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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이겨낸 마음

아픔

by 샨띠정

누구나 저마다의 시름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피해 갈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 않겠는가? 겨울을 만나면 그저 수긍하고 버티기를 힘쓰고, 그러다가 햇살 비추는 날이 오면 강렬한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으니 오히려 감사하다.

25년 새해를 맞아 신정 명절을 보내고는 A형 독감으로 앓아누웠으니, 겨울도 한겨울 속에 있었다. 얼마나 아팠는지 병원에 다녀와서 며칠을 일어나지 못했다. 일단 아픈 김에 쉬어가기로 했다. 지난겨울엔 눈은 또 왜 그리 많이 왔는지 한번 내리면 20센티가 쉽게 쌓였다. 눈 치우는 일은 내가 한몫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몸이 따라주지 못해 남편이 주로 홀로 감당해야만 했다. 2주가 지나면 훌훌 털고 일어날 거라 생각했는데, 구정 설날이 되어도 A형 독감바이러스가 소화기관 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인지 복통과 설사를 달고 살았다. 명절에 친정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도 맘껏 행복해 할 수 없었다. 먹으면 복통으로 힘들어하다가 다시 설사를 반복하며 몸은 점점 축나고 있었다.


한 달은 지나야 회복이 된다고 해서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체력이 고갈되고 있었다. 결국 장 원장님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어서 몸이 회복되도록 도움을 요청드렸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겨울은 나의 병원 일지를 기록해 나갔다. 초음파 검사와 C.T 촬영, 조직검사, 혈액 검사까지 병원 예약이 줄을 이었다. 갑상선 조직검사를 받고 나서 그날 밤, 나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갔다. 내 생애에 처음 있던 일이다. 딸아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친정 부모님께서 나보다 먼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기다리시던 겨울밤. 그난을 잊지 못한다. 응급실 침상에서 링거를 맞으며 추워 몸을 떠는 내 몸 위로 엄마의 두툼한 빨간색 겨울 패딩이 덮였다. 얼마나 급했는지 딸을 위해 옷을 벗어던지신 엄마. 잠옷만 입은 채로 구급차에 실려온 내 몸은 덕분에 체온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었다. 나중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심전도 검사와 혈액검사에서 양호하다는 진단이 내려져 집으로 돌아올 때도 엄마의 옷을 입었다.


두 노인네가 밤중에 얼마나 놀라셨는지 맏딸이 죽는 게 아닐까 가슴이 낭떠러지로 사정없이 철렁 내려앉으셨다 한다. 웃으며 인사하고 병원 앞에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설 때야 모두가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매서운 겨울을 지나가고 있었다.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혈관이 막혀서 말씀도 사람을 알아보는 인식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병원에서 뇌혈관 시술과 집중치료에 들어갔다. 어느 정도 호전되어 일반병실로 옮기시던 날. 갑상선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라 나 또한 진료 예약이 되어 있었다. 나는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없어 진료 예약을 취소했다. 다시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병원에 꼭 오셔야 해요. 결과가 안 좋아요. 늦게라도 오세요."


결과가 안 좋다는 말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서둘렀다. 간병인을 구하고, 딸아이의 하교는 친정아버지께 급하게 부탁을 드리고는 병원 문 닫기 직전에야 기다리던 남편과 함께 장 원장님을 뵈었다. 그냥 모양이 안 좋으니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하셔서 확인차 했던 결과가 좋지 않다니 손끝이 떨려왔다.


"암이에요. 수술을 해야 해요. 제가 형제처럼 지내는 이쪽에서 권위 있는 선생님을 연결해 드릴게요. 그분도 누님이 선교사님이세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원장님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바로 다음날로 아주대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아주셨다. 말씀대로 이미 따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간호사가 필요한 CD와 슬라이드 등 여러 검사 자료들을 챙겨줘서 손에 들고는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남편의 손을 붙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흐느껴 울었다. 남편의 팔짱을 끼고 몸을 기대어 걸었다. 눈물이 주책없이 흘렀다. 그렇게 울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져 왔다. 이제 맡기고 치료를 잘 받는 일이 내게 남겨졌을 뿐이었다.

충격적인 결과지만 수술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훌륭한 의료진도 병원도 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 결과를 받아들였다.


입원해 계신 시어머니를 매일 찾아뵙는 일도내몫이라 3월은 세브란스와 아주대병원을 번갈아가면서 들락거렸다.


어머니는 나를 알아보시지만 이름을 기억해 내기 어려워하셨고, 점점 멀어져만 가는 인지와 언어 능력을 붙잡으려 애를 쓰셨다. 나는 매일 아들 이름과 가족들, 일상을 얘기하며 기억을 붙들고 웅켜잡으시라고 노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사실상의 치매를 부인할 수가 없었다. 안타깝고 눈물이 났다.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온전한 대화가 불가능해졌다. 그저 손을 잡아드리고, 웃어드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어머니는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으시고 요양원에 모셔드리고, 나는 4월 1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나는 길고 혼란스러운 차디찬 겨울을 거의 통과해내고 있었다. 살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동시에 만나고 말았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담대히 부딪히며 이겨내는 방향을 선택했다. 버티고 부딪히며, 스스로 감당해 나가기로. 내 곁에 주님이 계시지 않던가? 든든한 지원자가 있으니 훨씬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나의 겨울을 이겨내며 봄을 맞이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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