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바로 일어나 현관문을 연다. 밤새 현관에서 잠을 자는 백설이와 부엌에서 거주하는 퍼지, 딸아이 방에서 함께 자는 꽃순이를 위함이다. 밤새 참았던 소변을 마당 한켠 그들만의 공간에 가서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마지막으로 세 마리 반려견들을 위해 현관문을 열어준다. 밤새 안녕을 위한 취침 전 볼일을 보는 시간을 위해서다.
아침마다 세 마리 반려견들도 딸아이의 등교를 응원하며 대문에 나란히 서서 배웅 인사를 한다.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아이의 등교를 마치고 나면, 나는 바로 마당 곳곳에 숨어있는 보물(?) 찾기를 시작한다. 세 마리의 반려견 꽃순이와 퍼지, 백설이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곳에 각각 황금똥을 장만해 둔다. 모종삽에 보물(?)을 하나하나 찾아 담은 후에 화단과 텃밭에 흙을 파고 다시 보물을 묻는 작업을 실시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물론 변의 모양과 묽은 정도나 상태를 무심하면서도 유심히 살피며 반려견들의 건강 상태도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거나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들과 대화를 나누면 왠지 기분도 상쾌해짐을 느낀다.
"이 녀석들아, 이놈의 새끼들, 꼬쭈이(꽂순이), 퍼~지, 백쩌리(백설이)"를 한바탕 부르고 나면 긍정에너지가 뿜어져 올라오는 것만 같다. 로즈가 있었을 때는 '로즈 로즈 로~~~즈'를 멜로디와 리듬에 맞춰 부르곤 했다. (지금은 로즈 대신 언니 백설이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백설이 이야기도 쓸 수 있으리라.)
강아지들도 북카페 오픈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걸 좋아한다. 항상 나보다 먼저 북카페 문 앞에 뛰어달려 가서 나를 기다리곤 한다. 출근 도장을 찍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본인들이 자리 잡고 앉을자리와 누울 곳도 잘 알고 있다. 손님들이 오시면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은 지도 이미 학습이 잘 되어있는 충실한 북카페 직원들이다. 퇴근 시간도 예외없이 기다리며 우리보다 더 좋아한다. 단, 이곳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백설이는 예외이다. 로즈는 늘 나만 졸졸 따라다니며 내 곁에 머물렀다. 지금은 이곳에 없지만..
무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실내를 떠나기 싫어하고, 매서운 추위가 있는 겨울엔 따뜻한 공기와 방석 그리고 이불을 쫓아 몸을 녹인다. 어느 곳에 있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고, 난 반려견들의 안전과 보호를 책임지고 있다.
우리는 강아지들을 바깥 마당에서 재우지 않는다. 남들이 보면 그냥 믹스견일 뿐일 수도 있지만(물론 퍼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품종인 말티즈다.), 우리에게는 소중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세 마리 아이들을 실내에서 밤을 보내게 하면 밤새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 시골밤의 개들은 멀리서 짖기 시작하는 한 마리로 인해 도미노처럼 울려 퍼지는 개 짖음 소리에 밤잠을 설치기 십상이니 더욱 그렇다.
우리 꽃순이는 종종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할 정도로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꽃순이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고 함께 공감하며 생각을 읽기도 한다. 종종 내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쏭달쏭해질 때가 있을 지경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사람을 섬기고 돌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마음을 나누고, 서로 돕기를 원했다. 함께 누리며 공유하며 삶을 나누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을 위로하고 싶었다.
'내 곁에 한결같이 머무는 동물들은 왜일까?'
자의든 타의든 이곳에 와서 여러 동물들을 키우고 길렀다. 토끼 6 마리, 닭 2 마리, 고양이 1 마리, 강아지 10 마리, 구피 15 마리, 심지어 청개구리도 살고 있다. 내 손을 거쳐간 동물들이다. 땅에 묻어주고 장례식을 해주고, 함께 웃고 울었다.
"하나님, 저는 사람들을 섬기고 싶은데요. 내내 동물들을 돌보며 함께 하고 있어요. 왜 그러는 거죠?"
사실 로즈를 하늘나라로 보내던 그날도, 나는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 고민을 지닌 채 상념에 빠져있었다. 8 개월 된 아기 강아지, 내 귀여운 로즈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그래서 날 떠난 걸까? 수 십 번씩 떠오르는 자책에 나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어쩌면 로즈가 내게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고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내 손길 아래 머무는 반려견을 돌보는 것도 나의 큰 임무이고 삶의 일부이지만, 동물이 사람보다 앞서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도 사람이 동물보다 귀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가족으로 함께 생활하는 반려견들이지만, 내 남편과 내 딸의 자리에 오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동물을 사랑하되 동물로서, 사람을 사랑하되 사람으로 사랑하자. 그동안 우리 집 동물들을 돌보느라 내 가까운 지인들의 삶도, 안부도, 미처 살피지 못하고 지내온 것만 같아 마음에 걸린다. 내 남편과 딸아이에게 조차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찔린다.
엊그제 토스트를 만들어서 들고 오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던 남편이 멈칫했다. 내게 물어왔다.
"그거 나 주는 거 맞아? 개들 주려고 그러는 건가?"
순간 나도 주춤하며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당신 주려고 가져왔어요. 드세요."
한편으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이 강아지들과의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본인의 큰 자리를 위태롭게 여기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웠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바로 잡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