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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추억

고단함이 묻어나는 여름

by 샨띠정

왠지 고단함이 묻어나는 여름.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게 여름은 꽤나 힘겹고 버거웠던 계절이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깨알 같은 기쁨과 소소한 즐거움이 여름 속에 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젊어서 아니 어려서 몰랐던 것들이 이제 와 돌이켜 보니 묵직하고 피곤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나이 듦의 결과물이라 단정할 수 없는 그 무언가다. 분명히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추억 또한 넘치도록 가득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니까.


오늘 이 여름이 버거운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내 여름날의 추억이 달갑지가 않다. 나의 여름은 유난히도 바빴다. 일상생활 속에 교회 여름 행사가 더해져 가득했다. 여름은 항상 단체로 움직이고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수련회와 집회, 성경학교, 해외 단기 선교로 분주했기에.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했던 몇 날 며칠의 행사였기에 더 그러했으리라. 아무래도 난 단체생활을 힘들어했던 모양이다.


같이 잠을 자고, 같은 차를 타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일이 내 성향에는 맞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 모든 일정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잘 수행해 냈다. 지금도 다시 내게 그 일들이 주어진다면, 나는 여전히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 솔직한 깊은 내면에서는 불편하고 힘든 일이라 회피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텐트나 숙소에서 여럿이 모여 같이 잠을 자는 일은 내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잠을 자는 건지 눈을 뜨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에 귀는 집중되어 있었고, 스치는 옷자락의 부딪힘에도 날이 서 있었다. 그 덕분에 배탈이 나기도 했고, 중간에 병원을 향할 때도 있었다. 이런 예민한 사람에게 단체 생활은 마치 가시와도 같았다. 바다 깊은 심연에서 산소가 사라져 가는 공포와 숨을 쉴 수 없는 헉헉거림이 있지 않았던가? 그 모든 것을 이겨내려 누구보다도 노력했던 나. 나를 축복한다.


내 젊은 날의 여름은 온통 수련회와 단기 선교, 집회, 성경학교 캠프로 채워졌다. 개인의 여행 따위는 생각도 못 했던 시절이다. 때론 일원으로, 때론 팀장으로, 때론 인솔 교사로, 때론 임원으로 기획하며 진행하지 않았던가? 준비로 밤을 새우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기 위해 분투했던 젊은 나에게 토닥토닥 등이라도 두드려 주고 싶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에 그 젊은 날의 여름을 이리 추억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배식판을 손에 들고 말씀을 암송하고 난 후에야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아 담아 먹을 수 있었던 그날들도 그때는 너무도 소중하지 않았던가? 까르륵 웃으며 최대한의 에너지를 발휘하여 뿜어내던 그 시절은 어쩌면 꽤나 찬란하였다. 지금은 그만한 힘이 사그라든 걸까? 그 여름날의 열정은 어디로 숨었을까? 조별로 같이 움직이던 모든 순서에 혼신을 쏟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그 소심한 소녀, 젊은 청년은 지금 없는 것이기라도 하는 걸까?


올여름은 유난히 덥다. 인도의 여름에 비하면 거뜬히 견딜만하겠지만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이 반갑지가 않다. 이런 불볕더위에 교회마다 여름 행사로 분주하다. 여전히 땀 흘리며 수고로 여기지 않고, 힘듦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귀하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박수라도 힘껏 쳐서 고단함을 덜어주고 싶은 여름이 왔다.

이제 나는 그들 속에 없다. 그 어딘 가에서 조용히 기도할 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살다 보면 이런 날이 오게 된다는 사소한 사실 하나 더하여 알게 된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우리의 인생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쉽지 않았다. 여름을 추억하며 그날들을 꺼내어 보는 이날이 결코 초라하지 않다고 자신을 설득시킨다.


언제는 주연처럼 무대 위에서 뛰다가 언젠가는 조연이 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과 준비를 담당하는 스텝이 되었다가, 어느 날에는 조용히 객석에 앉아 관람하는 관객이 되기도 하는 게 우리의 인생이니까. 때론 그 무대를 구경조차 못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게 인생이다.


나는 여름 속에서 나의 여름날을 추억한다. 그것도 고단했던 한숨과 미처 잠들지 못해 깨어있던 나의 세포들이 아우성치던 나의 기억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그 느낌과 여름의 날들을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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