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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Oct 21. 2021

봄을 기다리던 길고도 긴 영국의 겨울밤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리라

영국의 여름은 화창하고 길며, 예쁘고 푸르다.
밤 10이 되어야 겨우 해가 저무는 영국의 햇살 가득한 여름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대신 겨울은 스산하고 무척 춥다. 오후 4시가 되면 도시 전체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4시 30분이 되면 한밤중처럼 어둠이 가득한 겨울밤이 시작된다.

그렇게 나는 영국의 길고 긴 겨울밤을 지내면서,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고,
따끈한 차를 마시지 않을 수 없으며,
옹기종기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뜨개질을 할 수밖에 없는 영국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나 '센스 앤 센서빌리티' 그리고 샤롯과 에밀리 브론테 자매의 '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를 읽으면서 상상 속에서만 만났던 장면들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영국에 있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봤던 곳을 찾아 구석구석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유럽의 나라들로 시간이 날 때마다 자동차를 몰고 여행을 떠났다.
쌀과 전기밥솥만 가지고도 가난하지만, 아주 훌륭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 테스가 에인절과 함께 숨어 있던 스톤헨지, 바스와 요크, 아더 왕의 유적지,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처음 미국을 향해 떠났던 폴리 모스항, 해리포터의 배경 옥스퍼드와 반지의 제왕 속의 두 개의 탑, 셰익스피어의 생가,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왓슨의 증기 기차...
역사와 소설, 그리고 영화 속 장소를 찾아보며 여행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꼭꼭 싸매어 담아 놓은, 나의 이야기보따리를 다음에 꼭 풀어놓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겨울밤은 내게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길을 거닐며 창문의 노란색 불빛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영국의 집은 너무나 따스하고 포근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 집은 너무 추웠다.
벽난로가 있지만, 불에 가까이 몸을 바짝 갖다 붙여야만 겨우 몸을 녹일 수 있었다.  

화창하게 해가 뜨는 날은 더 추웠다. 칼바람과 차가운 공기가 더 기세를 부려댔다. 차라리 흐리고 어두 컴컴하며 안개가 가득 낀 겨울이 오히려 견디기에 훨씬 나았던 거 같다.

길고도 깊은 겨울밤에 책을 읽으려고 하면 손이 시려서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제야 영화 속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왜 손가락장갑을 끼고 손가락을 내놓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페이지를 넘기는 것조차 손이 시리으니, 글을 쓰는 사람의 손가락은 얼마나 시리겠는가?
나도 손가락만 쏙 밖으로 나오는 영국식 장갑을 장만해서 겨울밤에  애용하곤 했다.

유난히 영국에서 내 손과 발은 차가웠다.
주일 아침마다 남편과 함께 교회에 가면, 서로 포옹을 하면서 장갑을 벗어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남편의 손은 심지어 장갑을 끼지 않아도 따듯했는데, 난 장갑을 끼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도 항상 차가웠다. 영국 버밍엄의 시티 로드 밥티스트 처치, 교회 친구들은 내게 손이 차다고 걱정을 하곤 했다.
'아... 내 몸은 영국하고 안 맞는 걸까?'
그래도 추운 겨울 남편의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추위를 녹이던 그 시절은, 어쩌면 더 따스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저녁에 잠을 자기 위해 침대 속을 따듯하게 전기장판으로 데우고, 핫팩을 이불속에 미리 넣어두었다가 잠을 자도 발이 시렸다. 어느 해에는 발에 동상이 걸리기도 했다.

오후 4시가 되면 해가 지는 영국의 겨울은 내게 너무나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오는 것처럼 힘들었다.
남편은 연구실에서 밤 10시가 되어 집에 오거나, 집에 일찍 와도 서재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가끔 서재에서 남편을 불러내어 상담을 빙자한 대화로 틈틈이 나눈 게 고작이었다.

나는 나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긴 긴 겨울밤을 보내야만 했다. 그때도 나는 책을 읽거나 손을 호호 불어가며 매일 영어 쓰기 연습 겸 영어 일기를 썼고, 내 '영혼의 일기장'에  글을 쓰곤 했다.
고독하고 외로운 긴 긴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던 거 같다.
내가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가 되어 보기도 하며, 그들이 길고 긴 영국의 겨울밤에 써 내려간 글을 읽고 꿈을 키웠던 것에 감사하였다.   
그때는, 싸이월드가 있었지만, 우리에겐 컴퓨터가 하나 밖에 없었기에 내가 혼자 노트북을 차지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 내게 위안이 되었던 건,  목요일 밤마다 있었던 영국 부인들의 작은 모임이었다. 내가 외로워할까 봐 그들에 비해 나이가 많이 어린데도 불구하고 멤버로 초대해줘서 매주 목요일 밤은 늘 즐거웠다.

차를 함께 나눠마시고, 각자 준비해 온 쿠키와 스낵을 먹었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며 뜨개질을 하기도 했다. 가끔 나는 한국 요리 교실을 열어서 김밥과 김치 야채전, 달걀찜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함께 단체 영화 관람을 하고, 나는 케이크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돌아보면 외로웠던 그 시간들이 지금은 내게 아름다운 추억과 마음에 큰 재산이 되었다. 나만 외로웠던 것도 아니고, 어쩌면 모두가 외로움을 함께 감당하며 서로를 의지했던 거 같다.
그것이 영국의 겨울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혼자서는 외롭지만,
함께 하며 서로 외로움을 감싸주는 영국의 겨울이, 어쩌면 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소식을 전하며 안부를 묻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엔 에스더가 암으로 투병하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유난히도 영국은 전기세와 가스비, 물세가 비싸서 아끼고 절약하느라 더 춥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영국 집의 난방 시설은 벽난로와 라디에이터가 있었지만, 집 안 공기를 따뜻하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두터운 스웨터와 카디건이 없이는 집 안에서 지내기가 너무 추웠다. (다음에는 영국의 전기와 물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다.)

못살겠다고 엄살을 잔뜩 부리고 나서 다시 찾아온 영국의 봄은, 그토록 춥고 힘들었던 기나긴 겨울을 망각 속으로 쫓아버린다.

오늘 레인(Raine)이 영국에 봄이 오는 사진을 보내줬다. 정원에 벌써 스노 드롭이 피었단다.
"have little two clumps of snowdrops in garden!
It has turned warmer thank God we don't cope well with severe cold!"


땅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올라오는 색색의 크로커스(Crocus) 꽃들과 곳곳에 피어나는 노란 수선화는 춥고 어두웠던 영국의 겨울을 멀리멀리 쫓아버리곤 했다.

봄을 알리고 땅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나오는 색색의 크로커스
추위 속에서도 봄을 알리는 스노우드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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