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로 살기
이틀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도 있었고, 쉬어가야 하는 적절한 타이밍을 붙잡기로 한 내 결정이었다. 우선 집에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푹 쉬는 것이 이번 휴가의 목표였다.
나이가 들어가는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결코 피할 수 없는.
하루를 온전히 집안에서 안식을 취했다. 딸아이도 그동안 피곤했던지 낮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나도 집안일을 마치고 난 후 까슬까슬한 여름 이불속에 내 몸을 맡겼다. 실컷 쉬고 난 덕분에 몸이 한결 산뜻하게 느껴지는 가 싶더니, 굳건하기만 하던 나의 휴가 목표는 슬슬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시렁구시렁...
"엄마, 우리 어디 가자. 집에만 있으니까 심심해, 아무 데도 못 가고, 치..."
쫑알거리는 딸아이의 대사가 귀에 거슬렸다. 이틀을 집에서 놀면서 보내기엔 무리였을까? 사실 나는 1주일도 거뜬할 거 같은데. 최근 나의 소원이 집에만 머무는 것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딸아이의 욕구를 어찌할 수 없었다. 무심하게 넘기기에는 내 마음이 몸보다 앞서 나가고 말았다. 나이 많은 엄마의 고충이다. 조금만 더 젊은 엄마였더라면 체력이 충만하여 왕성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서울행을 택했다. 다행히 새로 이사한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가 있어서 서울 나가는 일이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물론 거의 서울행을 포기하고 용인에 콕 박혀 살고 있지만 말이다. 올 들어 아마도 두 번째 서울행이다.
나의 이십 대를 수놓았던 강변 테크노마트로 향했다. 강변 CGV영화관은 내가 좋아하던 수많은 배우와 영화들이 내 청춘과 함께 숨 쉬던 곳이 아니던가? 친구 영이 집 근처이기도 해서 오랜만에 친구 얼굴도 볼 겸 그곳을 택했다. 그 옛날의 화려함과 명성은 살짝 뒤로 사라진 채 비어있는 가게들과 한산한 풍경이 마음을 끄집어 내렸다. 살다 보면 변화를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하지만 못내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인 영화 'F1 더 무비'를 선택했다. 그토록 찬란했던 날의 그도 이제는 60대가 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세월을 앞서서 저리도 당당하고 건장하게 보여주는 배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톰 크루즈와 브레드 피트가 출연하는 영화는 빼놓지 않고 거의 챙겨본 나는 오빠 같은 그들, 톰과 브레드와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새로운 영화를 촬영하며, 관객들을 위해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온갖 험한 위험도 무릅쓰는 액션을 대할 때마다 가슴을 졸이면서도 그저 고마웠다. 현재까지 건재한 모습으로 기쁨과 감탄을 선물해 주는 그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25년에 들어서서 예사롭지 않은 건강 상태에 마음 졸이고 있는 내게 어쩌면 또 다른 위안을 주는 사람들이다. 고맙다. 진심으로. 나까지도 덩달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철저하게 건강을 관리하며 체력과 집중력을 끊임없이 길러내는 그들, 최선으로 좋은 영화를 준비해서 내놓는 열정과 노력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뭔가 더 깊은 마음을 표하고 싶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60대에도 전성기를 살아가고 있는 그들처럼. 나이가 들어가 눈가에 주름이 깊어진다 해도, 머리카락이 희끗해져도, 젊은이들이 뚫고 올라온다고 해도, 전성기를 누릴 수 있다는 본보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그들처럼, 아직 전성기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용기를 내어 보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고 슬퍼하지도 아쉬워하지도 말자고 자신에게 속닥인다.