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중간쯤 아랫몰에 2층 건물의 마을 회관이 신축되었다. 맨 아래층에는 어르신들이 쉬어 가시는 커다란 방이 있었고, 회의실 같은 공간과 화장실이 있었다. 사각의 큰 두 기둥 사이에는 마을 회관 현판이 걸려 있었고, 양쪽 기둥에도 기다란 나무판 위에 검은색으로 내척 1동이 두텁게 새겨져 동네 이름을 알렸다.
흰색과 비슷한 거의 옅은 베이지색 톤의 페인트를 입힌 2층짜리 회관의 뒤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마을 전체 모임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꽤 넓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 속 백현우(김수현 분)의 동네 용두리 마을 회관과 거의 흡사하다.
1층은 두 기둥이 중심이 된 현관을 중앙에 두고 양옆으로 갈색 나무 창틀에 뿌연 무늬가 있는 두꺼운 유리 창문이 커다랗게 자리했다. 나는 거의 1층은 들어갈 일이 없었던 거 같다. 현관 입구의 낮은 계단에만 줄곧 앉아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다만 2층의 널찍한 공간은 동네 행사 때 말고는 거의 빈 상태로 놓인 채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네에 내가 우러러보며 존경했던 선배 오빠와 언니들 덕분에 동네 공부방이 생겼다. 바로 마을 회관 2층의 넓은 공간을 동네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동네에는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선배들이 꽤 있어서 모범생인 선배들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특히 방학 동안에는 마을 회관에 모여서 공부를 했다. 당시만 해도 집집마다 형제자매들이 많았으니, 자신만의 공부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형제들과 방을 같이 공유하며, 방바닥에 앉거나 엎드려서 공부하기가 일쑤였지 않은가? 물론 언니 오빠와 쟁탈전을 벌이며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마을 회관에는 책상과 의자가 마련되어 나란히 줄지어 배치되었다. 빈자리에 앉아서 누구든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 서늘한 저녁때가 되면 회관 공부방으로 모여들어 공부를 했다. 사실 공부를 뒤로 한 채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고, 어떤 선배들은 공부하다가 모의를 열어 밤중에 참외와 복숭아 서리를 다녀오기도 했다. 나도 오빠들이 어디선가 가져온(?) 달달한 복숭아를 얻어먹기도 했다. 하나님이 마침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있을 때 그 이름을 불러 목에 과일 씨가 걸려 남성들의 성대에는 볼록 튀어 난 복숭아씨가 남아 있다고 하는 말이 생각나서, 나도 복숭아를 먹다가 하나님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으실까 겁에 질려 먹지 말까 이만저만 고민을 하던 게 아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한 거 같기도 하고, 그저 논 거 같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뭔가 최선을 다했던 느낌이 남아 있다. 한동안 마을 회관에 공부하러 가는 길이 꽤나 즐거웠다. 부모님께 공부하고 오겠다고 허락을 받고 나와서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엄마가 회관으로 나를 데리러 오실 때도 꽤 여러 번 있었다. 나의 중학교 시절이었다.
동네에는 나보다 한 살 위의 선배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던 선배 오빠는 남자답고 꽤 잘 생겼으며,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다. 언젠가 내가 학교에서 홀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다. 선배 오빠가 자전거를 타고 뒤따라 오다가 내 옆에 멈춰 서더니 내게 선배의 자전거 뒷자리에 타라고 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바람에 속으로는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면서도 타지 않겠다고 거절을 해버렸다. 나한테 몇 차례 더 자전거에 타라고 제안을 하던 선배는 부끄러움 많은 내가 안 타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하는 수없이 날 뒤로 남기고 유유히 멀리멀리 사라져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나올 만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지 않은가? 바보처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그 고귀한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지금의 나였다면, 수줍어하면서도 기꺼이 선배 오빠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선배의 허리춤을 잡고는 행복의 나래를 펴며 집까지 구름 위를 나는 것처럼 꿈같은 시간을 보내며 돌아왔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이 선배 오빠를 좋아했다기보다는 멀리서 흠모했던 거 같다. 늘 친구들이랑 시시덕거리며 놀고 웃고 떠들며 사춘기 시절을 보내던 때였으니, 보기에 멋있어 보이던 선배 오빠지만 가까이하기엔 먼 하늘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마을 회관 공부방에 선배가 종종 공부하러 오곤 했다. 늘 공부를 잘하던 선배였으니, 내가 스쳐 지나가며 볼 때마다 선배는 시간을 전혀 허투루 보내지 않고 늘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선배 오빠가 중 3으로 고입 시험을 위해 공부하던 날 불렀다. 내게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평소에 과묵하고 나와 대화를 많이 나누던 선배가 아니라 나는 흠칫 놀랐다.
"시험 잘 봐. 공부 열심히 하고."
"네, 오빠."
오빠도 언니도 없는 큰 딸인 나는 늘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오던 터였다. 저런 선배가 내 오빠면 얼마나 좋을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마침 선배 오빠도 위로 여러 형들과 누나 밑으로 막내였으니 오빠 동생 하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희망 사항을 하나 품고 있었던 터였다. 그럼 마침내 우리는 오빠 동생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설레발을 치며 괜히 마음이 앞서갔다.
하얀 봉투 속에는 촛불 앞에 예쁜 소녀가 있는 그림엽서가 들어 있었다. 뒷면에는 내게 짧은 글귀를 적었는데, 나는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몰두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기분이 좋았다. 날 생각해 주고 챙겨준 선배에게 감사하고 감동했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 중학교 졸업을 기다리던 그때,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친구 은숙이에게 내 마음속 생각을 나누며 의논을 했다.
"나 그 선배한테 초콜릿을 주고 싶은데, 줄까?"
"응, 줘 봐. 밸런타인데이잖아."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떻게 해."
"괜찮아. 뭐가 이상해."
나는 학교 앞에서 초콜릿을 사서 선배 오빠에게 주려고 주머니에 든 종이 지폐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주머니 속에 들어간 손이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살짝 보이는 창백한 손목만이 어서 초콜릿을 사라고 눈짓을 보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끝내 내 손은 주머니 속에 그대로 갇혀버리고 말았다. 영영 그 후로 오래 오래도록.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결심하기를 반복하던 나는 결국 초콜릿을 손에 넣지 못했다. 내 손길을 기다리던 그 작은 초콜릿은 갈 길을 잃은 채 선배 오빠를 외면했다.
밸런타인데이가 지난 다음 날, 길에서 선배 오빠를 만났다.
어제 초콜릿을 전해줬더라면... 오늘 나는 무슨 말을 했을까? 아니 선배는 내게 뭐라고 인사했을까?
이미 멀리멀리 떠나버린 초콜릿 덕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우리는 웃으면서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내 속에서는 후회가 밀려왔다. 다시 어제로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그 선배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나는 그 선배 오빠의 마음을 안 걸까? 모른 걸까?
나의 청춘, 아니 사춘기 시절의 그날을 사랑한다.
그 후로도 나는 누군가에게 초콜릿을 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