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시골 북카페까지
조이샘과의 감격적인 해후
델리의 우리 집에 그녀가 놀러 왔었다.
남편이 인도사람으로 델리대 영문과 교수인 그녀는 집에서 거의 인도 문화 속에서 인도음식을 주로 한다.
난 그녀를 위해 인도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김치찌개를 끓여 주었다. 내가 줄 수 있는 몇 가지 한국 음식 재료들도 챙겨주며, 인도지만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일을 하는 동료였다. 서로 대화도 많이 나누고 함께 노래도 부르며, 삶에 대해, 그리고 신앙과 믿음의 말들로 서로를 위로했다.
가끔 서운해하며 속상해하고, 마음을 아프게 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참 좋은 동역자였다. 그렇게 인도에서 우리가 함께 지내온 세월이 길었다.
주인도 한국문화원에서 세종학당 수료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 듀엣으로 노래를 여러 차례 부르기도 하고, 인도의 젊은 청년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며 사랑으로 섬겼다. 서로에게 격려가 되는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녀의 투병]
내가 인도를 떠나오고 1년이 되던 날.
그녀는 한국 음식이 먹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다. 늘 한국음식을 그리워하던 그녀에게 나는 델리에서 그나마 맛있는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을 추천해 주며 연결을 해주고 있었다.
2021년 3월 3일이다.
코로나 델타 바이러스가 인도를 휩쓸기 시작할 때였다. 인도와 한국 간의 모든 비행기 항공 노선은 멈춘 상태였다. 겨우 한국 교민들을 위해 전세기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운항할 때였다.
"저 암 4기래요."
"뭐라고요?"
"어디서 치료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국행 비행기는 3월 말에나 있대요. 사실 한국에서 치료받고 싶은데 남편은 인도에서 치료받았으면 좋겠대요. 미치겠어요. 저 어떡할까요?"
나는 일단 한국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고 있는 인도 여행사 직원과 연결해 주며 가능하면 빨리 다른 국가를 경유해서 한국에 올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았다.
'사람의 일을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기도하시는 여러 분들께 중보기도를 부탁드리며,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남편이 델리대학교 교수라서 수술비와 모든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고, 유방암에 권위 있는 의사와 인도의 좋은 사립병원 포티스 병원(Fortis Hospital)에서 항암치료를 바로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남편과 아이들 곁에 있는 게 오히려 좋을 수 있다는 것과 인도의 의술도 꽤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좀 안도할 수 있었다.
그 후, 4월 16일.
다시 큰 고통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항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코로나에 감염된 것이다. 항암치료를 못 받을 뿐 아니라 코로나 증세가 너무 심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거기에다 두 아이들마저 코로나에 걸리고, 남편은 코로나 증상으로 폐에 심각한 손상을 입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홀로 인도에서 마치 아골골짜기, 사망의 골짜기를 걷고 있는 것 같다며 고통의 신음을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에 같이 기도하던 한 동료가 코로나로 주님 품에 안겼다는 소식을 그녀에게 전해줘야만 했다.
그날들을 다시 생각하기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다행히 다시 몸이 회복되어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계속 받고, 남편도 무사히 코로나를 이겨냈다. 불행히도 그녀는 후에 또 한 번 코로나에 확진되어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 어려운 시간을 잘 통과해 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해후]
매 3주 간격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받는 그녀가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 치료를 받아야 해서 오래 머물 수 없지만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나 감사하다.
늘 내게 말했었다.
"꼭 가보고 싶어요. 그곳에요."
난 늘 기다리며 소망가운데 대답했었다.
"기다리고 있어요. 빨리 와요."
그러던 그녀가 현실 속에서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같이 일했던 동료 허샘이 차에 태우고 서울에서 용인 산골짜기 북카페 꿈꾸는 정원까지 온 것이다.
북카페를 들어서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아, 정말 꿈이 아닌지 놀랍고도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그녀가 평소에 즐겨 마시던 따뜻한 카푸치노를 시나몬 파우더를 뿌려 맛있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선생님과 북카페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다니 우리의 꿈이 이루어졌어요."
"맞아요, 꿈이 이루어졌어요."
그렇게 기쁨의 감격을 나누다가 시장을 느낄 때쯤 물었다.
"점심 뭐 먹을까요?"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내가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사실 우리는 물어보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녀는 카푸치노를 좋아하고, 순두부찌개와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물론 나처럼 인도 짜이, 특별히 진저 짜이를 좋아하고, 남인도 커피(south Indian coffee)를 좋아하고, 꾸르따를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노래를 좋아하고, 영어 찬양을 정말 잘한다.
사실, 그녀는 명문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를 하던 재원인데, 오히려 항상 나를 칭찬해 주고 세워주는 걸 너무 잘한다. 그래서 난 그녀 곁에 있으면 자존감이 올라가 입꼬리가 귀 잡으러 영차영차 달음박질하곤 한다.
그녀가 떠나며 내게 남긴 말이다.
"정말 너무 좋은 곳인데, 마치 전원일기 동네 같아요. 좀 외로울 거 같아요."
맞다.
그 말이 맞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