞에서 계산하는 손님이 그야말로 세일 기간에 맞춰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계산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풍경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계산원이 산더미 같은 옷을 하나하나 천천히 접어서 가방에 다 담은 후에 한 뭉치의 현금을 받아 들고는 한 장씩 낱장마다 위조지폐 확인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꼼꼼하게 말이다.
얼마나 속이 터지고 답답하던지 하나밖에 없는 내 물건을 먼저 계산해 달라고 조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아무튼 인도는 화폐개혁이 있은 후에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뱅크나 페이 티엠(Paytm) 같은 전자상거래를 활용하는 추세도 높아지고, 은행 계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고객들도 많이 늘어났다.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지만, 조금은 더 편리해진 상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부패가 척결되었는지, 검은돈이 사라졌는지는 미지수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과연 돈, 화폐는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 인간을 어떻게 끌고 가며, 또 어떻게 끌려가고 있을까? 돈은 삶의 우상이 되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해 쓰이는 선한 도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돈이 휴지조각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 삶에 큰 충격을 주었다.
돈이란 어느 날은 내 손에 있다가도, 어느 날은 홀연히 내 손에서 떠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마음대로 주장하거나 붙잡을 수 없는 돈에 대해 조금은 더 연연하지 않고, 유연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