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샨띠정 Aug 15. 2023

이별의 고통

갑작스러운 이별을 마주하며

차마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꺼내어 보는 것도,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또 누군가에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슬픔이 언제나 모두에게 같은 총량으로 적용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보편적일 수 없는 그 어떤 슬픔이 있다는 것도.


내가 서있는 어느 곳이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아이. 태어날 때부터 작고 귀여운 꽃 같아서 7 둥이 일곱 마리 중에 유일하게 꽃이름을 붙여준 아이. 막내 로즈다. 장미에는 가시가 있지만 그 어느 작은 실가시조차도 없는 천사 같은 아이. 우리 반려견 꽃순이의 막내딸의 이름은 장미, 로즈(Rose)였다.


작년 12월에 태어나 8월 한여름에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너무 갑작스럽게 내 품 안에서 심정지로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렇게 로즈를 보냈다. 영원히..


로즈는 언제나 내 그림자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있는 곳에 로즈가 있었다. 식사를 준비할 때는 식탁 밑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쳐 누워있을 때도 곁에 와서 아래에 같이 누워있곤 했다. 카페에서는 소파 밑에 누워있거나, 주방 옆 내 곁에 누워있었다. 내가 정원에 나가면 꽃밭을 따라다니며 풀을 뜯어먹다가 이내 더워서 헉헉거리며 그네 아래에서 누워 쉬면서 나를 기다렸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따라 들어오고, 나가면 같이 따라 나왔다. 내가 올라가면 어김없이 올라오고, 내가 내려올 때는 틀림없이 따라 내려왔다. 소현이가 데리고 함께 놀고 있을 때를 제외하곤 늘 그러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늘 가까이 뵐 수 없고, 형제자매도 만날 수 없으며, 친구들조차도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운 그 모든 날에 늘 나와 함께 했던 로즈가 떠났다. 내가 돌봐준 게 아니라, 내가 보호해 준 것이 아니라, 로즈가 날 위해 그렇게 했다. 나를 돌보고, 보호하며, 위로했다. 나를 쓰다듬어 주던 아이, 나를 지켜주던 아이를 나는 지켜주지 못하고 말았다.


어떻게 이 모든 이야기를 한 번에 써 내려갈 수 있으랴. 그럴 수 없다. 결코 그리 할 수가 없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별의 고통이 있음을 알려주고 떠난 아이, 로즈. 가슴에 돌덩이 하나 크게 심어놓고 떠난 작은 생명체가 내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올라 가라앉지 않았고,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인공누액을 계속 필요로 한다. 가슴에 박힌 이별의 통증을 달래지 못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난생처음 안정제  역할을 하는 안정액을 복용하고서야 이틀째 잠을 청해야만 했다. 도대체 이 무슨 일인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여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가슴에 통증이 남은 채로 시간이 어서 약이 되어주길 기도한다.


글로 쓰고픈 수많은 생각과 일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꼬리를 물고 올라온다. 우리 집 반려견 로즈를 통해 보게 된 내 마음속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서서히 적어보려고 한다. 내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 보석상자를 말이다. 이제 시작이다.

로즈의 죽음을 애도한다.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을 다해 온 가슴으로.

우리 막내 로즈의 장례식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