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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산수유 마을

봄 여행

by 샨띠정

봄의 색을 곰곰이 떠올려본다.

희고 붉은빛이 도는 매화꽃색일 것도 같고,

고고한 꽃봉오리를 큼직하게 피워내는 하얀 목련꽃이나 자줏빛 자목련 색이 아닐까 하다가, 흩날리는 분홍 벚꽃이나 꽃앵두와 서부해당화꽃 그리고 땅 위에 바짝 붙어 피어난 진분홍 꽃잔디를 봄을 물들이는 대표 색이라 불러주고 싶다. 단, 개나리와 산수유가 뿜어내는 노란빛이 없다면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노란색을 꽤 좋아한다. 이런저런 아리따운 봄꽃들이 자랑하는 고운 빛깔들도 노오란 봄색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뭐니 뭐니 해도 노란빛이 최고다.


어린 시절 소꼽놀이의 주인공이자 사춘기 시절의 성장통을 같이 겪어낸 우정의 친구들이 있다. 꽤 운이 좋다. 일 년에 한 번은 봄꽃놀이를 하며 얼굴을 보자고 모임을 약속했다.


외가가 있던 구례 산동인데도 초봄에 피어나는 산수유꽃동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시절엔 그런 동네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굽이굽이 산자락 아래 다소곳이 자리 잡은 산수유마을에 가보자는 친구들의 제안에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도대체 산수유마을이란 게 뭘까? 궁금해하면서.


마을에서 떨어진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봄날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몸을 움츠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3월 말이라 조금은 늦은 감이 있었지만 활짝 피어난 산수유가 뿜어내는 진한 봄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랐다.


마을 중앙으로 가로지르는 넓은 개울이 산수유꽃과 어우러져 산수화를 완성하셨고, 겨울 내 녹아내린 눈 때문인지 군데군데 개울 물웅덩이가 꽤 푸르고 깊었다. 졸졸 흐르던 개울이 꽤나 즐겁게 자기들끼리 물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다. 그토록 커다란 바위는 언제부터 개울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그 기개가 당당하여 장군처럼 근엄하기까지 하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돌덩이들이 땅 속에 묻혀있었던 걸까?

노래 반주에 맞춰 목청을 끌어올리던 스님의 생음악 라이브콘서트까지, 마을 곳곳의 가정집에서 팔고 있는 분홍 산수유 막걸리와 파전 그리고 온갖 간식거리가 산수유꽃 축제장으로 만들었다. 마을 초입부터 산자락 아래까지 길게 이어지는 개울가를 따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속닥이며 걷기에 편안했다. 나는 친구가 건넨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는 그 따끈한 온기로 추위를 달래며 노오란 봄 세상을 거닐었다.


작은 꽃잎들이 옹기종기 모여 꽃나무를 만들어내는 산수유가 마을 전체를 곱게 노오란 물로 덮었다. 여름이 지날 때면 빨간 산수유 열매를 맺어 수확할 수 있으니 산수유나무는 마을의 효자 중에 효자가 아닐까? 그러기에 노랑으로 물드는 초봄이면 마을이 한바탕 큰 잔치를 열어 손님들을 맞이하는 가 보다.

덕분에 나도 좋아하는 번데기와 군밤을 간식으로 오물오물 맛나게 먹었으니 잔칫집에 꽤 나 잘 다녀온 듯하다.


봄은 노랑으로 시작해서 연분홍으로, 다시 진꽃분홍과 갖가지 빨강 보라색을 낳고, 그다음 온 봄산은 연둣빛으로 채색을 하겠지.


친구가 말했다. 영화 촬영으로 많은 곳을 다녀 본 그의 말이니 신뢰가 간다.


"나중에 더 나이 들면 구례에 내려와서 살면 참 좋을 거 같아. 다녀본 중에 구례가 젤 괜찮은 거 같더라고."


내가 응답했다.


"지난번 남원, 하동, 광양, 구례 여행 후에 하동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구례가 진짜 좋긴 하다. 외갓집 선산이 구례에 있긴 한데 내가 살 집은 없네. 나도 구례로 내려오고 싶다. 언젠가는..."


아프다고 집까지 데리러 와줘서 즐거운 꽃구경시켜 주고, 다시 집으로 안전하고 편안한 짧은 여행을 완성시켜 준 내 친구이자 작은 엄마의 막내 동생, 우리 사돈 친구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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