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주신 이름
친정아버지는 청년시절 함께 교회를 섬기던 백 씨 성을 가진 친구가 계셨다. 그 교회는 할머니께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개인 재산을 털어 세운 복된 터전이었다.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잘하시던 큰아버지께서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어려우셨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교회를 위해 집에서 온갖 좋은 것을 가져다 쏟아부으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둘째 아들인 친정아버지와 막내 삼촌, 그리고 막내 고모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신앙을 따라 전심을 다해 교회를 섬기셨다.
비슷한 시기에 친정아버지와 백 씨 친구(나는 줄곧 어린 시절 백집사님이라 불렀다.)는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이뤘다. 물론 첫 가정의 열매인 아이도 태중에 선물로 받았으니 모든 게 은혜로 이뤄졌다.
은혜 은(恩), 밝을 경(暻) 내 이름이다. 친정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가을, 시월을 기다리며 미리 이름을 지어놓고 계셨다고 한다.
"딸이 태어나면 이름을 은경이라 할 것이야."
"그 이름 참 좋네. 나도 그 이름으로 지어주고 싶네."
"아니 같은 동네에서 한 이름이 말이 되는가? 다른 이름으로 짓게나."
"뭐가 어떤가? 우리는 성이 다르지 않은가? 아들이 태어날지 딸이 태어날지 모르니 그리 할라네."
두 친구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게 될 아이의 이름을 놓고 옥신각신하며 즐거운 이야깃거리로 기쁨을 배로 더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세상에 한 발 뒤늦게 태어나버렸다. 백 집사님(그건 어린 시절 우리에게 불리던 호칭으로 실제로는 장로님이 되셨다.) 댁에 첫딸이 먼저 나와 '은경'이라는 이름을 실제로 가져가 버렸다. 친정아버지는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에 어리둥절하시면서도 자신도 맞이할 첫 아이를 손꼽아 기다리셨다. 아들이길 바라셨는지도 모르지만 이름을 딸아이의 이름으로 미리 지어 놓으셨으니 은근히 예쁜 딸을 기다리셨으리라 여겨진다.
나는 엄마의 태중에 좀 더 머물다가 마침내 부모님의 품에 안겨 감격과 기쁨을 드렸다. 이건 나의 예측이고 희망일 뿐이다. 종종 엄마는 예쁜 딸을 예뻐하지도 못하고 어떻게 키우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셋을 낳아 길렀다고 하셨으니 말이다.
친정아버지는 이미 뺏긴(?) 이름을 두고 잠시 고민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나 애지중지 고민하며 지어놓은 이름이라 포기하지 못하셨다. 결국 내게도 같은 이름을 붙여주셨다. 다행히도 한자와 뜻이 살짝 달랐다고 한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밝을 경'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이고 지어주는 일은 그 어떤 사건보다도 중대하고 의미 깊은 일이었다. 사람은 그 이름대로 살아간다는 알기 때문에. 이름은 그 모든 인생을 담고 있지 않은가? 신앙생활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시던 두 분은 '은경'이라는 이름을 하늘에서 내려준 복된 이름으로 여기셨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으로 큰 복을 얻은 딸이지 않은가? 감사할 따름이다.
같은 교회에 성이 다른 은경이라는 여자 아이가 둘이 있었다. '백은경'과 '정은경'이다. 성도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던 그 아기들은 일찌감치 고향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부모님을 따라 다른 지방으로 이사하여 각각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훗날 하동 시내에서 마트를 운영하던 백 집사님 댁에 방문하여 백은경을 만난 적이 있었다. 세 살 때 헤어진 우리는 부모님의 역사 속에서만 기억에 남아있을 뿐, 그 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다는 얘길 많이 들었으니, 백은경은 어느 곳에서 영향력 있는 복된 삶을 살고 있으리라.
은혜 은(恩), 밝을 경(暻). 성은 나라 정(鄭)이다. 뜻으로 보면 '밝은 은혜의 나라'다. 그 의미가 참 좋다. 어려서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던 내 이름에 얽힌 일화는 나 스스로도 이름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했다. '밝은 은혜', 참 좋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인생에 그것도 밝은 은혜로 살아가라고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비록 발음이 좀 어려워서 애를 먹어서 학창 시절에는 이름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이름 세 글자에 동그라미 'ㅇ'이 다 들어있지 않던가? 학교에서 내 이름을 부르시던 선생님도 '전은경'이라 잘못 발음하시고, 한 번쯤 다시 불러 발음을 정확히 해야 하는 이름이었다. 친구들도 성을 붙여 부르는 내 이름은 좀 힘들어하지 않았던가?
특히 해외에서 생활할 때는 외국인들이 내 이름 부르기를 포기하고 영어이름만 부르겠다고 했던 경우가 다반사였다. 가까운 친구들은 내 한국 이름을 귀하게 여겨 불러주길 원했지만, 사실상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윤경', '은켱', '인켱'으로 불려지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이름에 감사했다.
대한민국에서 드디어 내 이름이 편하게 불려지기 시작한 건, 내가 코로나 팬데믹이 되던 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다. 당시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청장'덕분에 내 이름은 한결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갔으며, 나 또한 내 이름을 말할 때 두세 번 반복해서 읊어야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도 큰 은혜이고 감사다.
어린 시절엔 흔하지 않던 정 씨 성을 성인이 되어서는 수도 없이 만나게 되었다. 최근에는 같은 이름의 사람도 보게 된다. 살면서 쉽게 만나지 못했던, 귀하고 희귀하게 여겼던 내 이름이 이제 더 알려진 모양이다.
'밝은 은혜', 삶에서 나 스스로도 밝은 은혜를 경험하며, 세상에 그 밝은 은혜를 베풀며 흘려보내는 삶을 살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